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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대로 (요 9:24-34 )

주하인 2009. 2. 3. 11:57

 제 9 장 ( Chapter 9, John )

 

 

 화창한 봄날 씨 같은 휴일 하늘

 

그 하늘을 지나가던 비행기의 궤적.

그 밑을 떠가는 헬리콥터

그 아래 까치집.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주님의 운행 원리 안에서

이처럼 자연스럽게

내가 유지되게 하소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자연스럽고

무엇이 아름다운지

어떤 것이 옳은지 따지지 않고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꾸미는 아름다움처럼

모두가 주님의 영광을 올리게 하소서.

 

 

 

 

 

 


24.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바리새인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안다.

 

그러나, 진실을 보지 못한다.

예수님 보고 죄인이라지 않는가?

그 예수님이 왜 죄인인가?

진실은 소경을 눈뜨게 하고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이신데. .

설령 그 분이 하나님인 줄 몰라도...

 그렇다고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입으로만 믿는 자인가?

방법이 잘못되어서이지 그들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왜곡이 되어서 일뿐이지.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소경이었던 자....

영적 소경이었던 주하인.

아직도 소경일 지 모르는 주하인.

이제는 소경이었던 자로 바뀔 주하인.

완전히 눈뜬 자로 바뀔 지 모르는 주하인.

 

 주하인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믿고

그 분에게 감격할 줄 안다.

 

 소경이었던 자는 말한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

참말로 성경이 살아 있는 것을 느낄 때는

대화의 어투가 그 사람들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질 때

잘 느껴진다.

 두번이나 불러대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 - 율법- 에 맞추어

사실을 왜곡하고

그 안에 숨어서 자신 들의 믿음을 정당화하고 싶은

나름의 믿음을 지닌 바리새인들의 그 어리석은 심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가 하면

이 소경의 당당함이 놀랍다.

저 몇마디의 말에

그들 바리새인들에 대한 질타가 조롱과 함께 숨겨져 뿜어 나오지 않는가?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상하다........'

사실은 이것인데...왜?

 

 정말로 이상한게 이것이 아닌가?

누가 봐도 사실인 것을 왜 저들은 저리도 비비꼴까?

 

어제는 아버지 학교 스텝모임에 다녀왔다.

이제 곧 39기 아버지 학교가 시작되기에 여러 스텝들이 기도 모임에 나왔다.

여러 이야기와 대화를 나눈 후

소 그룹 별로 모였다.

난 믿음 조에 속해 있었다.

그 중 가장 싱싱한 ^^;;  38기 수료 자 스텝 중 한 분이 말하신다.

 

 '이상해요.

아버지 학교 기도 모임이라면서

기도는 안하고 왜 대화 만..

믿음이 얼마 안되어서 인지 기도만 하면 들어 주시던데... ' 하시면서

한 분의 형제 분께서 말을 이어가신다.

지독한 불경기라서 당신이 팔고 있는 오토바이가 거의 개점휴업 상태인데

기도하면 된다고 해서 기도하니

벌써 세대나 팔았다고.......

남들은 믿지 않는다 하는데

기도하고 출근하면 문의 전화가 오고 팔리더란다.

 듣는 모두 입을 벌리고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나.

주모.

 생각이 마구 돈다.

 ' 어린 믿음이라서..

 아니 저러다가 실망하지.

 부럽다.

 순수하다... '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삶이 무슨 필요인가?

기도하다가 안들어지면 그걸 어떻게 이해할까?

역시.. 할까?

하지만... 할까?

 어찌되었던, 그 분은 확신이 가득차고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흥분하고 계신다.

많은 분들이 감동으로 이야기한다.

'참 순수하신 분이시다. '

 맞다.

순수한게 맞다.

그게 감동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

그게 어느 새인가 잃어버려지고 있는것이다.

 재고 자르고 믿고 믿지 않고..

어느새인가 마음 속에 다양한 생각들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오늘 소경의 믿음이 순수하다.

그 믿음으로의 회귀가 필요하다.

사람들을 볼 때

상황에 닥칠 때

주님 앞에 설 때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믿으면 된다.

거기에 선그라스를 쓴 듯 거무스레이 쳐다보거나

있는 진실을 한번 더 꺾어서 받아 들이면

그게 왜곡된 진실이 된다.

왜곡된 진실은 '우'를 범하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자들이 범하는 실수가

바리새인같은 실수들이다.

어린아이 같은 소경의 순수함으로 보아도

곁에서 쳐다보는 우리가 보아도

그들의 패착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믿는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서 가장 신앙적으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

바리새인이 그들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그들은 하나님을 믿되 자신의 가치로 판단하는 것이 죄다.

 

그러한 그들의 '우'가 과연 일상에서 없는가?

나에게는 없는가?

너무도 많다.

수도 없이 많은 판단을 한다.

내 기준.

내 옳음

내 상식..........

 

 이

'내' 는 죽어서 없어져야 한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한 사도 바울의 그 죽음이

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고 낮추어 보고 싶은 교만이 올라올 때

속이 상하려 할 때

나서고 싶을 때

...........

내 가치가 들어 나오는 것이다.

그럴 때 마다 명심해야 한다.

소경에게 놀림받는 '바리새인'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명심하자.

'주님 오실 때까지 아무도 판단하지 말자. '

판단은 하나님을 내 기준에 끼워 넣으려 하는 불신앙이고 큰 죄다.

 

 

 

적용

 

1. 있는 그대로 본다.

  판단하지 말자.

 판단은 죄다.

 판단안에는 나는 잘났다는 묘한 교만의 잔혹함이 숨어 있다.

 

2. 겸손하자.

 

3. 입을 닫자.

 

4. 성경 일곱장 읽자.

 

 

기도

 

주님이시여

오늘 바리새인의 어리석은 모습을 적나라히 보고 있습니다.

소경의 눈뜬 뒤의 당당함을 보고 있습니다.

무엇의 차이인지요.

내가 살아 있는 자와

하나님이 내 안에 살아있는 자의 차이라 생각됩니다.

주여.

오직 판단 자는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간절히 부탁하올 것은

순간적으로 삐지고 나오는 이 어리석은 판단을 낮추소서.

없애소서.

성령이여 도우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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