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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전쟁 영적 聖戰 (왕상 15:25-3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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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전쟁 영적 聖戰 (왕상 15:25-32 )

주하인 2010. 10. 13. 09:52

제 15 장 ( Chapter 15, 1 Kings )

 

제 모습 보이시나요

 

지난 밤

외로운 싸움을 겪느라

초췌하고

탈진해 있지만

 

아름답고

순결해 보이지는 않는가요

 

하늘을 보고 있으니

더욱

그리 보이지 않는가요

 

 


28.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나쁜 나답 같으니라고..

  나쁜 '바'아사 같으니라고..


32.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으니라
 '전쟁'

그것도 일생 전쟁.

 

 전쟁에 대하여 생각할 바가 많다.

 

전쟁은 불행이다.

일생 전쟁이니 그 얼마나 백성들이 고통스러워 겠는가?

수천년의 인류 역사 중 전쟁이 없었던 게 겨우 몇년 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 않는가?

이 인간들의 추악함이여.

이 원죄의 증거여.

 

 하나님 입장에서 보신 '전쟁'이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은 보아 줌 직한 전쟁임은

'아사' 편이 주님의 마음에 비교적 흡족한 것이기에 그렇다.

 그 전쟁을 말리실 능력이 없으신 분이시던가?

겨우 '사단' 편에 가까울 나답이나 바아사 측에 대적하여 허덕거리시며

아사 편을 들 그런 적은 존재이시던가?

왜 주님은 이리 전쟁을 허락하시고

왜 주님은 전쟁에 당신의 그 거룩하고 거대하신 존재가 흐려지는 듯해야 하는가?

 주님의 뜻을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당연히도 하나님은 세상에 모든 흐름에 최소한 간섭을 하시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과정 과정에서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의 열심을 받으시길 위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연단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더욱 '선택'되고 '정결'화 되는 자 .. 두 팀 중의 '아사' 쪽 같은 자들을

선별하시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훨씬 더 크고 영원한

저 천국 안에서의 '동량'으로 쓰시기 위함이실 수도 있지 않으시던가?

어쩌면 이 인생에 펼쳐지는 모든 예기치 못한 일들,

하나님의 위용이 약한 듯 ,

마치 하나님이 안계신 듯 느껴지기 까지 할 위험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전쟁', 그것도 '일생전쟁'을 당신의 선민 들에게 허락하시면서

그 안에서 펼쳐지는 아주 다양한 '선택'과 그의 결과들이 이루어내는

마치 드라마 같은 인생의 시나리오들을 보시기 위함이 아니실까?

그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찬송을 부르게 하실 목적으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이사야서 43장 21절의 뜻에 부합하는 것은 아닌가?

 '아사' 입장에서의 일생 전쟁에 대한 묵상이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온전히 믿고 일평생 헌신되어 있는 자로서도

전쟁을 겪을 수 밖에 없음,

그것도 일생 전쟁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그 힘듦과 아픔은

어찌 이해하여야 할까?

 하나님 믿으면 일생 모든게 만사 형통이길 바라는

현대인의 나약한 달콤한 믿음 지상 주의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게 아닐까?

이것을 묵상하며 혹시 '나는?'하고 반문하며

소름이 잠시 끼쳐지며 회개를 해야 할 부분임을 느꼈다.

 주님을 믿는다면서 지속적인 '전쟁'이 내 속에서 일어나고

내 삶에서 지금보다 더한 고난이 계속 펼쳐지면

난 아사처럼 ' 마음이 일평생 하나님께 온전할 수 '있었을까?

'일생 전쟁'이 나로 하여금 계속 신실한 하나님을 믿음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아니다.

아니었다.

그래서 회개하여야 할 것 같다.

주님은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끊임없음이

일생 내내 이루어지게 허락하실 수도 있다.

 '인내 해야 한다.

 모든 게 그래도 주님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선'이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당연한 신앙인의 태도다.'

    또,

아사의 전쟁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그는 어제 묵상 상 틀림없이 '마음이 일평생 하나님 앞에 온전했다'고 나온다.

영적으로 육적으로는 아니어도 마음 만은 온전하려 애쓴 자가

전쟁을 대하는 태도다.

 어쩔 수 없는 전쟁은 그렇지만 일생을 전쟁했다면

그 안에 '전쟁'의 이기적인 목적 - 땅 확보, 자존심.... - 이 걸려 있지는 않았을까?

전쟁에 일평생 끌려다녀야 하는 '백성'들의 아픔을 배려하지는 않았을까?

비록 인권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대는 아니어도

그들의 고난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자 하는 자'로서

어떤 가슴앓이와 어떤 고뇌와 어떤 논리적 해결점을 가지고

그 전쟁에 임했어야 했을까?

그렇지 않다면 '전쟁'은 전쟁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인

' 삶'과 '믿음'의 분리,

즉 이원론 적 믿음을 가진 자는 아닐까?

 바아사를 필두로 한 형제국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자극 탓에 그랬더라도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 자들이 전쟁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 앞에 허락받은 '거룩한 성전'이라면

아사 들은 전쟁의 아픔에 대하여 어찌 대하여야 했을까?

 

 바아사들의 '타락한 편'과  아사들의 '하나님 편'의 '성전'이던가?

 ...............

 

 일생 전쟁을 묵상하며 생각되는 바가 많다.

 

나는 어느 편인가?

'아사' 편의 전쟁 수행 중인 자가 맞는다.

하나님의 선민이지만 조금은 더 영적인 삶을 살고자 몸부림 치는 자.

그러면서 그 전쟁이 '바아사' 들로서 상징되는 단순한 욕심의 소치가 아니고

삶을 사는 도중에 겪을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사단의 도전애 응전하는

나름의 '聖戰'을 싸우며 일생을 사는 존재.

문제는 이것이 주님을 위하여 싸우는 싸움인지 나를 위하여 싸우는 싸움인지

구분하고 어떤 것이든 주님을 위함이 되도록

늘 주님 앞에  말씀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싸움이 지속될 때 지치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이든 주님이 뜻하신 바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주님은 무조건 '선'이심을 인식해야 한다.

때로 그 싸움이 일평생을 가는 지루한 싸움이 될 지라도

믿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낮아짐이 높아짐이고

곤란과 핍박과 약해짐이 강해짐을 믿어야 한다.

그게 '마음'을 주님 앞에 온전히 다잡는 길이다.

 

 

 

 

적용

1.  전쟁이 우리의 숙명이다.

 그 싸움은 영적 전투가 될 수도 있고 실제적인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그 싸움에서 늘 이길 수 있길 기도한다.

 지치지 않기를 원한다.

 늘 전쟁이 있음을 잊지 않으면 좌절할 일이 없다.

  어쩌면 전쟁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을 두려워 하기 보다 '영적 연단'의 과정으로 이겨내자.

 삶은 전쟁이다.

 

2. 전쟁을 성전으로 바꾸자

 성전으로 바꿈은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생각으로 임하는 것이다.

주님 예수님을 위하여 낮아져도 감사하고

약해져도 감사하고 피곤해도 감사하고 곤란해도 감사하여야 한다.

그것이 강해지는 지름길이며 그것이 '전쟁'이 의미있는 靈的 聖戰 '이 된다.

 

3. 늘 감사하자 .

어떤 것도 주님의 뜻 아닌 것이 없다.

불신자들은 모든 것이 어둡지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의미다.

감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4. 삶은 과정이다.

 주님의 마련하신 선의 과정이다.

 

 아침 진료 중에 '폐경기' 를 깊게 겪고 있는 부인 한분이 오셨다.

약을 바꾼 후 많은 호전이 있었지만 아직 '얼굴'이 달아오르고 불안함은 가시지 않는다 한다.

그것은 '불안 증후군'일 듯 싶어 신경정신과 상담을 권유해 드리면서

조용히 '예수님 믿는가' 여쭈어 보았다.

불교시란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경험을 들었다.

예수님 영접하기 전과 후의 내 변화.

담배, 불면증, 불안, 가슴 뜀의 소실, 너무도 기쁜 내 삶.

얼굴의 느낌을 여쭈어 보았다.

'아... 잘생긴거 말구요..'하니 웃으시면서 정말 편안해 보인다 신다.

내 간증을 통하여 기쁜 하나님을 증거 하며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로 불안이 씻기고

성령의 보혜를 힘있게 증거했다.

 긍정적으로 받으신다.

..

그렇다.

내 삶.

돌아보면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내 과정이 쓰임을 받음을 난 안다.

내 진료실에서 , 삶 속에서 많이 인용한다. .

그들은 쉽게 받아들인다.

하나님은 '모든 싸움'에서 다 의미를 부여하신다.

그 의미를 알아채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방향임을

영혼이 알아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아는 기쁨이다.

나.

가장 기쁜 것이 이 사실을 기쁨으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내 삶은 점점 힘이 있어진다.  ^^*

 

 

5. 성경 세장 읽자.

 

기도

 주님.

전쟁을 묵상하니 어렵고 힘이 들려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 조차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아님이 없고

하나님의 뜻이 아님이 없음을 알기에

내 모든 삶은 다 의미로 가득찹니다.

귀하신 주님이시여.

하나님의 허락하신 내 삶을

일평생 죽도록 온전히 주님 위한 승리로 바꾸길 선언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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