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안의 등불 (왕상15:1-8) 본문

구약 QT

내 안의 등불 (왕상15:1-8)

주하인 2010. 10. 11. 09:25

 제 15 장 ( Chapter 15, 1 Kings )

 

긴 여름이 지나고

혹독한 더위가 물러 나가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도 빛은 비추었지만

빛이 뜨겁고 힘들게만 느껴졌었습니다

 

주여

이제 시간은 가고

제 안에 비추이는 그 빛이 이제 달콤합니다

더욱 맑아 보입니다

 

주여

더욱 맑히시고 밝히시어

제 안의 어두움

모조리 거두어 가소서

 

 


 
2.  예루살렘에서 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비얌이 겨우 '삼년'을 왕 위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싸움'은 계속 했다.

 조금 더 완악하고 조금 덜 완악하기는 하지만  그리 사랑스럽지 않은 자들의 싸움.

자기 아버지 대에서 부터 아들 대까지 내려오면서

'삼년 밖에 ' 왕위에 머물지도 모르면서 

죄는 열심히도 짓는다.

 

 선민으로 선택해 놓은 자들의 죄악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서로 싸우는 것을 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자식들이 말을 안듣고 날로 타락하면서

서로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 같지는 않으셨을까?

더구나, 그 싸우는 자들이

한치 앞도 모르고 저리 하니.............

 

 그들은 왜 그런가?

왜 그들이 그런 어리석은 죄를 자꾸만 범해야만 하던가?


 
4.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다윗.

그 사랑스러운 아들.

 그 아들도 '우리아'와 관계되는 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영혼에 등불을 주셨다.

 '등불'

등불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불은 왜 주셨을까?

전쟁을 한 것은 다윗도 마찬가지인데 왜 그에게만 주셨을까?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 보다 덜 악하다고 할 수 없는 죄를 지은  다윗이

다른 대접을 받음은

그들이 하나님을 염두에 두었는가 안두었는가다.

다윗은 죄를 지었으되 늘 회개하는 자였다.

늘 하나님을 염두에 둔 회개였다.

어쩌면 저들도 인간적인 도리나 율법 차원에서는 반성을 했을 지 모르고

그 중에는 남자다운 면이나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는 면이 없지 않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그런 회개는 없었다.

그게 그들의 진정한 죄다.

 진정으로 주님 앞에 회개하는 자에게는 '등불'을 주신다.

그 등불의 밝기는 주님의 주권적 영향 아래 있겠지만

등불은 마음을 밝힌다.

등불은 '성령'이시지 않겠는가?

 성령의 등불이 마음에 켜진다.  

 그 등불에 의하여 내 외부적으로 다가오는 모든 행실이나

마음 속에 드리워진 어두움이 '그림자'로 투영되고

그 죄악이 영혼에 눈치채여지고

어두움이 드러나게 되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등불은 우리의 주님 앞에 서고자 하는 '선택'에 의하여 주시지만

성령의 등불에 의하여서 더욱 우리의 영이 들추어 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 , 여로보암 등은 하나님의 선민이긴 하지만

스스로 등불에 의하여 밝혀질 여지를 두지 않았다.

오직 땅의 것에만 관심을 두고 '넓은 길', 넓은 문을 통과하기 위하여

치고 받는 싸움에만 열심을 두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내면에서 비추이시는 등불'과

그에 의한 그림자의 흔들림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등불.

내 내면 속에서

하나님이 지펴 놓으신 그 등불을 묵상해 보았다.

 바람.

내 죄의 바람이 불어

그 성령의 촛불이 흔들리면

창호지 문에 호롱불 흔들림에 따라 드리우는 그림자의 흔들림처럼

내 마음의 심상에 죄악의 그림자가 투영되어 흔들거리는 것 같다.

때로 성령의 불이 강하게 일어

내 영혼의 불이 밝아지면 내 죄악의 그림자는 더 뚜렷이 보이다가

성령의 불이 너무도 밝아지면 그 그림자는 흔적 조차 없어지는 듯하다.

 

이 등불.

그 등불의 움직임

그로 인한 그림자의 흔들거림.

 

사람들.

세상이 복잡해지고

경쟁하고 유혹당할 것이 너무도 많아짐에 따라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 조차 없어진다.

이 등불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의 내부가 너무도 밝아져  더 이상 반영될 그림자 조차 없어질 만큼

죄가 송두리 채 없어짐이

우리 주님 하나님의 뜻이시어서

십자가를 못박히실 만큼 아픔을 인내하시면서 까지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등불을 보내시어 매일 같이 말씀 안에 , 성령 안에 우리를 비쳐 보아

정화되고 성화되어 오기를 바라심에도

우리들은 여로보암과 싸우는 아비얌처럼, 그 아비처럼

심지어는 선민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할 만큼

'등불'이랑은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게

얼마나 많은 우리의 삶의 태도이던가?

 

 날 돌아다 본다.

내 안의 칙칙하기만 하던 어두움들은

어두움에 쌓였을 때는 어두움인지 모르고 살았더니

예수님의 강권적 선택에 의하여 구원을 받고

내 안에 빛이 불살라지고 나서

얼마나 많은 어두움이 날 절망케 해왔던가?

빛이 있었음으로 어두움은 날로 날로 더 뚜렷해지고

한번씩 죄의 바람으로 인하여 흔들리던 내 영혼의 창문에 비치는

그 그림자의 흔들림은 어지럽기까지 했다.

이제 조금은 더 밝아지고 조금은 덜 흔들리니

그 고요함이 날 참 평온케 하기는 하지만

내 내면에서 바라보이는

아직도 얼룩이고 있는 영혼의 창틀에 어리는 그 그림자의 흔적이

내 가슴을 짓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전과는 다른 점은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하며 죄에 대하여 벗어나려는 몸부림보다는

오히려 '좌절'성의 힘듦이 강했었으나

이제는 '조금있으면'.. 이란 비교적 희망이 그 얼룩을 보면서 든다는 사실이다.

 여로보암과 아비얌과 그 아버지 르호보암 들의

그 '깨닫지 못하는 ' ,

등불이니 그림자니

성령이니 죄니 하는 개념은

단지 그래도 기독교인이니 입에서 주문처럼 읊조리기는 하지만

관심조차 없는,

그래서 너무도 쉽게 너무도 많이 너무도 뼛속깊이 죄성에 물들어

세상과 하등 다름없이

땅의 나눔들에만 눈을 돌려 아귀다툼을 하는

그런 모습 들 하고는

아직은 조금 다름이

오늘 묵상을 진행하면서 조금은 다행으로 생각이 든다.

 

 오늘 '댓글'에  'G' 님의  존경하던 분의 '넘어지심'이

부디 저들 '여로보암' 등의 싸움에 다름없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바라기는

내 등불을 바라보고

그 등불에 비추인 내 어두운 그림자를 빼내는 작업이

'좁은 문'의 과정임이

세상 모든 선택받은 자들에게 같이 공감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 그 과정을 가는 적은 자들의 발걸음이

바로 등불로 대표되시는 '성령 하나님'의 조명 때문에

더욱 뚜렷이 어려움이 들어남을

나를 포함한 모든 소수자들이 깨달아

어려움이 올 때 어려움에 집중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어려움이 기쁨으로 바뀌길 소원한다.

그리하여 어려움이 올 때마다

영혼은 한걸음 씩 더욱 더욱 성장하여

이제 더 이상 내 안에서 드러나는 그림자가 사라지고

등불의 빛 만이 환히 투영되는 그 날이 어서 도래하길 원한다.

과정 중에 허락하시는 그 등불의 밝기가 주시는

그 영롱한 기쁨이

내 삶 속에 찬양으로 작품으로

인간관계에서 '덕'으로 표현되길 원한다.

누가 표현은 하지 않아도 '주님의 향기'가 배어나옴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 안에 비치는 등불을 가진 자들에게서 맡아지기를 원한다.

 

오늘 저녁.

모임이 있다.

내 안의 등불이 활활 타올라

그 과정에서도 밝혀지길 소원한다.

 

 

적용

 

1. 낮아진다.

  겸손해진다.

 모든 모임에서 그리되길 소원한다.

 

2.  등불을 묵상한다.

 아직도 내안에서 흔들거리며 비치는 내 심상의 창호지 문에 비치는

 죄악의 그림자를 묵상한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태우시길 원한다.

 

3. 성경 세장 읽는다.

 

 

기도

 주님

언제나 그럴 지요.

언제나 되어야

제 안에서 그림자가 없어질런지요.

주님.

어두운 제영에 오셔서 빛으로 밝히신 주님이시여.

제 안의 온갖 더러운 것들 하나하나 밝히시어

저로 인하여 쫓아내고 털어내고 밝히시길 원하시는 주님이시여.

참 어려웠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저로 인하여 말씀 앞에 투영시키고

말씀을 통하여 성령으로 비추어 주시고

그 비추심으로 깨닫게 하실 힘을 주시고

성공할 때 마다 깊은 감동으로

실패할 때마다 말없는 탄식으로

안타까운 어루만지심으로 만지어 오신 주님이시여.

이 과정이 어려웠지만 그리 어려운 과정만은 아니고

오히려 기쁨의 과정이었고

위안의 과정이었으며

감동과 치유의 과정이었음을 주께 고백합니다.

주님.

귀하신 주님.

저로 인하여 주님 ...

주님의 빛이 조금이나마 더 밝혀질 수 있길 소원합니다.

간절히 비올 것은

제 안의 아직도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어두움의 뿌리를 밝히시어

드러내게 하소서.

뿌리 뽑으소서.

그 시간을 어서 당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