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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은 소리없이(왕상16:15-34)

주하인 2010. 10. 15. 09:37

제 16 장 ( Chapter 16, 1 Kings )  

저 뜨거운 해가

저 뚜렷한 아침의 태양이

저 곳에 있음은

알고 지나쳐 다녔었지만

 

어찌

저 주님의 작품이

저리도 적게 보였었던가

...

이제야

 

깨달았다

 

내 죄 탓이었다

그냥 그리

시류에 묻혀 적당히 보아오며

털어내지 않던

내 죄 탓이었다

 

그래

다시 회복하자

그 강렬한 아침의 햇살을

이 영혼 깊숙이

받아 들이고

누리어 보자

 


惡은 소리없이(왕상16:15-34)

15.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일 동안 왕이 되니라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어쨋든 '유다'에 반하는 '이스라엘'은 12지파로 선민으로 선택되긴 했지만

그들의 행함은 어쨋든 아사의 유다보다는 훨씬 '악'한 편이다.

그들을 '악'의 특질로 볼 때

악함을 경계하는 구분의 특질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시므리'는 칠 일만 왕이 되었다.

참으로 분주하고 짧다.

어찌보면 역동적이다 시피 보이는 현대의 증상은 무엇이 다를까?

날이 바뀌기가 무섭게 새로운게 나온다.

과거의 것은 '죄'다 .

기능을 다하기도 전에 버려진다.

'스마트 폰'이 나오니 '피처폰'쓰는 세댄 다 과거다.

다 버려야 하니, 그 경제적 손해 뿐 아니라 - 온 지구적으로 말이다. - 환경적 피해는 어떤가?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정서적 불안정'이다.

핸폰에 매달릴 때보다 스마트폰이 훨씬 더 중독적이다.

너무 빠른 것은 '악'할 이유가 된다.

그런 뜻없이 사라지는 유행이나 편리 보다는

차분히 스마트 폰 살 내 돈가지고 '십일조'나 '헌금'을 하거나 사회 부조를 통하여

못사는 나라를 도우면 얼마나 좋을까?

핸폰 애껴가면서 써서 통신비 절약하여 가계에 도움이 되고

나머지 남는 시간에 좋은 책한권 더 읽는 게 얼마나 좋을까?

차분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악'은 그러질 못하게 한다.

그걸 '고리타분'하다고 속삭인다.

가만히 있는 것이 '죄'라 속인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찬양하는 것을 '우습다'고 한다.

'그래서 뭐가 되냐 한다.'

뭐가 되지 않는가?   진짜로?

아니다.

된다. ^^*


  
21.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에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아 저로 왕을 삼으려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좇았더니
 '악'은 화해나 조율보다는 '분란'을 조장한다.

각양의 이유를 대며 그런다.

그리고 평화 보다는 '싸움'을 선택한다.

역동적이고 힘이 있어 보이나 결국은 파괴다.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수도없는 폭력의 미화다.

이제는 목욕탕에서 ' 용 문신'을 보면 , 멋있다.. 생각이 들정도다.

사회적 병이다.

 


 
22.  오므리를 좇은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은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정도나 순리보다는 '힘'이 원리가 된다.

 

  
23.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년 동안 치리하니라 
  아사가 유다에서 사십 일년 치리하는 동안

조금 더 악한 이스라엘 측은 많이도 변한다.

 안정감이 없다.

정돈되고 정리되기 보다는

기존의 가치를 자주 너무 과감히 무시하는 것은 ' 악'할 가능성이 많다.
 

 K원장.

이년 전 본원을 사직하고 영국에 공부하러 갈 때

마치 '영적인 형님'이 떠나는 듯 가슴이 허한 느낌이 없지 않음을 블로그에 고백했다.

7살 정도 적은 그는 비슷한 뜨거운 영적 의사 분들과

초창기 본원의 영적 리더로서 열렬히 찬양과 기도 하며

나에게 묵상의 원리를 집어주고 감수성있는 멘토링을 해주던 분으로

가슴이 뚫린 듯하더니

얼마전 공부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 입사 하였다.

임상과장 회의를 다녀와서 한 이야기가 가슴을 맺게 한다.

'과장님.. 참 요새 사람들 이상해요.

 점심 때 한달에 한번씩 임상과장 찬양하자고 제안하니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봐요.

 모두 정체성을 잃은 듯해요.. ' 하며 허탈해 한다.

  나라도 가서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이 넘치지만

가슴이 턱하니 막힘은 나도 금할 길이 없다.

 울 병원.

선교 병원을 지향하며 아직도 상당 수의 임상과장들이 기독교인인 병원임에도

이러한 냉소가 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아주아주 급하다.

 

 나.

이 속에 있으면서 '전인치유'를 아주 어려운 영적 도전의 상황에서

겨우겨우 유지하다

수년 전에 손을 놓은 이후로 참 편안한 생활을 해오고 있다.

다시 만일 하자고 하면 힘을 내기는 쉽지는 않을 상황이긴 하다.

 

 영적인 일.

특히 하나님의 일은 변화가 없고 지루해 보인다.

그리도 빨리 돌아가고 변해가는 세상에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공부하자 하기가 두렵다.

그러한 사실을 나랑 비슷한 영적 감수성을 가진 K원장의 입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하니

'악'이란 참으로 악이 아닌듯 아무렇지 않게 뼛속 깊이

하나님의 일을 막아서는 구나..하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었다.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이제 그 유명한 '아합'이 왕이 된다.

전례없이 악한 왕.

이세벨의 남편 된 왕.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욱 악을 행하는 자라지만

아래 나오는 '악'은 요새 사람들,

특별히 '악'을 '율법적 견지'나 '도덕적 견지' ,

아니 그보다 더욱 악의 경계가 흐려진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이건 '죄'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러기에 그들, 그런 생각에 파묻혀 있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하다'...라 하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아니..오히려 ' 네 만 옳으냐? ' 하며 '비인간적이니'  나름대로 '길'이 있다며

종교 대 타협이니 어쩌면서 비웃고 핍박하며

가짜 이름 인터넷에 써가며 '네티즌'의 힘이니 뭐니

나쁜 소리 많이 하지 않겠는가?

더 나쁜 사람은 '돌' 던지기도 할 지 모르지...ㅜ.ㅜ;;;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겨우 다른 종교 숭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사당 세우고

단을 쌓았다는 것이 그렇게 악하단 말인가...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믿는 자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자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자들,

당직 방에 앉아서 그토록 구미를 당기는 UFC 이종격투기를 보고,

TV나 비디오 보는 것이 얼마나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것인 지 알면서도

그 약한 영혼의 흔들림을 가지고 고민하는 자들은...

그 우상숭배의 죄를 '왕'같이 중책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공공연히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지만

세상의 사람들이야 그렇겠는가?

 그런데 정말 구약을 보면서 의문이 드는것이

아무리 지혜가 현대에 비해 부족한 자들이지만

저토록 하나님이 뚜렷하게 말씀하시고

조금만 주님의 말씀만 준행하면 천대의 복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저리 미련들 할까

어찌하여 저렇게 악에 악으로 익어가는 '악'한 사람들이 있는가..하는 의구심이다.

왜 저리 미련한 자들 만 있는가?

저들은 혹시 '악'을 짓는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구약의 저자리에 저렇게 꼽아 앉힌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니, 그렇지 않고 정말 어찌 저렇게 미련하게 악할 수 있는 가 이다.

그것도 수십년 수백년 걸쳐서 말이다.

 

 그런데, 아합의 그 극적이고 능동적인 우상 숭배와 하나님을 저항하는 일이

정말 우리 현대의 세태에는 없을까 하는 점이다.

오히려 너무도 닮은 점이 없지 않는가?
 우상이란 무엇인가?

하나님 이외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어떤 것,

주님 십자가 보다 더 시간을 끌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위에서 계속 늘어 놓았지만 세상은 급변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조금도 다른 곳에 눈 돌릴 틈을 주고 있지 않다.

집에 가도

길에 걸어가도

버스를 타도

전철을 타도

잠시 그냥 가만히 있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다.

무엇인가 열심히 들여다 보고 귀에는 이어폰 꽂고 있다.

요새는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스마트 폰으로 정신을 못차리게 한다.

관심을 가질 것이 비단 그 뿐이던가?

성공..................

아이구.............머리...

 

위에 잠시 고백했지만 당직 방에서 UFC동영상을 찾다가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멋지게 잡아 놓고는

인터넷 뒤지다가

잠시 '브록 레스너'란 유명 프로레슬러가 UFC로 뛰어들어

너무나 우월한 육체를 병기 삼아 파죽지세로 전통 강호를 무찔러 가며

4전 만에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는 것을 보며

그 뛰어남에 정신 잃고 3시까지 이것 저것 들여다 보다가

잠시 잠을 자고 다섯시 되어서 제왕절개하느라 잠을 잘 못잤다.  ㅜ.ㅜ;;

 스마트폰

필요대비 가격이나 사용할 반드시의 이유보다는

조금의 편리함과 남들이 하는 것을 좇는 게 싫어하는 이유로 아직 사지 않고 있다.

 나 .

그런 것 싫어한다.

스마트폰이 악이란 이야긴 아니다.

위의 조그마한 유혹에도 하나님 생각할 시간이 저렇게도 빼앗기는 데

자제할 수 만 있다면 스마트 폰 아니라 무엇에도 '악'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아합이 악하게 된 이유에는

그가 철저히 악을 선택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이고

요새 세상이 수없이 많은 기독교 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은 영적으로 아주 타락한 '악'한 세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즈음 조금 안정되니 또 주님을 묵상하는 마음이 멀어지는 듯하다.

그래서 인가 다시 멍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말씀을 올리는 것을 의무처럼 하고 있으니

이것이 날 악함으로 부터,

아합의 예같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악으로 부터 조금은 붙들고 계시는 느낌이다.

다시 한번 주님은 '악'함에 대하여

내 악해질 그 약한 속성에 대하여 경계 시킴이 분명하시다.

감사하다.

오히려..

 

 

적용

 

1. 분주함을 멀리한다.

 특별히 오늘은 하루 조용하게 지내겠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과의 가십으로 주님 만날 시간을 소모하기 보다는

그들 사이에 있더라도 말을 줄이 수 있겠다.

 

 2. 스마트 폰 바꾸고 싶은 욕심 자제한다.

 아직 유혹에 약하다.  ㅜ.ㅜ;

 붙들릴 까 조금 더 있다가.. .

 

3. 권위와 권세를 인정한다.

 목사님, 원장님, 대통령, 어르신.......들의 말을 가능하면 존중한다.

 

4. TV 안보겠다.

 죄는 아니지만

 주님을 멀리하는 우상을 모신 산당이 될 수 있다.

 

5. 성경 세장 읽겠다.

 말씀 만이 살 길이다.

 

6. 고리타분한 나 자신,

  때로는 수도자 같은 나 자신을 기뻐한다.

 주님이 기뻐하신다.

 골프 치기를 포기하고  술을 잘 안마시고 적극적인 SNS을 피하고

 블로그에서 친구 맺기 자제하고 ...

 성공을 위한 일체의 조건을 다 못하는 날 .. 기뻐한다.

 주님을 위하여 아주 적은 시간이나마 더 드릴 수 있게 되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

 

7. 고리타분한 내가 금요 예배 찬양 드리게 됨을 감사하자.

 영적으로 흔들리니  또 무엇인가 해야할 것만 같은 분주함이 마음에 찬다.

 안절 부절 못하려 하는 내 마음을 기도로 잡았다.

 주어진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그냥 눈감으면 주님의 앞이 되길 원한다.

 꼭 이 땅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가?

 찬양하다 죽어도 좋아...

 그마음 , 그초심 잊지 않도록 한다.

 

8. 고리타분한 '전도'를 적극적으로 하자.

 마음을 그리 먹자.

 삶이 전도 터 아니던가?

 

9. 악함에 대하여 묵상하자.

 악해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순식간이고 , 가랑비에 옷 젖는다.

 어느샌가 말씀을 놓으면 그 때는 '실족'의 시간이다.

 아무리 감상에 젖어 하나님을 위한다 찬양하고 소리지르고 울더라도

 순식간에 악함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게 인간의 본질이다.

 아합은 악함을 결심하고 반발한 것이 아니다.

  그도 자연스러웠다.

  분주하지 말자.

  한걸음 늦게 가자.

  허락하신 환경을 최대한 기뻐하자.

 

 

기도

 주님

지난 밤 지켜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습니다.

당직 서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기도로 이겨내다가

UFC의 유혹에 넘어지며 새벽 세시까지 마음에 산당을 드려놓았습니다.

다행이도 새벽에 피곤한 눈으로 수술을 call받고 가서는

결심으로 인내하고 묵상대로 '질타'에 인내함으로

성격까다로운 보호자로 부터 다정한 소리로 안내했습니다.

주님 .

그 인도하심에 함께하신 주님을 감사드립니다.

환우 분 수술대에 올려놓고 기도하면서

그 불신의 산모에게서 '아멘'소리 나오도록

이 피곤한 입술을 인도하신 하나님.

저로 인하여 주님을 잊고 매몰되는 악함의 우상을

제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께서 막으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기쁨과 정열적인 깨달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소서.

새벽의 내 마음의 혼돈과는 다른 성공을 이루어내게 하신 것이

주님의 말씀을 타고 흐르시는 성령의 존재감 탓인 듯 그리하소서.

주여 ,

간절히 비옵는 것은

세상의 정신없이 돌아가는 문명의 이기들, 포스트 모더니즘적 힌두이즘적 개인주의에 흔들려

주님을 잊고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그들의 비아냥에 마음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악에 나도 모르게 동조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주님 뜻대로

주님 말씀대로

절 잡아 이끄소서.

그리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의 자유와 평화,

그 평강의 온전한 기쁨을 저로 강하게 느끼게 하사

어디가도 주인없이 방황하는 이 세상의 불신 영,

주님을 알지만 제대로 믿지 못하는 이 악한 세대의 영들에게

조금은 표본의 모범이 되는 자 되게 하소서.

주여.

제 아들들 통해 그리하소서.

절 잡아 제 아들들에게 성령의 거룩한 기쁨이 쏟아지는 통로가 되게 하시사

그 후에 그들이 세상을 배격하지 않고

누리되 다스리게 하시고

세상의 이기를 사용하되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그것들을 이용하여 그들의 삶이 더욱 윤택하고 풍성하고 여유롭게 만드소서.

그들의 지혜를 세상이 경탄하고

그것을 통하여

아들들이 세상의 표본이 되도록 이끄소서.

그때까지 성령으로 강력히 보호하소서.

제 아내와 저도 그리하시고

제 가족 모두 그리하시고

이 블로그의 가족도 그리하시고

세상의 모든 기독교 가족도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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