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인내와 나의 천국(약 5:7-12) 본문
(약 5:7-12)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형제들아..
뜻을 깊이 같이 하는 믿음의 형제들아..
나.. 형제들아...에 속하길 바란다.
주의 강림하기 까지..길이 참으라.
형제 들은
길이 참아야 한다.
길이 참아야할 이유... 예수님의 강림을 기다림이다.
주의 강림하시면
우리는 천국에 올라간다.
'휴거'일 수도 천년왕국일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거기는
이땅의 이 수고로운 '힘듦'이 끝나는 곳.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는 곳..
우리의 의식으로는 인식조차 불가능한 곳이지만
거기는 우리의 생각을 훨씬넘어서는
기쁨과 놀라움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다.
당연히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에너지로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생각함으로 인내해야 한다 .
길이참아.. 이른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길이 참는다.
거기에는 우리의 의지만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겠다.
그래.
예수님 영접 전에도
군대 훈련에 , 오랜 행군후
초등학교 운동장 달린 후 땀흘린 후에도
대학 입시를 치르고 나서도
후련한 기쁨은 있었다.
하지만, 길이 참기에는 '의지'만으로는 반드시 고갈되는 결과 밖에 없다.
그것은 가능치 않다.
'이른비와 늦은 비'의 은혜가 있기에가능하다.
이른비..
씨 뿌리고 발아하기 까지 필요한 비.
늦은 비..
성숙하고 수확을 위한 '비'.
농부의 노력과 기다림도 필요하지만
비가 없으면 어찌 가능할까?
한편 , 농부는'비' 가 내릴 희망이 없다면
어찌 기다릴까?
그들이 오래 기다릴 수 있음은
비 온 후의 성장의 기쁨을 알기에가능치 않던가?
기쁨은 어찌 있던가?
씨의 발아와 성장이 '비'로 인하여 됨을
눈으로 목도하기에 가능하지 않던가?
생명은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는
임하지 않는다.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생명은
수확은...
주의 강림이시다.
그 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영생이다.
그 생명의 탄생을 아는 우리이기에
인내를 할 수 있다.
인내를 하는 과정에 주어질
이 인생의 고난을 인내하면 주어질
과정과정의 '이른 비'와 '늦은 비'의 그 은혜를 알기에
우리는 오래 참을 수 있다.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난...
주님의 형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의 형제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을 받을
그런 자격이 생긴 자다.
그러기에 인내해야 한다.
농부의 마음으로 그래야 한다.
농부의 기쁨을 기대하며 그래야 한다.
수확을 기다리는 과정 중에 임하는
'이른 비' 와 '늦의 비'의 경이로움 감동을 아는 자이기에 그래야 한다.
형제의 자격에 들어오지 못한
많은 불신자들과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고 방종하는 세상의 이름 만 기독교인인
그들의 심판을 두려워 하여서라도
인내해야 한다.
이제 심판 주가 곧 오실 것을 믿고 알아야 한다.
그래서 더욱 인내 해야 한다.
인내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래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 어찌 인내 해야 하는가?
'서로 원망하지 말라' 신다.
형제끼리 그래라 하신다.
인내 하여야 할 것이 부지기수이고 너무도 많지만
오늘 특별히 더 그래야 할 것은
'형제끼리의 원망'하고 싶은 것을
내려 놓으라 하심이다.
그리고 위의 당연한 이유에 대하여 상기하면
주님은 기쁨으로 답하실 것이시다.
이제는 늦은 비의 경이로움으로 그러실 것이다.
그리고 그 늦은 비의 은혜는
내 안에 더욱 '영생의 열매'를 뚜렷하게 하실 것이시다.
성장한 자의 기쁨은
이른 비의 탄생의 기쁨과 비교할 바가 아니리라 싶다.
주일이다.
엊 저녁에는 너무 피곤을 느껴
저녁을 먹고 나서는 기절하다 시피 잠이 들었다.
아침.
주일이라서 느즈막히 일어나고 싶었지만
출근 시간이 되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진다.
괜히...
홀로 눈떠 있는 시간에
'외로움'이 슬그머니 침입하려 한다.
그 외로움의 뒤엔
' 관심'이 줄어든 친구 들,
열심이시던 K목사님의 소원해지신 현상,
.........
나이 듦이 겁이 나려 한다.
외로움이다.
나.
예수님 만으로 진정 기뻐하려 한다.
그리 하여야 함을 알지만
어쩌면 나이 들어가는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
남자는 우리 나이 대의 베이비 부머 세대...처럼
역동적 삶을 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은퇴를 하게 되며 사회 내지 심지어는 가정에서 조차
서서히 '중요성'을 상실하게 됨으로
상대적으로 커져가는 '공허함' 이 비교적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이 외로움의 실체는 아닐까?
여자들은 또 어떨까?
폐경의 나이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도 자식들의 독립..등은
외로움을 커지게 할 여러 당연한 조건들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기는하겠지만
이러한 외로움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삶속에서
그 외로움을
두려움이나 마땅히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해
깊이 자신 속으로 빠져 들어가거나
그러한 외로움의 막연한 상대 - 내 상황처럼 ..- 에 대하여 원망을 가지거나
오히려 찾아 다니며 메꾸려 함은
그 마음에 더 커진 힘듦으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현대의 각종 병리.
그 깊은 속내 들에는 이 외로움에서 파생된 현상들이 즐비한 탓이다.
나.
잠시지만 그 습관성 외로움은
내 영혼에 원망을 드리우려 했고
그 원망은 날카로운 만족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난 말씀이 있다.
습관된 말씀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다.
내 '묵상의 장소' ,
변기 위(^^;)에 앉았다.
잠시 눈을 감고 외우고 있는 말씀 구절에 대입하여
원망을 가져다 놓았다.
십자가를 연상한다.
마음이 가라 앉는다.
오늘 묵상 구절을 읽는다.
'인내'에 대하여 나온다.
인내의 당위성에 대하여 나온다.
그렇다.
내 이 모든 삶의 고통은 이유가 '당연히'도 있다.
인내하게하심이다.
인내는 '수확'을 봄이다.
수확의 과정 중에 누릴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를
누리게 함이시다.
인내의 과정 중 솟아날
그 파릇한 생명의 숨결을 체험하게 하심이시다.
인내를 통하여
나와 같은 인내의 인생과정에 참여할
'형제'들을 느끼게 하심이시다.
그 형제들은 영생의 비밀에 깊이 참여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두려움이 임할 것을
알게 됨이다.
인내하여야 한다.
죽도록 그리해야 한다.
인내함을 알고 결심함으로 누릴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의 기쁨을 체험하기 때문에 그렇다.
인생이 고난 뿐이 아님을 체험해야 한다.
순화되는 영혼이 다시 열매를 맺을
신비로운 경험을 위해서 그리해야 한다.
적용
1. 인내 하자.
내 뜻에 맞지 않는 자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 척~~ 하자.
척이 중요아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나에게'는 '척'이기 때문이다.
영혼 깊숙이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난 부족한 자임을 주님은 아시리라..
나..인내하려는 그 시작이 중요하다.
그렇게라도 인내하자.
2. 비 내린 후의 대지를 상상하자.
온통 푸릇한 새싹으로 덮이겠고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날 것이다.
그것.. 농부에게는 수확 만큼이나 놀라운 동기가 될 것이다.
나.........
내 영혼에 내리실 '이른 비' 늦은 비의 현상을 생각하자.
3. 형제.
난.. 인내함으로 '성숙한 주님의 형제' 대열에 끼이는 것이다.
4. 영생을 기억하자.
요새 계속 '영생', '영원한 삶' 에 대하여 눈에 들어온다.
막연히 타인의 천국 간증에 대한 그림 뿐이아니고
나의 영원한 삶에 대하여 사모해보자.
'외로움'이 없는 ,
'고통' 없는
영원한 기쁨의 삶
샬롬의 삶.
가슴 뿌듯이 지금도 차오르는 이 뿌듯함을 넘어서는
조금더 실체화된
'나의 천국',
'나의 영생'에 대하여..
5. 성경 세장 읽겠다.
6. 주일.
주님의 하루.
더욱 인내하자.
주님 위해..
기도
슬그머니
내 피로한 마음을 뚫고 또 이전의 '외로움'이
절 사로잡으려 했습니다.
그 외로움을 주려했다 느껴지는
막연한 타인에 대하여
원망이 올라오려 했습니다.
당연히도 마음은 격한 원망의 시원함 후에
미움...으로 불편했습니다.
주님.
그래도 말씀이 계셔서
전 다시 금방 평강을 찾았습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이른 비의 그 놀라운 체험후
자주 자주 허락하시는 늦은 비의 사모가
저로 하여금 금새 해갈되게 하십니다.
특별히 '말씀'으로깨닫게 하시고
그 깨달음을 통한 성령의 역사가
전 '샬롬'이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주님.
샬롬이 '영생'의 감성임을 알지만
저에겐 '영생'의 삶에 대한
조금은 더 뚜렷한 '사모'가 필요합니다.
가끔이나마 흔들리는
이 어리석은 자의 영혼을 위해서
조금 더 인내하게 하시기 위해서라도
주님... 간구하옵건데
영생을 더 뚜렷이 알게 하소서.
어제는 퇴근 길에 잠시 기도원에 갔습니다.
차를 세워 놓고 그냥 앉아서 묵상기도하다 왔씁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차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햇빛이 제 마음을 포근하게 했습니다.
불어오는 잠시의 상쾌한바람은 제 영혼이 기뻐지게 했습니다.
들려오는 새 소리는 세상에 나와 그들 만이 있는 듯 평화로왔씁니다.
가끔 가끔 주위를 다니시는 '집사님'들의 발걸음 소리도
'형제'들의 이루는 천국에 대하여
아주 잠시지만 착각하게 했습니다.
그 평화 중에
주님을 묵상했습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 주님십자가 앞에 가려 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저..
영생이 너무 좋을 것이란 것을 압니다.
주님.
하지만 이 땅의 고난이 절 누를 땐,
가끔 가끔 흔들리려합니다.
오늘 말씀 처럼 '인내'하게 하소서.
인내하게 할 당위성을 조금 만 더 크게 해 주소서.
이른 비 늦은 비의 경이로움은
어제의 경험으로 대표되는 간간히 주시는 은혜로 알 지만
제 영혼에 더욱 크게 느껴지게하소서.
그래서 흔들림 자체를 기뻐할 수 조차 있게 하소서.
인내의 자신이생기게하소서.
주님.
제 아내,
제 자식들..
다 기억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영생의 형제들을 기억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세상의 것들은 주님이 허락하셔서
그냥 누리는 자들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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