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성령의 것 귀신의 것(약3:13-18) 본문
(약3:13-18)
14.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자랑
지혜의 자랑
독한 시기,
다툼,
거스름,
거짓말.
땅위의 것
정욕의 것
귀신의 것.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자랑.
지혜.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중심
정직
위로 부터 난 것
성령의 것.
자랑.
사람이 살다가 보면
남의 칭찬,남의 관심 등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본능이 아닐까?
그러한 관심에 대한 욕구는
특별히 '삶' 이 여유로와 지고 가진게 많아져
'자아의 실현' 욕구가 커지는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폭팔적으로 많아짐이 당연하다.
그러한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켜 성공하고 있는 것이
facebook, Twitter 등의 SNS가 아닌가?
사람들의 인정 받고 싶은 욕구는 끝을 모르고 달리고 있다.
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의 영혼은 '원죄'이후로
영혼이 상처를 입은 상태이다.
그들은 그들의 빈영혼을 무엇이든 채우려 하는 본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가장 간단한 것은
남들의 눈에 비친 '나'를 확인하는 것.
심리학적으로 '대상이론'이라 표현되는 것들.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어머니의 눈에 비친 자신을 열심히 쳐다 보는 것과 같다.
차분한 부모 밑에서 잘 큰 사람들도
한계가 있는 인간의 눈으로 어디까지 완전해질까?
그러기에 끝없이 인간들은
자신의 정체를 발견하기 위해
타인의 지지와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점점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서 '비교'할 대상은 많아지고
상대적으로 더욱 큰 공허감이 그들 영혼을 사로잡아가며
그들은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미친듯이
타인의 칭찬을 갈급해 한다.
칭찬 받기 위해 '성공'하고 자식을...
그 허전함 달래기 위해
갖은 '노추'까지 불사하지 않는 군상들을 보고 있다.
그러다......그들은 죽는다.
그거 ..물론
'죄'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죄는 아니다.
SNS하고 남들에게 칭찬 갈구한다해서
경찰 출동 안한다...ㅎㅎ
사도 바울께서 '율법'으로 인하여
죄가 들어왔다는 말씀처럼
죄인지 알도록 알려준
기독교인들에게,
그중에서도 조금은 성장한 자들에게는
'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알게된 우리 기독교인들이 '손해인가?'
아니다.
오늘 말씀처럼 ,
위로 부터 나지 않은 땅의 자랑은 '귀신의 것'이다.
귀신들은 세상에서 뿐이다.
유한한 이 땅에서로 끝이다.
그러기에
이 땅의 자랑, 남의 칭찬을 갈구함은
'독한 시기' , 질투, 다툼, 거짓말... 이 동반될 수 밖에 없다.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을 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 녀', '' 남, '토막... ' ' 성적인 ... ' ............ 수도 없이 나온다.
아닌가?
이 땅의 것의 끝은
'지옥'이다.
지옥을 연습하는 것이고
당연히도 '귀신의 장난'일 수 밖에 없다.
남을 의식하고 남을 신경쓰는 삶은 고통 뿐이 없다.
우리나라 제일 부자인 그들이
' 제사' 문제를 들먹이며 세상에 드러내고 싸운다.
아침 방송을 들으니
외신에서 그들을 비아냥 댄다니... 얼마나 이 삶은 불완전 한 것인가?
대통령은 '권력 누수'가 심화된다.
5년전 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자리였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자랑을 말까?
사람 살다보면 '자아'의 만족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기가 되는데
남의 칭찬.. . .자랑.. 그러기 위해서 성공하려 노력하는데...
그 달콤한 것을 완전히 절제하다 보면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어지는
무덤덤한 삶이 될텐데..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만 외치고
매일의 삶이 '우울'모드 일 수도 있는데.. 어찌 할까?
아닌가?
아니지 않다.
정말 때로 신앙의 길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령의 강권으로 첫 사랑을 경험한 후
예수님 영접됨으로 부터
정욕억제,
죄에서 멀어짐.........을 추구하며
성화의 길을 달려감을 목표로 신앙생활에 불꽃 같이
매진하다가 십여년 가까이 오니
점차로 '바리새인'처럼 변해가는 나를 보며
한참을 당혹한 적 있다.
주님은 당신을 사모하는 나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매일 말씀으로 인도하심을 깨닫게 하셔주셔서 다행이지
절제하려는 당위성 만을 깨닫고
혼자하려는 노력은
그게 비록 '영적 추구'라도
인간으로서는 가능치 않은 이야기였다.
이제 '자랑'하는 것도
죄가 아닐 수도 있음을 자연스레이..
정말 자연스레이가 중요하다.
자연스레이 알아간다.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자랑'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함께 하심으로 주신
그 놀라운 이룸들을
주위에 알려 자랑하길 원하신다.
때로는 '어린 아이'처럼 그냥 순수히 '자랑 '할 때가 있다.
그때도 '어느 기간'까지는 인정해주신다.
난...
귀신의 것을 자랑함과
위로 부터 오시는 성령의 것의 구분을
자연스레이 한다.
그것은 오늘 말씀처럼 그 자랑에 '자연스러움, 기쁨.... 부드러움'이 있으면 된다.
그게 구분점이다.
그러나, 참...힘들다.
어느새 내 자아가 하나님 앞을 막아서기 때문이다.
어느때는 하나님의 자랑으로 기쁘게 시작했다가도
내 속에는 쓰~악한 느낌이 들때도 있다.
그럴 때 입을 막아버린다.
때로는 분위기 어색할 때도 없지 않아 있으리라.
하지만, 그로 인하여
주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구분하여 자랑하는
지혜가 만들어 지고
인격이 변할 수 있다면
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기도
주님.
귀신의 것을
쉽게 구분하게 하소서.
손해를 보더라도
아니.. 실은 손해를 볼 것 같이 내 약한 자아가 흔들 거리는 것이겠지만
하나님의 것이라면
손해마져 감수할
그런 담대함 허락하소서.
입을 재갈 물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것,
위의 것..
성령의것만 사모하게 하소서.
그래서
제 인격에 화평, 온유, 겸손... 선한 것만 드러나게 하소서.
그 변화를 제가
기쁨으로
샬롬으로 인식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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