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시대의 암담함에도 [대하22:1-20] 본문
2.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아하시야는
42세, 한국 나이로 43-44세 쯤 되어서
왕이 되었고
겨우
1년 재위에 있었다
3.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그리고
그 짧은 시간동안
'아합의 길'로 행하였단다.
그리고 또
이는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꾀는 대로
악을 행한 것이었다고........ㅠ.ㅠ;;
이후
그는 어떻게 죽은 지는 계속 이어지는 내용을 통해서 알수 있었다
비참하고 추악한
그리고 '미련한 인생'
아~~ 바보 ~!!
나이 43세 쯤 되었으면 세상의 이치를 아는 나이라는 데
어찌 그는
왕이 되어서 까지
그리 미련하게, 그것도 어머니의 품에 놀아났단 말이던가?
무엇을 보이시려는가?
오늘 내용은 너무도 허무하고 어이가 없고
그 어머니 아달랴의 수렴청정과
그도 모자라 모든 유다의 피를 숙청하고 왕이되어
12.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6년이나 권세를 휘두르는
중국 고대황실, 로마 정권싸움, 조선왕조 실록 , 북한 정권.........에서 보는 듯한
무서운, 어이없는 일들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묵상이 집중하기 힘들다 .
토 나올까봐...
이 아침.
내
같은 육신을 가지고
같이 두발을 디딛고 땅에서 사는 자로서도
이리 어이없고 받아주기 힘든
인간들의 그러함을
어찌 주님께서 인내하시고 사랑하셨을까..
오히려 그 사랑에 더욱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그 사랑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하여
주님은
요아스를
하나님의 전에 6년이나 숨기셨다.
그렇게 그렇게
세상이 마구 비젼없이 미친 듯이 돌아가고
하나님이 안계신듯
이방 신을 섬기는 아합들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신
유다의 씨가지 다 말린듯 절망적인 상황,
마치 지옥도 같은 상황이 펼쳐졌어도
엘리야의 칠천선지자처럼
요시아를 '하나님의 성전'에서 6년간 숨겨 주셨다.
그렇다.
.
이 코로나 시대
벌써 이전 부터 수없이 많은 어지러움 들....
세상의 징조는 다분했지만
그러함을 완전히 가려 버릴 듯
코로나의 암담함은 온 세상을 뒤 엎는다.
이 후의 삶은
더 버거울 듯, 소망은 어디에도 없이 느껴지는 세상이다
어쩌면 지금.
지금이 아달랴의 시대가 아닐까 싶기는 하다.
아달랴등을 바라보는
통탄하는 유다 소시민의 시선이
지금의 우리 믿는 자들의 안타까움이고.............
그러나..
주께서이리 말씀하신다.
보여 주신다 .
숨겨 놓은 '요시아'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큰 뜻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신 것 처럼
작금의 암담한 모든 것..............
그 안에서도 요시아는 있고
결국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다 .
해야할 일은
43살 될 때까지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래서 쉽게 목숨을 잃은 아하시야 같이
세상에 매몰되지 말고
하나님을 더 돌아보아야 할 때이며
이제 눈에 보이지 않으실지 모르는
하나님의 역사를
더욱 간구하고 인내할 때.. 말이다.
안그런가?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소위 잘 나가던 대형교회에서 화염병을 들면서까지
세상의 것을 지키기 위하여
세상의 가장 극악한 방법으로
권력에 도전하고 있다
아..........
그들의 잘잘못 따지는게 아니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세상 법정에 가지고 가지 말라시기 까지 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행동으로
세상에 저항하고 있는게 문제이며
그것을 보는 우리들..
세상의 사람들은
어디에 마음 둘데가 있을까?
정말 혼돈 스럽고 답답하고 힘들 때
그래도 의지하고 픈게
하나님 앞, 십자가 밑이어
그 하나님이 그래도 계실 듯한 '교회',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에서
화염병 저항을 했으니
어떻게............어디에 기댈
마지막 기회조차 그들은 박차고 있음이
가장 우선해서 하나님 앞에 끼친 죄 아니던가?
아하시야의 미련한 죄,
아달랴의 두려움 없는 극악한... .. 그것과 무엇다를까?
이제...........
그래도
세상은 미쳐 돌아가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 아니시면 온 인생의 존재의 의미가 없음은
살아있는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가능성이 없음을
아는 우리는
그래도 기대하고
그리도 기도해야한다 .
주님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전에
육년 숨어 있는
요시아를
오늘 보여주시는 이유이시다.
그 암담함을 견뎌야할 당위성.
그래도 놓치 않아야할 소망의 믿음 말이다.
감사하다.
주님.
세상이 마구 마구 돌아가는게
아하시야의 미련함 같으며
아달랴의 너무나도 악함 같습니다.
이럴 때
마음을 세상의 그러함 에 빼앗기면
온통 답답함과
절망으로 점철 될 것만 같습니다.
모든 것 포기하고 될대로 살아야만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께서 칠천선지자, 요시아등을 통해
그래도 기대하고 기다려야할 이유에 대하여
넌지시 보여주고 계십니다
힘을 주소서.
답답해하지않고
지금까지와 같이
오실 예수님
재림하실 하나님을 고대하며
뵈올 주님의 날을 기대하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힘을 주소서.
은혜를 주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말씀이 계시니 기대합니다.
내주여.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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