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제 의로운 책무를 떠맡아야 한다[수7:16-26] 본문
부제) 주님 말씀이 있으시기에 더욱 배려하고 주의하자
하나님 앞에서 하는 고뇌의 밤
내 이러함이 하나님 안 형제 들을 괴롭거 하는건 아닌지 고려하자
지금까지 지내온 것
내 모든 것 다 아시고
인내하여 품어주시는
도피성 예수님 품 안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성장을 위하여 기다려주신
긍휼과 사랑의 인내의 시간이셨다.
이제 가나안 땅 들어가
영원의 삶을 살아야 할
성화를 목전에 둔 자로
어릴 적 태도와 선택을 함은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괴로움의 이유가 될 뿐이다
성장하는 자
의로운 의로울 자들에게는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됨이 필수 적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참아주시며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부응하는
의로운 자로서의
온전한 책무이리라
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이에'라는 표현은
'KJV'에서는 'So' 라고 나오는 반면
'NIV에서는 생략되어나온다.
그래서 한번 이에 대하여 정리를 해보았더니
이런 답이 나온다.
여호수아 7장 16절의 "이에" 또는 KJV의 "So"와 같은 단어는 본문의 문맥을 연결하고, 이전 사건과의 논리적·시간적 연속성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음을 강조합니다.
1. "이에" 또는 "So"의 의미
문맥적 연결: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7장 10~15절)을 듣고 난 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는 여호수아의 순종과 신속함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의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시간적 흐름: 앞 사건(이스라엘의 패배와 아간의 죄 문제)에서 해결 과정으로 넘어가는 전환점 역할을 합니다.
2. NIV에서 생략된 이유
NIV 번역은 보다 현대적인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읽도록, 일부 접속사나 문맥적 연결어를 생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So"를 생략하더라도 전체 문맥을 읽는 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NIV는 여호수아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사건의 흐름을 부드럽게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영적인 의미
즉각적인 순종: "이에"라는 표현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머뭇거림 없이 행동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믿음과 순종이 함께 가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믿음은 불완전할 수 있습니다.
죄를 다루는 긴급함: 아간의 죄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즉시 움직입니다. 이는 공동체 내에서 죄를 방치할 때 그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하고, 죄를 해결하는 데 신속함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행동하는 믿음: "이에"라는 작은 단어지만, 여호수아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말씀에 따라 실제로 행동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이는 우리 신앙생활에서 말씀을 듣는 것만큼이나 실천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NIV에서 "So"를 생략했더라도 본문의 흐름이 손상되진 않지만, KJV의 "So"나 한글의 "이에"는 하나님의 명령과 여호수아의 행동 간의 즉각적 연결을 더 강하게 부각시킨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순종의 모범과 행동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에"나 "So"는 단순한 접속사가 아니라, 여호수아의 믿음과 순종을 드러내는 중요한 영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 만이 살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라는 표현이 그러함을 증거한다.
그런데 '그 밤'
여호수아는 어찌 지냈을까?
그리고 서둘러 아침에 '실행'을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지파들을 불러모으는 장면..
단호함.
하나님 앞에서의 지혜의 간구.
그 안에서 어떠한 갈등은 없었을까?
아마... '믿음'과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인간적 갈등들이
그 밤에 다 해결되지 않았을까?
'단호함'..
그리고 '안타까움'..
'혼돈을 주님 안에서 갈무리하는 밤.' ..말이다.
이러한 '리더'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 특별히 정서적으로 아주 불안정한 리더가
세상에 뜬금없는 ,
마치 '마귀 사단 합일 '된 듯 선언해버린 계엄으로
뒤 흔들리는 우리나라 앞에
저러한 리더,'기도하는 리더..
그리고 그 '기도하는 밤'의
주님 안에서 해결을
몸소 깊이 체험하는
그런 '즉각 순종하는 리더'가 정말 절실히 필요하다.
17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18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가까이 나온다'는 표현이 잘 이해가 안갔다.
그런데 아마도 '제비뽑기' 라는 '하나님께 맡기는 ' 방법으로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으로 쓴 거 같다고 한다.
아.. Chat GPT - 절대로 끌려가지 않는다. 이것들은 도구다.. 언젠가 분명히 AGI라고 초월적 AI가 되어 우리의 손을 넘어서 '적그리스도' 레벨까지 갈 가능성은 배제는 않기에 절대로 의지는 하지 않는다. 다만 허락하신 그날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중심잡힌 방법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러기 위하여 더 깨어 있어야 하리라... . -가 정리한 바에 의하면...
그마져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방법.
그 밤.
그 일찌기 일어난 그 밤에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로 얻은 '지혜'로
중심잡힌 방법을 - 세상을 사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방법, 삶속의 영성. 코람데오를 몸소 보여주는 거 아닌가? '이에' '아침 일찌기 일어나' .. 가까이 나오게 하기 위하여 ... 마음이 온전히 정리되고 지혜가 충만한 외로운 선택을 위하여 깊은 기도와 주님 인도하시는 지혜대로 결단하는 것 ! -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
25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확증',
아간의 고백과 물증을 앞에 두고
여호수아님이 준엄히 외친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그렇다.
불신자, 이방백성, 잡범들...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 땅의 온전한 정복을 눈 앞에 둔 이스라엘 공동체..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선민'이 아니면...
어찌 이러한 잡범이
모두를 괴롭게 하겠는가?
'귀한 자리에 오를 수록 더많은 책임'이 따르는 법.
주님 앞에 더 가까이 갈 수록
좁은 길 가는 자일 수록
'성화'에 대하여 아는 자,
주님의 뜻에 대하여 깊이 고뇌하는 자들..
성령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자들..은
그 만큼 '공의의 책무'가 커지는 거다.
'내 아무 것도 아닌 일 같이
고범죄, 그냥 단지 도피성의 죄로 묵혀져 잊혀져 버릴 죄.. 같아도
성장하고 주님 앞에 나가는 시간이 클 수록
온전히 '회개'하고 돌이키고
공의의 하나님을 인식하고
행동거지, 말, 내면의 혼돈을 정리하지 않고는
그게 '타인'을
공동체에 '직접' 타격이 될 수도 있음을
깊이 명심하라 는 뜻이다.
'네가 어찌하여' 한다.
이거..
작은 일이 작은 일이 아닐 수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책임을 가지고 매사에 더 깊이 배려해야하는 의무가 생긴 것임을
확인시켜 주시는 거다.
아프지만 반드시 도려내야할 '아간의 죄'...
'아골골짜기'의 죄.. 말이다.
나..
깨닫는 바 많다.
내 내면의 죄의 무게를 털어내느라..
이정도까지는 ... 하며
그냥 눌러 놓고 눌러 놓던 '죄'들이
그냥 용인되어 잊혀지던 어린 영혼이 아니란 이야기다.
아간의 죄는 '가나안 땅' 들어간 선민의 죄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실족할 위험의 죄를 말하는 거다.
이에
속히
주님을 깊이 만나는 밤을 갈구하고
아침 일찌기 '가까이 나오게 하는 ' 결단과 지혜를 발하는
그러한 내가 되어야 한다.
깨달음이 감사하다.
주님.
제게는 '아간 '.. 과 다르지만
'타인'에게 어쩌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한
내면의 문제들이 있음에도
너무 무거워 잠시 허락받아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
용인 받아 온 습관적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주여.
다 밝혀 내지는 못하지만
그러함...
이제는 확실히 깨닫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이제.. 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보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하면
어찌할까. .. 두려워졌습니다.
이제라도 의로워 져야 겠습니다.
내 괴로움 보다 타인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성령의 철저하신 인도하심으로
더 깊이 그리되어야 겠습니다.
감사하며 간절히도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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