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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오늘부터[고후 5:11-21] 본문

신약 QT

이제부터 오늘부터[고후 5:11-21]

주하인 2020. 10. 2. 09:44

 

 
13.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미쳤다 손가락질 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타인을, 세상을 위한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자연스레이 들게 하소서.

주여.

 

 

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다.

 

무엇이 그렇다는 이야기인가?
무엇이 그래서 그러므로.. 인가?

 당연히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고

하나님 함께 하심이 내 일상에서 뚜렷이 느껴지니 그러하다는 이야기 아닐런가?

 

그러므로

"이제부터는"이다.

 

이제부터는.. 이라는 단어가 새삼 눈에 크게 들어옴은

앎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이후의 뚜렷한 변화가

선을 긋듯 이루어지지 않았었음이다.

정말..

앎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달라져야 할 듯 싶다.

 

 어찌이던가?

무엇이던가?

 이전과 이후의 구분.. .

이제 부터는 달라져야 하는

그 구분의 근거가 무엇일런가?

 

 '육신'을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이 다 인줄 알고 살았던

'이전'과

'육신'을 따라 살던 때의 세상관을 버리고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로운 삶.

그러한 새 것.

그게 내 정체가 되는

'이제부터는 '

이전과는 다른 삶, 다른 시선 말이다.

 


19.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

    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 결과가

'화목'이다.

 

나와 나의 화목

나와 타인의 화목

나와 하나님의 화목

그러함으로 세상과 하나님의 화목이 이루어지게 하는 '나' ..

그런 내가

이제부터는 되는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이란 이야기다 .

 

이것.

달리 말하면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내 새로운 정체를 부여 받아 살아왔으면서도

삶 속에서는

그리 힘있는 삶을 살아내지 못했던 이유가

'육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 이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알수 있고

시작이

'화목'에 대한 시선이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추석도 지났고

또 하루가 시작이 됩니다.

연휴는 여전하고

'코로나'로 인하여

제 생물학적 그러함으로 인하여

여러 제 안의 오류된 선택으로 인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그 안에서

이제부터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화목하게 살

새로운 결심을

주님께서

말씀으로

오늘 다시 '획'을 한번 더 그어주십니다.

 

주여.

정신차리고

그리 살겠나이다.

나와 나의 화목

나와 타인의 화목

나와 하나님과 화목이 더 깊어져

타인과 하나님의 화목의 도구가 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주여.

도우실 줄 믿습니다.

 

성령안에서 내 모든 생각과 마음을 다 아시는 주께서

오늘 또

그리 결심하도록 인도하시고

결심을 행하도록 도우시며

화목의 새로운 하루가 되는

그런 날이

이제부터는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 주여.

거룩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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