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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자 (애3:40-54)

주하인 2006. 3. 18. 08:52

 

 (예레미야 애가3:40-3:54) 

 

40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마음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주님은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고

여호와 앞에 진정으로 다가 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마음을 바쳐서

손을 드는 정성으로...

 

그것이 두려움이나

자신의 안정감이나

이렇게 해야할 것 같은 '생각'에 지나지 않길 바라신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만나길 원하신다.

 

그분은

행위 자체나

자신의 편안을 위해 하는 회개를 원치 않으신다.

 

그리하면........

 

 

44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고

( 조금 암울하지요? )

 

 다시 이렇게 하시겠단다.

쳐다 보지도

기도를 듣지도..

 

마치 버린 자식처럼...

 

 

 

 

48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Streams of tears flow from my eyes because my people are destroyed : NIV에는 '처녀'가 없음)

51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타는 심령이 눈에 보이듯 그려진다.

눈물이 줄~~줄~~흐른다.

 

 

 

 

 오늘따라 회개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깊어진 듯한 느낌이다.

회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 진실로 얘기하신다.

 

 마음으로 하는 회개라는 데..

그게 어떤 이야기인가?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내어서 기도를 하는데도 후련치 못한 느낌은 웬일인가?

그 당시의 이스라엘에도 현재 우리처럼 여성들이 더 많은 믿음을 소유했음이 분명하다.

여자들은 감성적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들에게 주님은 더 기대를 많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울음에 진심으로 회개가 섞이지 않았음을 통탄하시는 것이다.

 

지금도 기도원에 가보면

교회의 기도회에 가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고 울면서

회개하는 장면이 보이는데도

어찌하여 세상은 주님의 통탄하시는 소리로 가득한 것 처럼 느껴지는가?

어찌 점점 더 말세의 징조가 세상을 덮고 있는가?

 그 당시의 유대 땅에는 회개라는 이름으로 눈물 흘리는 여성 신도들이 없었나?

역시 많았을 것임에도

주님이 다시 회개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모습을 보이심은 또 웬일인가?

 

 회개가 그렇게나 어려운일인가?

 

눈물 흘리는 정도로는 되지 않는 심하게 어려운 일인가?

예수님 십자가를 묵상하는데도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떤 분들은 '회개'많이하는 '이단'이란 표현할 정도로 십자가의 위력을 믿는데 그 믿음도 또한 잘못일수는 없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진실이다.

십자가도 진실이다.

회개하면 용서 받고 십자가의 보혈과 날마다의 성령으로 씻음 받는 것도 행운일 정도로 쉬운 길이다.

 

 

하나님은 진실을 행하셨지만 인간인 우리의 무지에 회개의 길이 잘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성경 '곧곧에 우리의 마음을 바치라고 하신다.

 

마음을 바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 된다 .

이해를 높이고 주님과 통합 조절 시키는 것...

 

어렵지만 쉬운 길.

쉽지만 늘 속는 길..

하지만 해야하는 당위성을 오늘 메시지에서 확연히 밝히신 길..

 

 

전에도 기술했지만

사람의 자아는 ' 양심, 초자아, 거짓 메시지... '의 유형을 띤 '슈퍼에고' 와 '본능, 죄성, 정욕'등의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이드'의 양 작용에 의해 조절되어 있다고 하엿다.

 

 우리가 건강해진 삶을 살려면 이 자아가 균형이 잡힌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양한 삶의 이유로 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건강치 못한 다양한 가면을 쓰고 세사을 살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집에가면 인자하고 건강한 아버지가 세상에 나가 이웃을 향해서는 탐욕스럽고 심지어는 잔인하기까지한 자린고비의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누구나 다 여러가지의 가면을 쓰고 있다.

이 가면이 차이가 별로 없을 때 우리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인격자로 불리기도 하고..

완전히 하나로 일치되어 누가 봐도 한점 잘못이 없는, 하나님 보시기에도 죄가 없는 원죄가 해결된 분들은 '성자'라 불리운다.

 

 회개는 내면속의 어두운 부분을 정화시켜 건강한 자아를 이루어 건강한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건강한 자가 되어야 '회개'도 온전히 이루어 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한 선결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자신이 무엇을 진심으로 원하는 지 잘 알아야 한다.

난.. 즐거움을 원하는가?

자유를 원하는가?

힘을 원하는 가?

 

그래야 진실한 사람이 된다.

 

회개하라고 아무리 외쳐도 내안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영혼 속의 거짓 소리들이나 습관화된 강박관념에 의해서, 자신의 죄악된 욕정에 의해서 '축복'받으려고 흉내만 내는, 혹은 감각적인 만족을 위한 눈물은 진심으로 내가 받치는 회개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내 자아가 '생존의식'만 많아서 도저히 그 시간에 회개한 다는 것은 이해되고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다.. 느껴질 때... 이러하면 된다.

 주님...

난 안됩니다.

하지만 주님이 회개하려 하는데 난 못하겠습니다.

난 아직도 욕심이 많아요.

고쳐 주셔야 합니다.

 

 

(마음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

 마음을 쏟아 가만히 주님 십자가를 상상하며, 아니면..쳐다보며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손을 들고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되면 주님이 알아서 인도하신다.

 

'네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구나...'

 

그리하면 스스로 구름을 가리고 우리를 못본체 하시는 그 엄청난 시련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관점이 세상에만 집중이 되어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 공허로와진다.

 

주님은 우릴 만드실 때 '우리가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면서 주님께 찬양드리는 모습'을 유지하여 그 분을 기쁘시도록 하시게 만들어 졌다.

 

 따라서..우리는 그 분의 기쁨을 통하여 우리의 영육혼이 완전히 채워지는 기쁨을 맛보도록 허락된 존재다.

 

그런데 ..

이런 자아가 세상에만 눈을 돌릴 때 당연히 영혼은 비어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욕구만족이 완벽한 경우가 있던가?

 

따라서..

주님을 쳐다보면서

그 분으로 인생의 욕구을 채워가면 된다.

 

그분은 평안이다.

그분은 열정이다.

그분은 기쁨이다.

그분은 평강이다.

 

평강은 평화를 넘어서

눈물 나도록 기쁜 상태로 그분 예수님 만이 우리에게 진실의 평강을 주실 수 있으시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분이 주시는 그 천국의 일단을 맛보면서,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발휘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그 분의 사랑이고, 그에 따른 부수적인 현상인 기쁨을 맛보게 되면 , 그제야 우리는 진심으로 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분의 뜻에 맞춤에 의해서 얻는 기쁨인것을 알게 되고 그 기쁨을 잊을 수 밖에 없는 죄를 짓게 되면  그 기쁨을 얻지 못하게 될까,... 그것이 두려워서 자연스레이 회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회개란

이 세상의 삶을 주님 뜻에 따라 시험받아 가는 코스로 가다가

잠시 강렬한 육신의 유혹에 넘어져서 혼자 일어날 힘이 없을 때

주님 앞에 의지적으로 나가 기쁨을 되찾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우리가 '선택'적으로 하길 주님은 원하시는 것이다.

 

결코 두려워서

남이 하니까

모양새를 내려고

감각적인 기쁨 자체 만을 누리려고 ... 하는 초자아나 이드의 발상으로 하는

오직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회개의 모습은 전혀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회개의 본질과는 사뭇 먼 현상이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늘 사랑하시고

걱정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잘 못이 있을 때

진심으로 기쁨이 없어질까..

주님의 평강이 없어질 까 그것이 싫어서

얼른 회개에 매달릴 수 밖에 없도록 하소서.

 

내 의지적으로 그 기쁨의 주님

평강의 주님을 늘 만날 수 있는

마음 가짐을 원합니다.

 

남의 눈이 아니고

남들에게 보임이 아니고

진심으로 주님이 좋아서

내 선택에 의해

깊이 주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이제 주위에 고통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님 앞에 고요히 나가

아무 판단이 없이

아무 의도 없이

그냥 내려놓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말씀하실 때

그냥 따르오리다.. 라는

그런 마음으로 나가고

 

그리하여

주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높이 번쩍 치켜올려진 두손을 통해

주님이여 감사합니다.. 라고

목청 높여 찬양부르고 찬송할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오늘 하루

지켜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특별히 지수가 많이 아픕니다.

가여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회개는 기븜이 가득한 삶뿐 아니라 재건의 삶으로 인도한다.

- 자크 엘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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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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