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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애5:1-16)

주하인 2006. 3. 22. 10:48

 (예레미야 애가5:1-5:16) 

 

 

1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16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기억 해주세요 !  )

 

 오늘 고백은 정말 무시무시하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다.

힘이 들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굶주려서 몸이 새카맣게 탓다고 표현을 할까...절묘하다.

읽기만 하는데도 몸이 떨려서 힘이든다.

 등줄기 근육 어디 하나가 조이고 아파오는 듯하다.

 

그런데 1절 시작에 '여호와'께 먼저 고백하고 애원하는 구절이 나옴이 눈에 띈다.

 

'아버지.

제가 이렇게 당했습니다.

한번 들어봐주세요.

그리고 기억하여 주세요.

제가 이렇게 수치를 당했어요.

우리가 당한 이 수치스럽고 욕스러운 기억을 지켜봐주세요.'

라고 하면서...

 

마치 판소리의 명창이 심청이를 잃고 울부짖는 심봉사의 고통을 읊조리듯 이어간다.

 

 

큐티를 하면서

변화된 것이 있다면

상황 대비 마음의 안정.

영혼의 평화이다.

 

그보다 넘어서 평강을 사뭇 느끼고 있다.

'아~

이런 것이 '자유'라는 개념이구나.

아~

이게 심령천국의 느낌이구나...'

하는...

 

그래서

살아계신 아버지의 실존이 더 가까워 지고

세상은 점차 멀어지고

고민은 폭풍우 속의 항공모함 바깥 쪽의 일 로

마음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가는 모멘트로 자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항상 주님은 우리를 그 평안에 머물지 않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적 나태함을 경계해서 이신가?

요 며칠

흔들린다.

 

어젠 둘째를 혼냈다.

그러고 나니 잠시 휘몰아치는 혼란이 있다.

 

성경 속의 예레미야 선지자의 심정이나 유다의 그 고생에야 '객관적'으로 어찌 비교가 가능하겠냐마는 누가 그런다.

이웃의 '폐암', '간암' '심근경색' 등으로 인한 고통 보다 내 곳불(= 감기의 옛 표현 ㅎㅎ)이 더 고통스럽다고...

 웃을 일이 아니다.

장래의 고민

비교의 불길

좌절

외로움

죄책감

아이의 장래에 대한 생각 등...으로 갑자기 휘몰아쳐 오는 생각은 주님을 제대로 만나기 전의 고통으로 자꾸만 붙들어 가려는게 마치 오늘 아침 씨커멓게 타들어가는 유다 백성의 육신 같은 느낌이다.

 

 주님은 여지없이 내 심사를 너무 뚜렷이 표현 해주고 계신다.

 

그리고 나서는 이렇게 하라고 시작과 끝에 메시지를 남기신다.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우선 여호와께 달려들어라.

눈물 흘리고 애교를 부려라.

하나하나 고백하라.

매달려라.

처절하게 애원해라

 

 어제 온누리 세미나에 다녀왔다.

거기에서 '대상이론'에 대한 얘기를 잠시 했다.

( 이렇게  아기는 엄마 얼굴을 보면서 자아상을 형성한답니다. )

 

사람이 어렸을적 자기를 쳐다보는 부모나 권위자의 얼굴과 눈에 비치는 '사랑스럽다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에 대한 상, 즉 '자아상'을 형성한다는 얘기다.

이걸 보고 거울에 반사되어 보이는 것 같다고 해서 Mirroring이라 한다.

만일 비쳐주는 아버지 어머니의 상이 왜곡되면 받아들이는 자아 상이 왜곡되어 자기를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커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사람으로서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서 영화에서 나올 듯한 지고지순하고 절대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 - 친구, 부부, ..- 이 아니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행운이 넘치는 자들이다.

주님 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게 빌립보서 3:9에 이리 나와 있다.

( 내가 이 아기를 보듯이, 이 아기도 이 다정한 눈을 알까?   주님은 눈을 난 아는가? )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

 

 주님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날 쳐다보시는 주님의 얼굴에 나타난 나에 대한 이미지의 형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날 내 조건 즉, 내가 잘하고 능력있고 하는 율법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믿고 그래서 생긴 '의' 때문에 날 그리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해야할 것은 이것이란 얘기다.

즉,

하나님을 아버지라, 예수님을 형이라고 ,...그래서 절대로 나를 사랑해주시고 이해하고 감싸 주실 분이라고 가슴깊이 인정하고 .. 그 분 안에서 쪼잘거리는 것, 그리하여 그 분이 날 웃으며 쳐다보시는 걸 보면서 내 안의 스트레스가 날라가고 '아~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의식적이 아니고 그냥 감성 깊이 이해되고 박혀 버려서.. 두려움이 날라가 버리고, 어려움이 말라 붙어버리고 . 고통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상태를 얘기 하는 것이다.

 

 오늘 첫 구절의 고백이 이런 개념이다.

주님을 앞에 모시고 떠드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깊은 눈으로 쳐다보신다.

 

'아버지.. 나 잘못했지만요.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 '

..........................

..........................

 

그리고 나서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 아

그러고 보니 주님~ 제가 잘못했군요.

모든 원인이 제 죄에 있습니다. '

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이 반성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비틀어졌던 것이 바로잡힐 것이다.

문제는 풀릴 것이다.

고통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적용

 

1. 주님은 날 다 아신다.

 

2. 온전히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자

 상황

 현상

 바램을 다 고하자

 

3. 회개하자

 

 

 

 

기도

 

주님.

제 모든 걸 아시는 주님.

제가 잠시 흔들립니다.

이유없이 답답합니다.

이유없이 화가 납니다.

이유없이 좌절됩니다.

이유없이 속상합니다.

 

그래서 죄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는 듯하게 힘듭니다.

 

도우소서.

제가 잘못했나이다.

온전히 깨닫게 하셔서

새로운 영과 정직한 영을 만드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는 것이다.

- 조지 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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