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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다[욥11:1-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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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다[욥11:1-20]

주하인 2023. 11. 15. 00:35

(펌) 성경의 표현 대로 짐승 같던 심령의 소유자였던 내가 ㅜ.ㅜ;;; 이리 천국을 바라고 차원을 논할 수 있음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덕이다. 할렐루야

몸은 땅에 붙어 살더라도

하늘을 바라보는 자 될 수 있기를

 

생각은 수없이 나를 붙들려 애를 쓸지라도

마음의 향하는 곳은 내 본향이 될수 있기를

 

비록 나 지금은 이럴지라도

내 본질은 하나님 나라의 존재임을 잊지 않아

삶이 비록 나를 흔들려 그리 다구칠 지라도

그 어느 곳도 나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없는

그런 자 될 수 있길

 

그리하여 펼쳐진 내 영혼의 지평이 

이제는 아직도 이 차원에 머물고 있는

가여운 그들을 향해

긍휼과 사랑의 손내밀 수 있는 

그런 자 될 수 있기를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소발'...우족^^;; ...

사람은 이름을 잘지어야 한다는 것도 맞는 것 같다 ㅎ

비록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니 뭐... 아니지만

그의 소리가 개발보다는 조금 나은 소리로 들리니 어쩌겠는가? ^^;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그럼에도 '일견'듣기에 틀린 말 아닌 것 같으니

'말 많은 사람은 실수할 위험이 많다'니 

어찌 그가 틀리다고만 할까?

 

 단지 , 상황과 대상이 맞지 않고

너무 2차원 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게 느껴지는게 맞으니

그가 그리 느껴지는 거다. ㅠ.ㅠ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분명코 맞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은 누구에게나 당연하다. 

그래서 초등학교 들어가는 학생들에게나 가르치면 맞을 

당연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아프고 힘든 친구'에게 설교한다는게 문제지.. ㅠ.ㅠ(계속 많이도 이모티콘 쓴다. ㅠ.ㅠ  ㅎㅎ )

 

 하지만 코흘리개 아기에게도 배울게 있다 했던가?

다시한번 눈을 들어 그의 말을 잘 보면 

내 안의 그에 대한 그러한 욕구를 자극하게 한 잘못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 .우선.. 

오늘 타인의 말을 우선 들어보고

그의 말이 '다 아는 것' 같고 

'두번 세번' 변화없는 말을 하는 것 같아

짜증이 올라오려 할 때

오늘 소발의 말을 기억하여

나를 돌아보자. 

그리고 내 그러함은 혹시 .. 

과거의  소발 닮으신 ㅠ.ㅠ...아 ㅂㅈ, 김ㅅㅎ씨가 연상되어 그러는 거 아닌가.. 

혹여 내 안의 난 다 아는데.. 라는 교만은 없는지

혹여 그보다는 더 깊은 성장.. 

무조건 타인의 말은 경청하게 하려시는 

하나님의 뜻은 아니신지 돌아보자... 

 

그리고 내 안에 타인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경박한 의욕은 없는 지

소발 같은 내 모습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원한다. 

 

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일단 '소발'.. 그의 시선이 2차원이라 표현한 

내 판단 근거가 여기에 있다 .

 

 대부분

'땅은 크고 바다는 넓고...' 라 표현하거나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으신 ..이란 표현을 한다 .

'땅보다 길~다'는 표현은 솔직히 처음 본다. 

 

 그의 무지함.. 내지 편협한 시선, 미성숙한 관점을

단적으로 표현해 보이는 게 여기가 아닌가?

 

점과 점을 이은 선은 1차원으로   그 안에서 사는 자들의

최고의 확장은 '길다'다.

선과 선들이 모여지고 땅에서만 왔다갔다하면  2차원이고 

넓다가 최고의 깨달을 수 있는 한계다. 

 거기에 '하늘'까지 확장이 되면 '3차원'이고 '높다'까지 다 .

 

'시간'의 개념까지 포함되면 4차원..

성경에서 처럼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 ..^^*

 우리 ...이땅에서 깨닫는 자들,

초월한 자들... 초연해지는 자들이 

자주 느끼고 사모하는 것.. 아닐런가? ^^*

우주.........다중우주 .......뭐......한없이 넓혀지면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차원의 한계는 아직 11차원이라하고.. 

물론 그 이후는

'천국' 이후의 영원한 시간 동안 누릴 수 있는 차원이겠지만

각설하고....

 

땅을 '길다' , 바다를 넓다 하니..

그의 시선은 2차원~3차원에 고정된 시선(이럴 때 우리는 아이같다.  미성숙하다고 느낀다. ㅠ.ㅠ)을 가지고

'사람이나 사물'을 판단할 때

'고정'되고 '규격'화된 

자신만의 '세상'에 낮추고 가두어 

더 이상의 이해도가 없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되어진다 .

 

 즉, 소발의 소발됨은

'사람을 규정'한다는 거다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여 한차원 더 높은 시선을 가지고

'배려하고 공감'해주는 부분이 부족함이

소발의 답답함의 또 하나란 이야기다. 

 

옳다.

옳지만 유치하다. 

아무리 아는게 많고 빠른 머릴 가졌으며

충성되어도

시선이 자신만의 세상에만 고착되어 있는 자들을 

우리는 '미련'하다고 하고

'미성숙'하다하며

차원 낮은 사람이라 하고 

'지식은 많되 지혜는 부족한' 사람들이고

'가분수'라 표현하기도 한다 .

머리만 큰 사람들... 

 

우리 주변에 

시대가 점차 빨리 변함에 따라

이런 미성숙하고 공부만 잘하는 '천재'들이 많다. 

 

주변엔 아니 많던가?

S대 ... 가장 좋은 과 나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자.. 

빠른 계산 능력과 빠른 저장능력을 가지고 

아주 좋은 부모의 재력과 달성 목표를 가지고 

남들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됨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 

타인을 '자신'의 레벨에 맞추어 재단하고 판단하며

한껏 높아진 '지식' 만 많은 가분수들..

그들이 '권력'의 자리나 칭송의 자리.. 목회.. 정치.. 의 자리에 올라

타인을 '소발의 시선'으로 재단하게 되면

그야말로 주변은 '파산'과 '파멸'의 징조로 가득차게 된다 .

 솔직히 이런 경쟁속에서 빠른 저장능력 , 계산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라 자부하는 것........

솔직히 AI만 가지면 그들의 수만배 빠르고 크고 .. 뭐 그런 능력가지니

사람의 가치는 그들세계에서는 필요없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여기서 본질.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온전한 감성,

거기에 흉내를 내지 못하게 하는 '영혼'의 성장, 영성.. 

그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는

뛰어나다는 것..

AI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ㅠ.ㅠ

그러기에 정말 자랑할 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닮는 것.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

그것도 생명력있는 것을 주님안에서 만드는 것.. 

그안에 포함되는 개념이 타인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능력..

없던 것을 성령으로 인하여 ,말씀으로 인하여 되게 하는 것...이 

포함되는 것 아닐까?

 

 

그들에게 부족한 것 무엇인가?
차원 높은 시선..

 

 

그것을 '지성'에 포함된 '감성'과

더 나아가 '영성'이 완벽하게 구비된 자라 하며

그러한 자를 

주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거 아닐까?

 

 달란트.

사람마다 다르기에 누구나는 될 수 없지만 

누구나도 추구하며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길 바라심이

그래서 주님 손 잡고 

주님 나라 갈 때까지

주님과 교통하며 살아가는 것.. 

그거야 말로 

차원 높은 신앙인이 아닐까?

옳은 인생의 방향잡이.. 말이다 .

 

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단지.. 

인과관계,

지식

자신 만의 시선으로 

2차원 적으로(아.. 열심히 노력해야 3차원 .. 이 땅, 이 세상, 이 물질계...ㅠ.ㅠ) 바라보기 보다

한단계 (이러한 자를 평범하지만 균형 잡힌 옳은 자라 한다.. ^^*),

두단계 더 높은 (이러한 자를 성화된 이긴 자, 성인이라 부를수 있겠다 ^^*)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주님 부르실 그 날에 그 차원에 들어가는 '천국 백성'이 되고

주님의 주권적 판단에 의거

더더더 높은 차원으로 이동해가는 점진적 성장을 통해

영생의 인도하심을 누리게 되는 게 아닐까? ㅎ

 

 하여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소발'같은 나.. 

소발을 마주하는 욥님이 마주할 부족한 자신 같은 '나'를 들여다 보게 하신다 .

 

 쉽지만 참으로도 어려운 말씀을 주님이 하십니다. 

 

 소발의 단점이 사뭇 눈에 뜨입니다. 

그의 충성도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자신 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정죄하려는 

저 미성숙한 열심이 

얼마나 많은 아픔을 주변에 주고

하나님을 안타깝게 할 것이며

자신에게 2차원 , 3차원에 머물게 하여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해악'을 끼치게 하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제게 저런 면이 많습니다. 

주여.

아는게 늘어가고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되어지는 상황을 구분하는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이 어리석은 조급함으로 

얼마나 많은 손가락질과 타인을 향한 지적질을 하는 지요... 

주여.

용서하시옵소서.

이 공감력 부족하고 긍휼심 부족한 

제 소발같은 어리석음을 용서하시옵소서.

이러함이 주변과 자신.. 뿐 아니라 

하나님을 허탈하게 만들수 있는 죄임을 이해하게 하소서.

 

주여.

그리고 제가 힘들다고 생각할 때 

두번 세번 똑같은 소리를 하는 자를 향하여

급한 분노도 느낍니다. 

자주요.

그러한 '욥님'의 상황은 이해할 수있는 면이긴 하지만

타인을 향하여 분노로 대응할

그 어떠한 이유도 없음도 명심하게 하소서

 

주님.

소발같은 소발조차

그 의도는 '친구 욥'을 걱정함이 었다는 

역지사지의 입장을 기억하게 하소서

 

모든 사람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같이 성장한 장성한 자'일수 없으며

어차피 사람들은

나를 '위로'할 존재들로서의 대상이 아닌

'긍휼히 여기고 ' 

'이해하고 ' 

'사랑으로 대하며'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실 때까지 

같이 짊어지고 가야할 

모델링이 되어서 같이 나가야할 대상들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기를 기대하는 

동역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 

불신자들은 일단 빼고요.. 주여.

 

그리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무조건 선하시며

하나님은 그 어떤 아픈 상황에서도

날 기대하고 보고 계심을 잊지 않게 하시고

어제까지 묵상한 대로 

주님 만을 바라보려 몸부림치다가

저런 어이없는 상황,

스스로 발견되는 죄송한 상황에서도 조차

주님과 만의 '교류'가 정말 필요하며

그러한 '결심'과 

도저히 메말라 보이지 않으시는 것 같던

주님의 기뻐하시는 '은혜'의 충만한 허락하심으로

또 힘을 내고 나갈 수 있는

정말 ...구름기둥 불기둥의 절절함으로 

제 일상이 이끌리는

자주 경험케 하시는 그 원리의 힘으로 

절 인도하소서.

 

주님.

제 부족함.. 

제 절실히도 고쳐야할 오류들.. 

소발과 

욥님을 통해 

다시한번 들여다 보오니

제 부족함을 채우소서.

 

아울러... 

제 불편한 육신의 문제 고쳐주시고.. ㅠ.ㅠ

제 아들들... 기도 제목 들어주소서.

간절히도 빕니다 

 

주여.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과거 묵상 , 2014.07.22)

 

내 소발의 愚 [욥11:1-20]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말이 많으면 '말 실수'기회가 늘어나 영혼이 의롭게(성화...그처럼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신.. ㅠ.ㅠ;;)  되기는 어렵지만

말이 많다고 반드시  의롭게 되지 못한다??...

예수님은 무엇이고 (그때는 제사.. 겠지만.. ) 성령은 무엇인가?

 

이것.. 획일적 생각아닐까?

아이들이 그처럼 잘 하는..

미성숙한 사람들이 그처럼 잘 범하는

이러면.. 저런다..

저려면... 이런다...

 

인격의 분화가 잘되어 성숙해지지 못한

미분화된 생각.

 

 

 

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 넓으니라 
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너무도 당연한 생각.

틀림없는 생각.

그리 되어야만 하는 궁극의 목표.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상황은 인정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죄해버리는 생각들...

 

정말 무서운 율법적 생각의 근거들.

 

 

 

15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반드시... 란다.

'그리하면 '반드시'란다ㅏ.

두려움이 없고 얼굴을 들게 된단다.

모든 것 다.. 한곳에 맞추어 생각하는 흑백논리, 획일적 판단.

정말 무서운 생각들..

마치 자신이 재판장의 자리에 있는 듯.

하나님의 그 온전하심과 대단하심과 무한한 사랑은 없어지고

오직 자신이 알고 잇는 원칙에 맞추어

입만 뻥긋거리시는 존재 .. 정도로 생각하는 판단의 근거.

 

그게 '소발'.. 이름도 소의 발 ^^;; 처럼 느껴지는 그의 소리다.

 

그런데.. 그게 비단 그 뿐일까?

내 안에는 없을까?

흑백의 논리로 세상을 재단하고

획일화된 생각으로 

남을 내 아는 지식이 전부인양 정죄하고 단죄하고 판단해 버리는 ..

그래서 의도하든 안하든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앉으려는 ..

 

 과거의 내 모습.

많은 부분 그런게 있었다.

아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전에는

내 심적 약함을 이기기위한 방법으로 타인을

내 정죄의 틀 안에 집어넣어 빵틀에서 찌어내듯

그들을 담아 내 의식의 한편에

'부족한 사람'

' 싸가지 ^^;; 없는 사람'

' 웃기는 사람'

' 멍청한 사람'

' 짜증나는 사람'.........등 많은 표를 붙혀 집어 던져놓고

늘 그를 볼 때그렇게 보려 하던 경우가 많았다 .

그래야 내 마음이 편안하니...ㅠ,ㅠ;;

 

예수님은 '성화'를 기대하시고

성화는 점차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크게하고

인격의 폭이 넓어지고

궁극적으로 흰색의 때묻지 않은 영혼이 되어

하늘 나라에 우리를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서

그 어이없는 단죄의 성품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흘리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달리셨다 .

그리고는 '성령을 보내시어' 매일 '번제'를 드리길 원하시는 것이시다.

결과로..

난.. 점차로 마음이 그리되어간다.

그거.. 난 스스로 '의로와짐'을 느끼는 고백이다 .

오늘 소발의 '네가 의롭냐... ' 고 질타하는 소리에

나도 '의로와 지는 사람' , '의로울 사람'이란 고백을 할 수 있음이다.

그것.. 내 영혼의 평강이 늘어나고

내 마음의 짐이 점차로 벗겨져 가벼워져 가며

일상에 상황의 변화와 상관없는 가벼움이 커져감에 따라

내 가슴에 나도 모르는 확신처럼 들어오는 생각이다 .

예수님을 믿고

매일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한.. 

나는 그럴 것이고

결국 완전 의로움, 완전 성화가 될 것이다.

난.. 그리 확신한다.

 

 144,000 명,

계시록의 그 흰옷입고 천국에 노래하며 들어가는

순교자의 레벨에 내가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 아주 드물게

내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분들..' 이 계시다.

괜히 십년전 글의 한 귀퉁이를 들고 '귀신' 단어 하나를 물고

'실족'할 것임을 설파하며

김기동..회개.. 하며 엄포하시기도 하고

'아이디'를 바꾸어서 들어오셔서

'발람' 부분을 묵상하는 것을

발람이 나쁜 선지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글이니 회개하란 식으로 얘기한다.

 

난.. 그 분.. (분들이라지만 그 분.. 이라 생각하고 그 분이 누군지도 알 듯하다. .ㅎ )이 쓴 글을 볼때마다

저 소발 같은 분임이 느껴지고

오늘 말씀을 보면서 다시 그 분이 떠올랐다 .

많이 .. 아시는 .. 분.

그러나 자신의 눈으로만 보는 분..

 

 또 그러나 ,어쩌면 그 것은 내 안에 그런 부분이 자극되기에

내 안의 어떤 미진한 부분이 '투사'하는 것일 수 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

 

하나님은 나에게 그러시는 것 같다.

조금더 마음을 열어라.

사람을 보되 그의 부족한 점을 보기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그의 상황을 보라.

그리고 '공의 '보다 먼저 '긍휼'을 이야기하고

타산지석으로 나의 공의를 십자가 앞에 맞추어야 하리라..

그럴 것이다.

 

주님은 저에게

다시 저를 돌아보길 권고하시는 듯합니다.

오후 까지 말씀이 자꾸 힘들게 느껴져서 이제야 글을 씁니다.

아..

환자도 많았고 논문 준비하느라 바쁜 것도 있지만

그 것 할 동안 묵상을 올리기는 그리 부족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버거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씀을 정리하는 동안 하나님은 저에게 느끼게 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여.

제게 부족함을 정죄하는 부분보다는

타인의 상황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게 하시사

차거운 정죄보다는

불쌍한 긍휼로 마음을 바꾸게 하소서.

소발보다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꾸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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