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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오셔서 물어봐 주소서[요21:1-14]

주하인 2022. 4. 19. 08:08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가 아니고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노라'가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

'우리도 함께' .........에 

어떤 뉘앙스가 느껴지는가?

 

허탈한 사람들 아닌가?

진리를 쫓는다 생각하다가 

한계를 느껴서

혹은 어느 계기로 자신의 실체를 마주한 자들의 

허탈한 심사.

방향을 잃은 자들의 허무....말이다. 

어쩌면 무기력하고 , 탈진한 상태.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는 하겠는데

그게 힘이 나지 않아

겨우 억지로 움직이는..............

그런 자의 허탈.

 

 의욕이 있어야 소출을 낼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께 받쳤던 일생을 

다시 썩어져갈 세상으로 돌이킨 자들의 그러함에 

하나님이 소출을 허락하실까?

 

 주님은

인생의 모든 굴곡을 다 아시고 계시다. 

세밀히 다 관찰하고 계시다. 

그래서 그의 선택을 존중하신다. 

때로는 실망과 좌절에 바닥치기 하시는 것도 

안타까이 바라보시기도 하신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손내밀어 도와주지 않으시며

기다리고 계심은

그를 통하여 

다시 일어서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시간이시기도 하실지 모른다. 

 

나.

이전처럼 굴곡이 심하지는 않다. 

이제는........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파도 치듯이

빛이 파동이듯

올라가는 게 있으면 내려가는게 있고 

인생이 그렇듯 

내게도 어려움과 기쁨이 상존해 있는 듯하다 .

잘 나가다가도 괜한 무기력이 있다 .

영적 허탈도 없지 않아 있다 .

 

하지만... 

내게는 매일 말씀,

QT라는 과정을 통하여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려는 습관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인지

그 굴곡은 적어지고

회복도 빠르긴 하다 

 

하지만.. 

요 며칠이 

괜히 힘이 없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며 

눈이 떠지긴 했지만

심한 피로감이 

눈을 뜨기 어렵게 한다 

별 스트레스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육신의 그 피곤함을 이기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내게 느껴지고 

그래야만 이 무기력한 피곤함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이제는 알기에

의지를 발휘해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빙빙도는 머리와

무거운 눈꺼풀로 몰려드는 졸음을 물리치고

말씀을 집중하여 기도하였다. 

 어느새 마음이 잠잠해지고 

기도의 줄이 잡힌다. 

감사하다. 

 

이 무기력.

이 피곤함의 깊은 근저에

오늘 

이들 베드로 들의 '고기나 잡으러 갈까..' 라는 

그 내면의 상실감 내지 허탈함의 근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

이제 이 나이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고민으로 고민하고 

전혀 변화없는 인격으로 주께 뵐 낯이 없는 것 같으며

또 똑같은 두려움으로 불안해지려는 

내 상태를 

내가 읽고 있어

그 직면이 싫어

잠으로 도망치려는 것이

이들 베드로들이 복잡한 머리 가슴을 피하여

익숙한 어부질(죄송.. 어부님들에게.. ^^;)로 돌아가고 부화뇌동 우루루 쫓아 내려가는 모습과 

하등 다름없어 보이는 것이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KJV ; children,   NIV; Friends )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모르실 일이 있는가?
 

그 분이 오셔서 

'얘들아' 라 하신다 .

그 말씀이 하두 다정하고 정겹게 느껴지며

한편으로 정말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의 입장에서 

아이같이 방황하는 제자들이 귀여운 듯, 

그들의 천진 난만함이 재미있으신 듯 

'얘들아' (영어버전으로도 아이야, 친구야... 시다 ㅎ) 부르신다. 

그것 무엇이신가?

' 깨우쳐 주심'이시다. 

 

나...그들의 어리석음과 그들의 유치함을 질책하시기 보다

다 이해하시고 

또 주님의 포근한 품, 

성경의 자주 나오시는 표현처럼 '날개 아래 품으시기 위하여' 

그리 자애롭게 부르심 아니시던가?

그리고 당연히 아시면서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신다.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 

감사하다. 

다시금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게 된다 

기도가 길이 잡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 ' 라며 기도를 마칠 수 있게 하신다. 

감사하다. 

 

 

 

주여.

괜히 손발이 무겁고 어깨가 뻐근하며

눈이 천근 만근이며

깊은 피곤이 등골 어디로부터인가 밀려나와

잠을 깨기 싫어 몇번이나 일어나길 망설이다 깼습니다. 

 

 가만히 보면

열심이던 틈만 나면

주님 증거하려던 마음의 의욕이 가라앉은지 오래고 

그냥 그냥 하루 하루 보내며

아무 생각없이 천국의 평안 안에서 

어쩌면 지낼 수 있을 그 시간을 기대하며

머리 놓고 살아가고 있다가

그 마져도 희미해지며

허탈한 마음이 하루의 많은 시간들을 차지하게 되는 

노년의 시간을 그냥 보내고 있어 왔습니다 .

주님.

어찌 몸부림을 쳐도 

이제는 불가할 것 같은 허탈함은

베드로들의 오늘 성경 내의 마음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

 

어제.. 

잠시 휴가 후 첫출근한 월요일 아침

동료 O 과장 입에서 들은 L 리더님의 Covid 이후의 심한 증상으로 중환자실 입원을 들으며

그동안 눌러놨던 다양한 고민들이 

가슴을 밀었던 모양입니다. 

 

주여.

이 어리석은 자.......

조금의 자극에도 베드로들의 그 무기력처럼 

흔들리려던 저를 향해 

주님께서 

'얘들아, 주하인아.. ' 라시며

'네가 그래서......' 라 물어보시는 듯 느껴집니다. 

주여.

여쭈어 주심이 감사합니다. 

또 여쭈어 주십시오.

아이야.. 주하인아.

친구야 .. 주하인아... 불러 주십시오

내 주님.

살아계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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