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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부활[딤전1:12-20] 본문

신약 QT

온전한 부활[딤전1:12-20]

주하인 2013. 9. 2. 10:09

 


12.나를 능하게 하신(given me strength)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나는 능한 자다.

좀더 정확한 표현으로 NIV에서 '나에게 힘을 주셨다. ' 라 하시는 것처럼

나는 힘 , 능력이 있는 자다.

 

그래서 우리 주께 감사할 자다.

 

나보고 충성되다 하시고

직분을 맡기시었다 하신다.

그래서 감사하다.

 

하나님이 그러시니

그게 믿어지려해서 감사하다.

 

더욱 확신있게 믿어지면

그게 '부활' 한 나 아닐까?

 

 

13.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난... 분명코

비방자 역할을 했었고 박해자 행동을 하기도 했었고 폭행자 같은 움직임도 많이 보였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보고 '사납다'고 했었다.

그게 그들이 나에게 보내던 메시지가 그랬다.

 

그래서 난.. 내가 비방자고 폭행자고 박해자라 생각을 굳게 했었고

난 내 자신이 구원을 받을 가치가 없었는데

예수님이 착오를 일으키신게 맞다라는 '어이없는 '생각이

오랫동안 사로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믿지 아니할 때 ' 라 나오지 않던가?

그러나, 이해할 수 없게도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곳곳에서

내 의지와 상황과 내 판단에 상관없이 보내셨고

그것은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 탓임을

이제는 알게 되어 간다.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모두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던가?

넘치도록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 은혜가 '더욱 은혜'이고

그에 따라 내가 풍성히 살 수 있음은

'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이처럼 받아 주시고 '긍휼'함으로 나를 감싸 안아 주셔서

그 안에서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

이전의 그 괴수의 나에서

'괴수의 행동'을 하였지만 하나님 안에서 예수 보혈로

' 능력 있는 자' 로

직분을 맡은 자로

충성되이 할 의미가 생긴 자로 스스로를 보게 하는 눈으로 바꾸어 주심이다.

 

 그렇다.

아직도 스물스물 '옛 생각'이 그 죄된 나의 모습을 '내 모습'으로 착각시켜

자꾸 주저 앉히려는 듯하지만

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을 수 없이 강력하게 붙들린 자고

그러함으로 난 '죄인 중의 괴수'가 아니고

' 능한 자'로 거듭난 자임을 믿으려 한다.

그게 감사하다.

 

 

 오랫만에 2주넘어서 당직을 서려 갔더니

많은 변화가 느낌으로 감지되었다.

가라앉은..

나름 기도하고 말씀보고 책보고

차분한 시간을 보냈지만

슬금 슬금 그 지루한 혼자만의 시간동안

내 뇌리를 파고 들려는 생각이 있다.

오래전의 '죄'....잊었던 생각들...

그것은 '너는 죄 덩어리다.....' 라고 속삭이는 것 같이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안케 하려는 듯하였다.

이상하게도 전혀 개연성이 없는 상황에서

아주 오래된 일을 붙들고

털어내면 불현듯 또 생각이 밀려오려 하고... 한다.

이것.. 영적 원인이 맞는 듯해서

말씀에 대비시키니 여지없이 맑아진다.

 

 요즈음 그런 것 같다.

조금은 깊은 부분, 신념.. 부분을 상황에 따른 말씀의 적용으로 건드리니 그런 것 같다.

말씀으로 '신념'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하려니

오래된 '망념, 오래된 잘못된 신념'들이 나를 놓치기 싫어하는 듯..^^;;

그러지 않고야 그런..

 

그 신념의 부분에 깊은 핵심은

'난 포악한 자, 부족한 자, 폭행자.. .. 죄인 중의 괴수' 가 아니던가?

그러니 이런 평안을 누리고 겉으로 신실한 듯.. 한것이 '위선'이 아니더냐?

자격없는 자의 호사가 아니더나? ' 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것을 믿지 않기로 '선택'하는 훈련을

다양한 상황에 따라

나를 들여다 보게 하신 하나님이

자꾸만 본질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래서 난 쉽게 말씀으로 정리를 했다.

' 그래도 난 ...말씀을 선택하고 말씀의 말만을 믿는다 .'

살아계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를 평강과 평안에 거하게 하시어

당직 내내 고요한 평안 속에서 지냈다.

 

 오늘 말씀에서 확연히 정리하신다.

 

분명코 사도 바울님은 사나운 폭행자고 죄인 중의 괴수라 칭함을 받을 행동을 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예수님의 사도'로 전세계를 주유하는 것은

그러한 자기 인식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이다.

즉, '죄인 중의 괴수'일 자신을 받아 들이지 않고

' 하나님의 능한 자'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자기 암시 일까?

암시라면 '마취'나 '마비'다.

감기 증상 만을 가라앉히는 '콧물제거제''기침 약화제 ' 일 뿐이다.

그냥 방치하면 더 악화될..

하지만 그는 '완전한 자기 인식의 전환'을 통해 그리되었다.

 

 그것이야 말로 '부활'이다.

부활은 예수님의 보혈로 통한 하나님의 사랑 탓이고

끊임없이 우리 영혼 지성소에 밀어 넣으시는 성령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는

성령의 보혜사 역할로 다시 부활하신 것 같이

사도 바울은 '온전한 부활'을 받은 것이다.

부활은 '자신의 영혼'이 썩은 상태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거다 .

'잘못된 과거의 자기' 에서 '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는 것이고

그런 '자신'을 온전히 받아 들이게 되는것.

그것이야 말로 온전한 부활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으로 인하여

'새롭게 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부활'이다.

 

그런데 그게 일상에 들어가 적용을 하게 될 때...

 과연 과거의 내 모습을 아는 자들의 소리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사도 바울을 보면

 다메섹 도상 사건 이후에 첫 선교지에서 난리가 났었다.

그러나, 그는 당당했다 .

그리고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를 받아 들이고

나중에는 과거의 그는 기억도 하지 못했다.

그거.. 그가 심장이 크고, 도덕적으로 결핍이 된 사이코 패스라서

죄의식이 없어서 일까?

오늘 말씀 첫구절 을 보면 그는 스스로를 '능한 자' 라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자신의 과거를 절절히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그는 '죄의식'이나 '두 모습 사이의 갈등'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

과거의 그런 행동은 하나님안에서 흘려 보내고

새로운 자신을 온전히 받아 들이게 된 것이다.

그것.. 인간의 지성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인식하고 받아 들인게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덕분이었다.

그게 '부활'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가 가능하다.

이전의 어쩔 수 없었던 과거는 '과거의 주변 환경과 자신의 착오된 판단'의 조합일 뿐이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던 자기는

하나님이 온전히 용서 했으니

부활된 자신을 '진정한 새로운 자기'로 받아 들이게 되는 것이다 .

그것이 '부활'이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축복이다.

그것을 인식하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이다.

 

세상의 고민과 갈등 속에서

아직도 몸부림 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예수 십자가 앞에 구름떼처럼 몰려 들어야 할 이유들이다.

세상은 온통 아픈 자들 뿐이다.

과거의 죄로부터,

인간의 원죄로 부터 어찌할 수 없는 '자범죄'들로 득실대는 이 세상에서

그들은 그래도 남아 있는 양심으로 아파하고 있지만

더 이상은 어쩔 수 없기에

세상에 파괴적으로 매달리거나 똥파리처럼 달려드는 것이다 .

아니면 '마비되고' 마취되어 인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과거의 '죄인 중의 괴수'로 자기 인식을 하던 안하던

그들을 물어 뜯는 '사단'의 아픈 발톱을 영혼은 느끼는 것이다.

그러한 모두는 '부활'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 보혈로, 성령으로 그래야 한다.

말씀, 성령의 검으로

매일 다가오는 사단과의 전투를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점점 더 강해지는

하나님이 주신 '자기 인식'을 굳게 하고

마침내는 자유로와지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자아가 죽고 예수님 만이 내 영에 살아야 한다.

그때, 우리는 온전한 자유 안에 거할 것이고

능한 힘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모든일이 정말 은혜와 충성과 영광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다.

 

 

귀하신 내 하나님.

오늘은 '나 자신을 받아들임',

특별히 과거의 나와 180도로 달라진 나 자신에 대하여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부활'에 대하여 다시한번 묵상하게 하십니다.

주님.

주님이 나의 그러함을 위하여

그래서 나의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힘있게 세상을 살아냄을 위하여

나를 구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되풀이되는 '과거의 나'에 대하여 물고 늘어지는

사단의 궤계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이제 말씀을 더 강하게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운행하시는 성령의 검을 붙들고 있사오니

점차로 사도바울님의 그 강력한 자기 인식,

그 온전한 부활의 증거들이

제 안에서 일어나

매일이 '능한 자', 충성된 자로서

주님이 주신 소명을 이루어 갈 수 있게 하소서.

과정 중 새로운 '나' 

부활한 '나'로서의 기쁨과 은혜로서

열정적으로 살게 하소서.

그리 평안 누릴 수 있게 하소서.

이제는 덜 흔들리게 하소서.

우리 주님.

점점 더 저를 주님이 이끄심을 느낍니다.

주 예수 안에서 온전히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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