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명령을 따라[딤전1:1-11] 본문
하늘이 맑고 높네요
주님
구름이 포근합니다
주님
주님 계신 곳은
이리도 아름답고
그리도 그립습니다
비록
저
이땅에
이렇게 있지만
주님 명령 만을
기다리고 기대합니다
주여
어서 저를 인도하소서
주님 원하시는 그곳에
저 있길 원하오니
주여 부디
저를
당신의 뜻 가운데서
안식 누리게 하소서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바울님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사도'가 되셨다.
난.
내가 인식하든 못하든 (당연히도 명령이라 확신하고 감사한다 ^^*)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지금까지 살아 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임을 믿고 확신한다.
그게 내 '아~무 ~의미도 없었을 ' 인생의 '힘'이 되어 가고 있다.
인생의 의미.
정말이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그리고 매일 같은 성령님의 부어주시는 은혜가
나에게 없었으면
난 하루도 더 살지 못했을 자가 맞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살라' 라고 명령을 하셨다.
나.. 무엇을 위해서 살까요.. 라고 질문하지만 크게 대답은 없으시다.
그냥 지금까지는 매일 말씀으로 주시는 대로
눈을 하루에 좁혀 그냥 여기까지 끌려왔다 .^^;
끌려왔다는 피동적 표현.
그것.
사실이다.
내 좁은 머리로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난.. 인생을 그리 목숨걸고 살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자식의 성공도
내 명예도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무조건 적 효도도
자랑하고픈 '돈'의 욕심도
나를 유지하고프게 하는 아주~큰 의미가 되어 있지 못하던 상태다.
별로 '원함'이 강하지 않았던 자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하여 얘기하면 또 깊은 얘기가 나온다.
내 강한 육신적 성향과 그에 반하는 갈등과 무기력....
어찌 되었든 그러하면서 들어가는 중년의 나이에
하나님은 37살에 찾아오셔서 '에너지'를 채워주시고
매일 하나씩 하나씩 내 안을 정결케 하시는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그 안에서 회복되는 샘물 같은 영적 에너지가 고이게 하여 주셨다 .
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여기 까지 왔다.
내가 의도하던 안하던 '명령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님은 '명령을 따라' 사도가 되셨다.
나.
명령을 따라 더 '무엇'이 될까?
의사, 남편, 아빠, 아들, 친구, 사회인, 교인, ........내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다
그냥 없어지고 말 의미없는 내 가면들.. 말고...
예수님 믿고 나서 사도 바울은 굉장히 많이 배운 '바리새파 행동대장' 에서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예수님의 사도'로 ,선교사로 완전히 바뀌었지 않은가?
인생을 걸고 이루어낸 멋진..
나에겐 그런 '명령을 따라' 인생을 대 전환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이 땅에서의 다른 모습은 없을까?
물론 지금까지 내 자리에서
'전도자' 의사로서 많은 입을 떼려 노력했다 .
옳은 방향이다.
시간 날 때마다 내 삶을 이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을 사는 자들의 매일의 지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에서
틈날 때마다 '말씀 묵상'으로 얻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살아계심을 '블로그'에 올리려 노력했고
내 오랜 잘못된 아버지상과 남편상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 따라 풍성한 내 속의 예술적 , 과학적 지혜가 배출이 되는 현상을 체험하며
그것 또한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베풀려고
몸부림을 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주어진 나의 다양한 모습이
결코 '내 자아'의 발로나
내 흥미의 결과인 '나......' 가 중심이 되어 나온 것이 아니고
철저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그 '명령을 따라' 점차 형태를 이루어감을 알고는 있다.
오늘 묵상의 촛점은
그 명령을 따라 '사도'라는 한단어로 압축될
하나님으로 인한 이처럼 뚜렷한
완전한 인생의 목표가 나에겐 있는가다..
더 뚜렷한..
나의 좁은 삶의 반경..
곧 흔들리면 지축부터 바뀌어 버릴 듯한
이 상황에서
나의 현재 인품으로는 불가능할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더욱 뚜렷한 영향을 미칠
어떤 모습.
2 .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디모데는 영적인 아들이라고 바울께서 말씀하시는 자다.
그 아들에게
그 분은 축복을 하시면서
'돈', '큰 교회 목사' , '장가', ' 선교할 인원의 대폭 증가' ...를 기도하지 않으신다.
우리 주님께로 부터 내려올
'은혜', '긍휼' , '평강'을 축복하신다.
그것.
내 바램이 어쩌면 방향을 잘못잡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게 답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계속 역대하를 묵상하였지만
인생... 아무리 하나님 앞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도
히스기야도 , 요시야도 풍파 앞에 흔들렸다.
세상의 허상, 위치는
그게 아무리 하나님 앞에 올바로 잡은 방향일 지라도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설령, 선교사...........로 나가도 그것은 '일상'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
천국에서 살면서 가끔 이땅의 선교지에 내려왔다가
저녁이 되면 올라가는 것이던가?
그것도 '삶'속의 영성이다.
하나님이 진정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은혜와 평강과 긍휼과 사랑'이 우리 안에서 회복되고
그것이 우리 온 영혼을 휘감아 도는 '혈액' 같이 되는 것이 아닐런가?
다시한번 '명령을 따라' '무엇'이 되는가로 돌아간다.
나...
지금껏 인도하셔서 은혜와 평강과 .. 사랑의
내 안에서 회복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는
과정을 지나고 있어왔다 .
내 주어진 모습에서
한번 더 내 지나온 50몇년의 시간 보다는 훨씬 적은
나머지 시간 동안
무엇을 더 하길 원하시는가?
이 병원 13년째의 시간동안 변화된 그 수많은 하나님의 주신 업적들 처럼
또 다른 어떤 것을 나에게 주시려는가?
내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그 모습에서 하나님이 '명령을 따라'
더 큰 은혜와 평강과 긍휼과 사랑의 모습을 이루어낼 것인가?
이제껏 내 속에서 잠시 잠시 세상에 접촉하며 영향을 미쳤다면
정말 그들을 가리치고 그들 속에서 움직일
그 어떤 '사도' 같은 모습의 나를 원하실 것인가?
병원이 대 변혁을 이루고 있고
사방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고
직원들의 요동도 있다.
새로온 '기획팀'장 K님의 열심이 자꾸만 내 눈에 걸린다.
그의 열심이 난 좋으나
그 열심이 'perfectionist'의 전형이고
아직 어린 자의 눈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다변가'이고'교만'이 속속들이 보이는 것 같다.
거기에 DRG로 바뀌면서 걸리는 현상들의 부하가
내 속에 자꾸만 버거움으로 쌓인다.
생각들이 많아진다.
동시다발적인........거기에 내 싫어하는 weak point.
미워하기도
좌절하기도
두려워하기도
무기력하기에도......아주 적합한 상황들이다. ^^;;
이전 같으면..
하지만, 역대하를 묵상하며
하나님은 절묘히도 그 상황에 내 모습을 투영시켜 주시며
하나하나 들여다 보게 하셨다.
상황은 변화가 없지만, 내가 변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훈련시키시는 이유임을 깨달아오며
그 상황에 따라 '기도'와 묵상의 위력..
깊은 은혜.
놀라운 평강........
잔잔해지는 나의 마음의 변화를 깨닫는 것은
또다른 은혜였다.
기도가 은혜였고
그 은혜를 보이시기 위해 '기도'를 유도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가장 큰 방법은 '고난'을 통한 연단임을
다시한번 확신하게 하는 영적 훈련의 시간들임을
지금 다시 고백하게 하신다.
이제.
다시한번 '현실'로 돌아온다.
이 격동의 시간들.
마치 폭풍 전야의 시간 같은 조용한 압력들의 시간에
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다.
현실적으로 만일 내 두려워 하던 일들이 있으면
난...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가..다.
현실로 생각하면 답이 없다 .
그렇다면, 내가 나를 낮추어 받아 들이는 문제 밖에 없지 않던가?
그러기 위해서는
내 싫어하는 상황이나 사람들, 환경... 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누르는게 '병'이 되지 않을까?
기도하고 읊조리는 ( 이 읊조린다..는 표현을 배웠다. 묵상.. meditation, 사자의 그르렁 거림.. 읊조림.. 같은 말이다... 은혜의 시간에 나도 모르게 그르렁 거렸던... 그것이 하나님이 모든 기도하는 자들에게 수도 없이 오랜 시간 전부터 이렇게 동일하게 느끼게 하여 오셨던 것이다. .. 그게 깨달아 지는 게 은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표 ) 가운데 난 쉽~게 깨달아 간다.
내 부분.
내가 받아 들여 나를 낮추면 된다.
그게 하나님이 광야, 이 불뱀 전갈 투성이인 '인생'의 광야를 돌리시는 이유다.
낮추면.. 복이 온다.
그리고, 맞닦드러질 수 있는 그들의 버거움.
이 인간의 추악한 깊은 본성들과 그로 인하여 발생되는 갈등들...
그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십자가 앞에 내려 놓으니 가벼워진다.
말씀대로 '하나님 때문에 그들은 지혜롭고 , 그들은 강하고.. '하고 기도한다.
그러니.. 미움이나 어이없는 실소가 사라지는 듯하다.
괜한 영적 부대낌이 사라지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날아갈 듯하다.
현실 부분.
감당할 것은 감당해야 한다.
덜 두렵다.
미래.
어떤 모습으로 나가길 '준비'해야 하는가?
나..
너무 넋놓고 있는 것은 아니던가?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믿고 그냥 기도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오늘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듦을 아시고
'명령을 따라' '사도'.. 가 된 바울의 말씀에서
'내 미래의 새로운 모습'에 대하여 기도해 보길 권하시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전에 기도하다가 '논문'쓰길 깨닫고
기도하다가 ' 사진을 작품'으로 연계시키게 하시고
기도하면서 '복강경'에 대한 지혜를 번뜩이게 하시고
기도하다가 '진료 대기실'에 작품을 걸어놓게 하시어 전도와 PR을 연계하게 하시는 등... ..
깨달음이 많았던 것처럼...
또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기도'하고 기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오늘 명령을 따라 '내 될 ' 모습을 다시한번 기대하여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
당직방이다.
조용해도 싫다.
현실을 보게 하는 것이니..
바빠도 싫다.
의료적 crisis 도달할 퍼센트도 높아지니..
늘 이렇듯 살얼음을 걷는 의사의 심령을
나름 편안히 잡아주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 뿐임을 믿지 않을 수 없다 .
더구나 , 난 이제 세상에 안김 받을 나이는 아니다.
모든 스트레스가 직접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내 몸으로 오는 나이가 아니던가?
그런 나에게
이토록 찾아오셔서 많은 깨달음으로 인도하시니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송할 수 밖에 없다.
감사하다.
주님.
귀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
이제 드디어 '장래'에 대하여
비교적 뚜렷이 기도를 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하나님.
전 지금까지 제가 예상해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절 인도하시고 안으시고 보듬어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마치.. 반석에서 물나는 놀라움,
그 사막에서 '만나'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살려주시는 기적을
매일 매일 체험하면서도
습관이 되어버리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저도 모르게 잊어버리고 살아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망각을 옅게는 하는 도구가 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실제로는 '만나' , '물', '수십년의 메마른 땅에서 목숨 부지' 등을 영위하면서도
또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으려 하던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등 다름없는 모습이
제 모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다시 '명령을 따라' 정신을 차리려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소수의 믿음을 닮길 원합니다 .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각 준행할 수 잇는 '결단'을 허락하시고
신사도 같은 ' 성령의 말씀'을 자신의 연단 받지 못하여
죄로 그득한 시선으로
타인의 아픔을 초래하면서 밀고 나가는 '아집'을 부리지 않게 하시고
근본적으로 말씀을 근거한 지혜를 허락하소서.
장래.
변화가 무쌍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 주변도 급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악함'이 그대로 제한없이 밀어 들어오려 합니다.
그 날선 악들이 제 정리되지 못한 심령에 아픔으로 오기도
제 반발된 거침이 타인의 아픔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귀하신 하나님.
오늘 주일을 맞이하여 '명령을 따라' 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저에게 가능하시면 '주하인아.. 무엇을 해라' 하셨으면 좋겠지만
그게 저에게 해가 되신다면
느낌으로 준비할 것을 생각나게 하소서.
주님 말씀 따라 준비되는 것의 선함을
그동안 충분히 보아 왔사오니
그게 이루어짐을 저와 제 가족이 현실로 체험하게 하시고
저로 세상에 하나님을 증거할 또다른 경험이 되게 하소서.
제 앞길을 모두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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