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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건져냄을 입고 싶습니다[암4:9-4:3]

주하인 2015. 12. 8. 11:02

깊은 눈 속에 갇혀

온통

하얌 속에만 있다보면

 

어느새

내 속의

어두움과 포학은 잊혀지고

이 작은 세상이

 내가 주인인듯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러함이

불현듯 진실로

내 영혼을 깨우쳐지니

난 깊은 겨울의 스산함보다

더 무겁고 황량한 자책과 절망에

사로잡히고 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잠못드는 긴밤

 침상모서리의 우울에서

절망과 절박의

사자 입의 위험에서

건져냄을 입히리라시는

우리 주님 약속의 말씀 덕에

 

나 다시 눈을 들어

주위를 살피고

나를 바라볼 수 있음이다

 

절망이던 것이

어느새

소망이란 느낌으로

  내  영혼을 사로잡는 구나

 

감사하다

정말 난

주님이 그러하시다

 

 
10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자기 궁궐에서'

자기가 최고인 자리, 가정 , 회사... 모임.. 등 얼마든지 자기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 생각하는

그런 자리에서

자기가 '왕'인 그런 자리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다'

가까운 자들에게 아주 쉽게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면서도

그게 나쁜 일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권리인양 착각하는 행위.

그것도 쌓는 다는 것처럼

자꾸만 자꾸만 변화없이 되풀이해서

'갑질' 하는 행위.

 

나.

갑질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당하는 사람들도 그리 생각할까?

그들이 억울타 생각하면

그것 내 궁궐에서 내 권리 행사하는 것 당연히 생각하는

포학한 왕, 폭군과 다름없지 않을까?

 정말 .. 나는 폭군이 아닐까?

나 자신과

가까운 타인에게...?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

그게 과연 '내'가 아닌게 맞는가?

 

 만일 그럴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면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내 잘못 만인가?

나.

정말 열심히 변화되려 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 혹... 사라졌다면

당하는 자들에게는 문제가 없는가?

있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그렇다해도 포학과 겁탈이

내 궁궐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그래 잘했다.. 하실까?

그렇다면 또 어찌해야 하는가?

내 궁궐 안의 그들을 바꿀까?

바꿀 수 있을까?

 

"바른 일을 행할 수 없다'라 하신다.

 나.

미련하다.

정말 미련하다 .

그래도 내 궁궐안의 일이 내 책임이 아니다라 한다.

아니... 솔직히 이제는 막혀있다 생각하고있다 .

더 이상은 내 손을 떠났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다 .

'바른 일을 행할 수 없는' 지경에 있음이다.

어찌할까?

 

내가 어찌할까?

어찌해야 하는가?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

    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솔직히 '내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이 일어나도 어찌할 수 없다.. 라고 생각되어지는

그런 상황인 듯하다.

쉽게 말해 ' 될대로 되라' 식이다 .

왜냐구?

 하나님 만이 아신다.

그래도 말씀을 붙드니 중심은 잡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그냥 포기하고 싶지만

그래도 말씀이 있으시니 다시 힘을 낸다.

 

어찌할까?

어찌해야 하는가?

내 궁궐 속의 나는

절대로 벗어낼 수 없다고 거부하는 내 영역이 있다 .

그것의 권리를 내려 놓기 힘들다고 아주 몸부림을 친다.

그래서 다른 자들이 변하지 않고는 이 포학을 멈출수 없을 듯한

이 힘듦에 더 힘들다.

 

마치 모서리 까지 몰린듯하다.

하나님을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가?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자아'와 '말씀'과의 마지막 싸움인 듯하다.

그러하면서도 조금씩 힘없이 난 무너진다.

그래서 매일 매일 아주아주 조금씩 '포학'으로 날 물들여 가는 내가 겁이 덜컥 난다 .

그러면서도 자꾸만 바뀌지 않는 내 궁궐 안의 타인들에 대하여

손가락질을 멈추고 싶지 않다

  마치 사단의 아가리에 몸을 반쯤 담구고 있는 듯한 내 모습이

속상하고 힘겹다.

주님께 죄송하다 .

그래서 힘을 내기 어렵다 .

 

 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신다.

절묘히도 표현하신다.

사자 입속에서도 두 다리와 .. .건져내신다 신다.

내 모습을 그런 상태의 절박함으로 스스로 느끼고 있음을

투명히도 묘사하신다.

그러시면서 그러한 마음을 '침상 모서리' ,'걸상 방석'에 걸터 앉은

초조한 자,절박한 자의 모습으로 투영시켜 주시고 계시다.

 

맞다 .

누가 아는가?

내 마음을 .. .

난. .이제 내 궁궐을 열고

포학과 겁박을 멈추어야 한다 .

그들을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어찌 바꿀 수있는가?
그렇지 않으려 노력해오던 오랜 시간이

나와 주님 만이 아시는 일로 좌절은 경험하여

자포자기 되려 하고 있지만

자꾸만 하나님이 날 밝혀 밝히시고

힘을 내라 권고 하신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것이다 .

'자아'를 내려 놓는 것.

 

내 궁궐이란 권리의식을 내려 놓는 것.

그래서 내가 왕이기 보다

나는 종이 되어야 하고

나는 청지기 , 맡은 자가 되어야 함을

내 핵심 신념 깊은 곳에 집어 넣어

사단의 원리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와 져야 하는 그 단계다.

참. .어렵다

힘들다 .

fusion이 되어  생각조차 마음대로 돌아간다.

.........................

 그래도 말씀이 있으시어서

조금씩 환기를 시켜 주신다 .

내 궁궐에서 자기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자꾸만 말씀으로

내 영혼에 새 공기, 성령으로 불어 넣어 주신다 .

 

확신을 주시려 하신다.

'침상 모서리, 걸상방석'

' 사자 아가리' ..

그래도 구하신다.

절망이라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주님은 하신다. .. 라 신다.

감사하다.

 

 

주여.

그렇습니다 .

건져냄을 입고 싶습니다.

 

이 자가당착의 궁궐,

이 자아의 강력한 궁궐 속에서

이제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 불쌍한 영혼,

건져내심을 입고 싶습니다.

내 주님.

 

부디 힘을 주소서.

포학과 겁박을 멈추길 원합니다.

나도 모르는 내 자아의 권리를 그만 멈추고 싶습니다 .

다른 이유 , 세상에 하나 없어도

오직 주님으로만 이유를 삼아

그냥 또 그러고 싶습니다 .

 

저.

스스로 갇힌 이 궁궐의 내가 치루어내는

이 못난 모습이 포학으로 느껴집니다.

스스로 알지만

걷어내지 못하고 좌우 막힌듯한 것을 느낌이

마치 사자의 입,

사단의 입 속에 갇혀 온전히 먹혀 버리기 직전의

절망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주님...

그런 나를 모서리에 걸터 앉은 침대 위

온밤을 뜬 눈으로 세우는

절망의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으시면서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시는 말씀으로

건져냄의 희망, 소망이

내 노력이 아닌 '피동적' 인 하나님의 손길로

그리될 것임을 확신 시키십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이지만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보니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 다 잡고

다시 나를 돌아보겠습니다.

제가 제 궁궐에 갇혀 있음을 인지 하겠습니다.

내가 멈추어야 할 것이 그 안의 포학임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망은 그러함을 느끼고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강한 죄의 욕구 탓임을 알았습니다.

주여.

그 절망의 입 속에서도 주님이

건져냄을 입으면

다시 소망으로 살아날 것임을 배웁니다.

그게 우리 주님의 복음입니다.

내 주여.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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