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직 이 곳에 남을 것[룻1:1-14] 본문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고난
세상의 고난
믿는 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고통의 필연.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고난의 가중.
또 가중..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들음.
양식을 주심을 들음
그것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심'으로 알아 들음
진정한 들음.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두 이방 며느리(어쩔수 없이 탸협하여 이방며느리를 얻었지만 하나남의 허락가운데 인정된...)와
유다로 돌아옴.
금의 환향이 아닌
죽지 않기 위한 귀향.
거기에 딸린 이방며느리 둘.
우울치 않고는 베겨낼 수 없을 상황.
그러나 그 불편한 귀향의 길에
시어머니 나오미 ,
옳게 믿는 신앙인,
그렇지만 삶에 치이고 치인 시어머니 나오미,
그녀에게 갑자기 찾아온 한 생각~!
'길을 가다가'
불현듯 발길을 멈춘다'
이 '길을 가다가'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그 속에 찾아온
며느리 들에 대한 안타까움..불쌍한 마음.
너무나 젊은 미망인들,
거기에 배타적이기로 유명한 이스라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미밍인들....
그녀들의 사정이
믿는 신앙인,
옳은 신앙안
제대로 된 신앙인
삶 속에서 '본질'을 볼줄 아는 신앙인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의 관습을 뚫어볼수있는 신앙인'
홀로 망해서 귀향하는 늙은 자신의 절대절명의 현실적 고통이나 외로움보다
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진정한 용사의 신앙인...인 나오미에 의하여 인지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가던 발걸 음을 멈추어 세우게 한 이유다.
귀한 , 절박한 갈등....
그가 그녀다.
그게 나오미다.
그렇게 되아야 할 것이 나다.
이들, 여인
아무런 신앙적 위업을 달성하지도 하려 노력하지도 못하는 여인들이
성경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마치 현대인의 삶 속에서 치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재우리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한 감정의 골을 만들어가며
한편의 드라마처럼 가슴 속에 촉촉히 들어오는 이유.,
그러면서 강요된 감성이 아니고
'감동'으로 마음을 흔들며 어떠한 결심을 느끼게 하는
그 이유는 이것이다.
어떤 세상의 그것,
화려함도 엄청남도 위대함도
비석으로 남아있고 책자의 몇줄글로 남아 있어 버릴 지 모르지만
나오미의 그것은 그러함이 전혀 없음에도 성경에 기록될 수 있어
이리 오늘,레마로 , 말씀으로 다가옴의 진실은
우리의 삶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았음이다.'
거기에 하나님 의 기뻐하시는 본질 이 있으심이다.
보라.
그녀는 정말 신실한 여인이다.
신실함에도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이 그녀를 침탈하려
쉴새없이 다가오며 심지어는 노년까지
식량을 걱정하고 홀로 늙어죽을 고독사의 위험까지 겪는다.
이방 며느리 둘만 데리고 돌아오는
남편 잡아먹고 자식잡아 먹은 잘못된 신앙인, 심지어 마녀의 손가락질 가능성도 있으면서도
그녀는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믿음이 놀랍다.
한마디 하나님을 원망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믿음이다.
그것.. 의지로 입밖에 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미련해서
원망이란 단어를 몰라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길을 가다가... 멈추어 서서
두 며느리의 아픔을 공감할 줄아는
'지혜'로운 여인이다.
그러니 미련이란 단어는 맞지않다.
최소한 우리 정도의 아이큐는 있을 것인데
그 가다가 멈춤은
그 마음의 갈등,...홀로 있을 두려움...그들 배려함의 안타까움의
갈등의 시간을
실제적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긍휼의 마음.
배려.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보라.
그러면서 그이의 그러함의 기본은
'하나님은 온전히 선하시다'라는 전제에서 하등 흔들림이 없음이다.
지금껏 고생만 해놓고도
앞으로도 절박한 위협 속에 있음에도
그리고 며느리들 마져 남겨 놓을 그 절절한 결심 앞에서도
그는
'하나님이 선대하실 것'을 이방 며느리들에게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 결심이 무너질 것을 대비하여
발버둥의 선언이 아니다.
그녀의 삶속에서 절절히 묻어나오며
그 긍휼한 눈물의 배려를할 수 있는 정체다.
이유다.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 분은 너희들도 나도 선대하실 것이시다 !
지금의 치심을 당함도 하나님께서 하심이다 "가
그녀의 영혼을 온통 지배하는
핵심 신념이다.
핵심 믿음이다.
그게 성경에 나오미와 롯이 올라
예수님 계보를 이을 진정한 본질이다.
그를 통하여 내게 알리고 싶으신 메시지시다.
나.
매일의 삶이 소시민이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른게 없다.
먹고 자고 출근하고 나와서 환자보고 수술하고
퇴근하여 자고
일주일지나면 집에 올라오고
올라와서 찬양한번 하고
예배드리고 주일에 내려오고...
그러면서 내 속에서 울컥 울컥하는 내면과 싸우면서
..,,,,,,일어나고.........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는 더 소시민이다.
룻은 이방여인이다.
한번 결혼한......
그러나 하나님 편에 선 나오미를 좇아
예수님의 족보에 서게 되었다.
그렇다.
누구나 낳고 자라고 죽는다.
불변의 원리다.
그안에서 어떤 모습을 지니든
다 한갓 역사의 티끌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다 의미 없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릴 기억하신다.
내 변화없는 삶속에서
신앙의 행위도 그렇지만
그보다더 깊이 보심은
그 분을 진정 선하게 인정하는 마음의 중십과
그로 인하여 고민하는 처절한 몸부림과
성령으로 이끌어지는
긍휼과 배려 만을 주님이 보시는 듯하다.
감사하다.
난...정말 소시민이다.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다.
글을 이 곳에서 십몇년 쓰지만
그것, 편지하나 제대로 써보지 않았고
문학책하나 제대로 읽은게 없다/
무협지나 만화만 본게 전부다.
그런 나를 이렇게 이용하신 것도 주님 매개체로 쓰여짐받는 것일 뿐.
나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러함을
이 세상에서 기억하시겠다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애서 들리는 듯하여
마음이 좋다.
길을가다가
멈칫하는
나오미님의 그 갈등처럼
나도 미련한 갈등을 매사에 하지만
그래서 아직은 미련하게도 승리보다는질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내 발걸음을 아직은 ;지켜보신단다.
'나오미가 이렇게 승리했단다" 하시면서 말이다.
그렇다.
난... 더 예수님이 선하시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무한이심을 믿어야한다.
그래서 내 안의 고난,
믿는 자로서 남보다 더 심한 환경의 그러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먼저 배려할 수 있는 긍휼의 선택을 연습하라신다.
마구 짖쳐 나가기 보다
마음 속에서 드는 하나님의 이유로 인한 갈등에 대하여
발걸음을 멈칫하다가
더욱 하나님의 편으로 오는 연습을 하라신다.
마음은 힘들겠지만
현실은 아직 가뭄이지만
내 궁극은 선함, 승리, 영생의 축복임을 믿으며...
주님.
이땅에 남을 것은
오직 주님 뜻을 순종함이며
그 바탕이 주님은 온전히 선하심을 믿음을 훈련하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상황에 상관없는 고요함이
주님의 성령을 이유로 이루어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한켠더 넓혀 이웃에 대하여
오히려 긍휼한 배려로 남을 위함이 제 발걸음을 멈칫하게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할 것으로 알게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나오미님의 멈칫함을 통하여 다시금 깨닫게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이 부족한 자.
제 삶에 흔들리지 않고
진정 남길것 남길 수 있도록
오늘 하루 더 열심히 주님을 믿겠나이다.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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