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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벌 영생 선택[대하24:17-27] 본문

구약 QT

영벌 영생 선택[대하24:17-27]

주하인 2013. 8. 12. 12:04

 

우리 가족

힘없이 있는 듯 해도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현상은 어때도

우리의 선택은

오직 주님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결국은

승리일 줄 믿습니다

 

그래서

더 힘을 냅니다

주의 주실  귀한 감동

간구하며 그리합니다

 

 

 

 
17.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여호야다가 '죽자',

그 신실했던 요아스 왕, 심지어는 여호야다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온 정성을 다했던 왕이

갑자기 변한다.

 '방백'들의 말을 듣고는 180도로 바뀌었다.

있으면 안되지만 ... 그래도 세상에서 견디지 못할  엄청난 고난을 겪은 것 후 그런 것도 아니고,

잘못된 행실을 보여왔던 것도 아닌..

흠없이 잘.. 그것도 40년 동안이나 잘 유지되던 그의  신앙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이게..가능한가?

외적인 동기가 없이도 가능한가?

난.. 가능하다고 본다.

주위에서 '...본다.

난.. 그들의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을 만하다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이

단시간 내에 들어나며 대 혼란을 가져오는...

 

그게.. 인간이다.  

 

인간의 깡통같은 육신 속에

무엇이 담기냐에 따라,

아니.. 어떤 선택에 의하여 어떠한 가치를

그 육신의 빈 영혼 속에 집어넣는 가에 따라

완전히 두 인격으로 바뀌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당연하다.

 

나.

내 속에 옳은 '하나님'의 가치를 잘 유지하고는 있던가?

죽은 믿음은 아니던가?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실 믿음이 '죽어가는 '것은 아닌가?

죽어간다함은

'고착화된 행동'

' 감각적 안정' 감만을 추구하다 굳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만일 그 즈음이라면

난 '방백'들의 가치에 귀를 기울일 염려는 없던가 ... ?

이런 생각들이

나의 좁은 일상의 반경에서 어떻게 투영이 되어야 할까?

 

 

20.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하나님의 영'의 '감동'.

그렇다.

성령으로 감동.

감동.

감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하나님으로 감동하는 삶이 늘 유지가 되어야 한다.

감동은 늘 감정의 변화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말씀'의 늘 함께하시는 약속 만을 믿고 있어

상황의 급변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 지며 오는 '감동'도 있다.

그 감동을 깨닫기 위해서 감정이 꼭 기쁘고 들뜨는 증거가 필요치는 않다는 이야기다.

그때는 훨씬 온유하고 잔잔하며 지속되는 놀라운 감격이 한참 후에 오기도 한다.

 

 각설하고

문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가랴는 죽었다는 부분에 '생각'이 걸린다.

 

 참... 힘든일이 자꾸만 걸러져 온다.

벌써~ 다 건너가 버렸어야할 일들이 다시 다시..

그러면서도 '감동'은 끊이지 않는다.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감동..

하지만, 삶은 변화가 없다.

지치려한다.

마치.. 이것이 내 착각은 아닌가라는 의혹이 '살짝' 지난다.

말씀을 붙들기에 금방 다시 자리잡지만

그러함은 '기도'의 열정을 약하게 한다.

싸움인듯하다.

 

여호야다와 방백의 가치가

'요시아' 왕의 영혼을 사로잡을 때

그의 행실은 완전히 다르지 않는가?

 

열심히 나가려는 나의 인생역정에

'천로역정'속의 천기독을 잡아끌려는  그 수도 없는 유혹들...

그 안에

감동은 있지만 '죽어가는 스가랴'의 상황이다.

저처럼 온전한 감동 안에 있어

세상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여호야다와 스가랴의 감동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오늘 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 이신 것 같다.

나름... 의미가 깨달아지며 힘이 생긴다.

' 지금의 어처구니 없는 '

' 그토록 오래 기도했음에도 응답대신 변함이 없이 남아 있는 ' 이러한 고난들이

비록 죽을 것 같게 하지만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감동'으로 나를,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어찌할 수 없는 갈등 속에 있지만

그것도 '스가랴'나 그의 아버지 '여호야다'와 같이

선택받은 소수에게 허락되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22.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그러기에

하나님은 어떤 일에도 어떠한 상황에도 존재하심이 사실이고

그 분의 존재하심은

결국 우리의 마지막이 승리일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지금 나의 삶이 이처럼 어이없는 거같이 보여도

나는 희망 중에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기다리고 인내하여야 하는가?

아...

'감동'하고 외친 탓에 죽을 수도 있을 때까지다.

스가랴가 그랬다.

그는 성령으로 감전될 정도로 감동되었지만 죽었다.

 

나.

세상에서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다.

내가 아픈 것도 싫고

내 가족들이 나 때문에 그러하는 것 같아 가슴이 더욱 아픈 것 같고

나로 인하여 내 주위가 힘들어지는 것도 싫다.

그래서 어디까지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는게 옳은 것인가.. 라는 의혹이

날 조근조근 물어들어오려 하는 것이고

그때 다가오는 '속상함'과 '외로움'과 '불안'함이

마치 꾸물거리며

잘 다져가는 내 신앙을 흔들려 하는 것 같다.

교묘히도..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믿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시면서도

세상과 다른 것을 보이신다.

그런 그들은 죽을 때가 될 지라도 (죽을 때에 이르되 )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게 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보라.."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시지 않는가?

무슨 이야기던가?

 

죽음도 두렵지 않고

죽음을 넘어서는 하나님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 죽음이 끝은 아님을 그는 당연히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확신을 넘어서는 실제로 그에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이다.

믿는 자... 진정 옳게 믿는 자에게는

세상을 넘어서는 영생의 축복이 그의 영혼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고

겨우 이 세상에서 끝나고 말 '축복'의 개념이 아니란 것을

그는 느끼는 것이다.

마지막이 승리다.

언제나 하나님은 '선'이시다...라는 고백은

천국과 영생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것이 나에게 확신이 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 삶이 이해가 가고

저들의 저 ..오늘 나에게 보이려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진정한 진리의 개념이

확실히 내것이 되는 것이다.

 그제야 내 삶은 훨씬 더 단단해지고 옳은 진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영생, 천국을 이야기 하면

이땅의 삶은 도외시하고

도망하는 도피자의 유약한 모습을 먼저 떠올리나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니다.

'이생'과 '영생'을 아우르는 힘있는 개념이다.

이 땅은 '영원'을 하나님 가까이에 얼마나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분의 우주를 넘실대는 '우주 에너지', 영생의 에너지

그분의 빛을 더 힘있게 받아들이며 살게 되는 가 하는

'결정'의 시간들일 뿐이지 않을까?

 실제 '영원'의 하나님께서

겨우 '우주의 먼지보다 적은 이 지구'의

정말 정말 적은 '안양'의 '주하인' 인간 생물 하나의

80년도 안될 적은 시간만을 가지고 논하실 것인가?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신'으로 ,

조물주로 인정하지 않는

개미보다 적은 두뇌의 생물학적 작용으로 나온 추리의 결과가 아닐까?

얼마나 유치한 발상인가?

 

 그런 의미에서 '방백'의 세상을 선택하고

세상 만에 고착되는 어이없는 인간들의 뛰어남이

얼마나 미련하고

정말로 지혜없는 일이고

무식한 일이고

불쌍한 일이고

속 울렁거리는 교만덩어리들인가..              생각이 미친다.

요시아와

그를 닮은 세상의 대부분의 기복신앙인들과

신사도들과........

나로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의  유혹을 당할 뻔하게 하는 '의혹'들이 불쌍하다.

 

 

 이제 깨달아지는 바가 있다.

어때도......

설령 그것이 내 인생의 잠시 눌리는 환란이거나

내 건강이 치이는 경우나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선' , 내 승리를 흔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

나...

더 이상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은

그 사단의 '의혹'들이 얼마나 교묘한지를 알기에 그렇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감동은 말씀으로 기도로

또 나를 붙들어 주실 것을 믿기에 그렇다.

나...

올바른 선택을 할 지혜와 결심이 점차로 굳어짐을 깨달아 가기에 그렇다.

 

 

주님.

이제 빌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이 '선하심'을 의심하지 못하게 하소서.

내 환경이나

내 감정의 소소한 변화에

너무 신경쓰고 하나님의 그러하심을 의심하려는 논리적 근거로 삼지 못하게 하소서.

주여.

주님을 늘 잊지 않고 살고

주님 뜻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들떴던 스가랴님도 죽음을 당했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불행'만은 아닙니다.

주여.

세상에서 죽어감은

제 자아도 죽어감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잇음을 이해하게 하시고

그것을 기뻐하게 하소서.

더욱 겸손하게 하시되

저로 인하여 제 가까운 자들이 더 힘들어 하지 않게 하소서.

아니.. 그들도 같이 하나님의 감동을 깨닫는 자 되게 하소서.

그래서 같이 옳은 선택을 매사에 하게 하소서.

주님.

그래서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하셔서

세상의 어떤 일에도 좌절하지 않게 하소서.

아니..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하사

오직 주님이 주시는 영육혼의 천복이 이땅에서도 길이 누려지게 하소서

그런 우리 가족되게 하소서.

주님 아시오는 아들..들...

하나님께 맡깁니다.

제게도 지혜를 주시고

잘 인도하게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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