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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륜과 실족[대하25:17-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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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륜과 실족[대하25:17-28]

주하인 2013. 8. 14. 10:35


 

 


20.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세상의 그 어느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심지어는 아마샤가 듣지 않은것,

비록 그의 선택으로 이방신상을 들여오며 잘못된 길을 걸었지만

그후의 아마샤의 마음의 경직, 고집 조차

하나님이 운용하신 결과이다.

 

그것.

어찌 생각해야 하는가?

그는 왕이다.

인간 아마샤이기도 하지만 왕 아마샤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인간 아마샤가 할 '선택'을 존중하셨지만

왕으로서 인간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위치에 있기에

그의 잘못된 선택은

그의 혹시 있을 지 모를 회개에도 불구하고 (회개한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의 마음 조차 강팍하게 만들어

당신이 이 땅에 예비하신 영향력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이시다.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공의'+ ' 하나님의 때' 문제다.

 

어찌 되었든

어떤 원인이든

어떤 방법이든

내 죄 탓이든 ,  내 미련함 탓이든

나를 위한 더 큰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든

도저히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에서 그들을 더 낫게 하기 위한 일이든

어찌되었든,

이 상황을 통해

아무리 기도하고 변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때와 길과 방법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어쩌면 .. 아마샤처럼 도저히 깨닫지 못할 수도

어쩌면 알고 몸부림 치고 해도

상황을 변케하지 못하는

하나님 만의 '경륜'이

내 주위에 펼쳐지고 있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기도와 열심히 주님 앞에 다가가려는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해결이 안되는 혼란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23.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24.또 하나님의 전 안에서 오벧에돔이 지키는 모든 금은과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하나님을 믿었으나

완전 실족한 '사마리아' 왕 요아스.

그는 하나님의 도구로 이용되어서 '유다'를 침공하며

'하나님의 전'까지 뒤진다.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고대 싸움의 특권이다.

얼마나 신났을까?

승리하고 물건을 챙기고 파괴하고..

문젠 하나님의 전까지 그리 마구.. ............... 했다는게 문제지만...

 

 양심이 없고 꺼리기는 게 없으면 '편하다' .

어찌 하나님을 믿던 이스라엘 백성이 저처럼 까지 타락할까?

요새 세상의 사람들의 마음의 일단을 본다.

마음대로 산다.

걸리는게 없다.

그러다보면 '편하다'

그러나 그것, 하나님의 전을 파괴하는 것임을 저들은 알까?

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사랑', '부모 공경',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명심,

그러한 자들의 '평강' 샬롬.......에 대하여 무시하고 경시하는 것을 넘어서며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에 대하여

인식을 하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그들은 삶으로 하나님의 전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 편히 , 그러나 무섭게 쓰임을 받지 않음이 다행이다.

비록 지금 흔들리는 상황에 있지만...

 

 

27.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하나님의 경륜'

세상에 '큰 흐름'을 위하여

어찌할 수 없이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사건.

'예수님의 오심',

'아마샤 왕 마음을 강팍하게 하심을 허락'하셔서 세상을 지금처럼 이끌어오심....

이 거대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뜻을 세우셨는데 그 안에서 내가 아프다고 몸부림 쳐보았자 무슨 일이 변할 것인가?

 

그 하나님의 경륜과

'나' 사이에 연관관계가 ... 오늘의 말씀을 주시는 이유가 아니신가?

즉, 지금의 내 어려움이 하나님의 경륜이신가

아니면 곧 지나갈 하나님의 '축복'의 과정 중하나이신가 구분해 보려함이 필요하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고

조금 더 날 낮추시려시면

조금 더 기쁨으로 기다리지만

경륜 안에서 겪는 어려움이라면 .. 어찌하는가?

 

무조건 인내하여야 하는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일텐데 흔들리지 않을수 있는가?

 

  그 무서운 하나님의 공의 ,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과연 " 내가 돌아서서 하나님'을 버린 탓은 아닌가 .. 다.

일단.. 그것은 아니다.

절대로..

난 아직 하나님 앞에 감동으로 서 있다 .

매일 매일 내 죄된 행동 탓으로 주님 앞에 순전하게 서진 못하짐나

돌아선 것은 절대로 아니다.

 

 '경륜'이 꼭 죄탓인가?

그 경륜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어려움이 길어지고

이전의 어려움들이 다시 다가오면서 경륜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예정하신 내가 알지못하는 닦을 부분,

더 낮추사 겸손하게 하시어 '마침내 복'을 주실 시간 사이의 기다림이던가?

 

 하나님의 경륜으로 내 결국 '이 땅위에서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도

하나님은 선하심을 인정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혹시 그 오래된 , 기도에도 무응답하시는 듯한

어쩌면, 하나님의 경륜이실 수 있는 일 안에서

'실족'하지 않을 자신은 있던가?.. 다.

이스라엘 요아스 왕의 저런 '후안무치'한 하나님 전의 파괴는

과연 ' 믿었던 민족', '선민 민족'였었다고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실족하면 더 무섭다.

인간은 '두 얼굴'로 바뀜을 어제 묵상에서도 보았고

주위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

역사적으로 '6.25 와 일제 치하의 얼굴 바뀌는 변절자'들,

노사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던 1990년대 대학 병원내의 '노조 간부'들의 변하는 얼굴들..

지금의 주위의.. 누구...

 가치관, 세상관이 바뀌면,

특별히 '영적'인 부분이 바뀌게 되면

이 깡통 로봇 같은 인간이 안바뀔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보고 있다 .

 

나는 진하고 끝없는 이 스트레스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있는가?

 

 

 수술하고 약간의 회복에 문제 있던 분들...

그 분 자신의 문제도 있었지만 생긴 약간의 problem

그리고 신경을 쓰고 재 치료를 하면서 다가오는 마음의 부담들.

나름 기도를 하고 인내를 하지만

상황 상황에 따라 '최악'의 경우가 상정이 되고

마음이 부담이 급격히 올라갔다 내려 갔다를 반복한다.

그거.. 그 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면 되기도 하지만

난.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맡기고 기도하는데.... 자책도...

하나님께 더이상 그러면.. 이라고 나름 주님께 죄송한 멘트로 위협성 (ㅜ.ㅜ;;) 기도도 했는데

약간 불편한 상황이 올때...

갑자기 생각하지 않아도 될 생각이 떠오르며

이러다 내가 '실족'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부담이 살짝 스쳐간다.

물론 , 얼른 마음을 다스리긴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깊은 부분'에 터치가 된다.

그거.. 무작정 뭍어 버리기에는 너무도 큰 문제이지 않는가?

기도..

하나님 앞의 충성..

말씀 앞의 열심...

감동으로 함께 하심을 믿어가면서 사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은 변화없다.

그 고난이 때로는 이해가 불가하게 온다.

해결되었던 같은 문제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오고

그리도 말씀의 약속을 믿고 가지만...

지치려 한다.

 

그때,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생각이 미친다.

하나님의 뜻...

나를 , 내 선을 위하여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 비록 어쩌면 좁은 내 삶의 반경이긴 하지만

이 세상에 미치기 위한 강력한 뜻이 있으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현재상황은 어쩔 수 없이 '선'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아..

어찌 이 어려운 혼란이 '선'이던가?

그것 훈련시키심이 하나님이 '나'에 대한 선한 뜻...

아..

그렇다면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가?

내 가진 삶에 대한 걸림돌.

내 가진 수많은 오래된 터부들..

변해야 하는 영혼의 문제들...

아직도 해내야 할 일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또 무엇을 원하신다는 말인가?

참..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하나님은 그래도 순종하길 바라시고

실족할 속삭임 들에 대하여

'주하인아.. 그것은 아니다.

 내 경륜 속에서 조금 더 인내하고 기다리다 보면

 '선함'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올것이다.' 라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지금 당면한 문제는...

문제들은... ??

 

어찌 되었든간에 결과는 주님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결과에 상관없이 '선'함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전보다는'  조금은 더 '성장한' 주하인이 해야 하는

마땅한 태도이긴 하다.

하나님은 그것을 훈련 시키심이시다.

 

 

 

주님.

어렵고 힘듭니다 .

그러나 깨닫는 바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난 ... 현실적으로 어찌해야 합니까?

내 오장이 타고 육부가 눌려버릴 듯한 그 예상되는 어려움에

난 어찌 대응해야 합니까?

내 주위의 변화는요?

하나님 앞에.. 나 .. 그러면 ..이렇게 할랍니다.. 외쳤던

그 것은 지켜야 하는지요?

안지키고 어찌할까요?

 

부디 바라옵기는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여기서 멈추어주소서.

아마샤 같이 멈추지 못하게 하지 마소서.

하나님.

제발 그리하소서.

믿습니다.

아울러 흔들리지 않는 믿음 주소서

주님은 그래도 선하시다 하게 하소서.

주 기철 목사님까지는 아니어도

그러한 고백하고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당당함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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