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여쭈어 보았다(왕상22:1-14) 본문

구약 QT

여쭈어 보았다(왕상22:1-14)

주하인 2010. 10. 28. 11:50

제 22 장 ( Chapter 22, 1 Kings )  

 

 

바람 조금 만 불어도

전신이

 흔들리는 듯 합니다

 

비가 조금만 흩뿌려도

온몸이

아픈 것 만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

내 이렇게

하늘 향해

꼿꼿히 서 있을 수 있음은

 

그 곳 하늘에

 

내 영혼 깊숙이에도 계신

하나님의 감동이

그리도 그리도

아련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이스라엘 왕보다는 유다 왕이 더 올바르다.

어떤 일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자세.


 
6.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인쯤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선지자 400명보다는

 

 
7.  여호사밧이 가로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한명의 선지자가 더 올바를 수있다.


 
8.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때로는 그의 말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14.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그 말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듣는 귀가 있는 자의 것이면

더욱 그렇다.

 오늘 묵상에서는 이스라엘 왕과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서 일관된 옳음을 보게 하신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여쭈어 봄이 우선 인것과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말씀' 만 듣고 말하는 것이다.

 

 유다왕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의 그럼직한 제안을 듣고 솔깃해진다.

같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아람을 치자.

 하지만 그럴 듯한 명분과 이유가 있음에도

기쁘게도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보자 한다.

그리고는 그제서야 그러마하고 

무더기로 모아서 자신의 뜻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자기 마음에만 드는 말을 하는 '선지자' 들을 400명씩이나 모아 합리화 시키려 한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조차도 수에 의존하여 타당성을 강화시켜 만족 시킬 뿐 아니라

다수의 힘에 의존하여 감히 다른 의견을 허용치 않으려는 심사다.

 이게 비단 그의 마음 뿐일까?

현대는 안그럴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업적으로

가장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일을 했다는 모습을 보이려 하는

물량 주의.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수'에 있지는 않다.

조용히 소리 안내고 기도하는 자들 중에 깊은 주님과 의 교류가 있으실 가능성도 많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생각을 늘 넘어서시는 분이시다.

 여호사밧님의 훌륭한 점은 이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을 만한 선지자를 알아보는 것이다.

 미가야 선지자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맞다.

그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통일된 의견과

왕의 권세로 누르는 소리를 뚫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의 소리 만을 말할 수 있는 자다.

 너무도 훌륭한 일이고 배울 만한 일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꼭 저럴 수 있을까?

 

 어제 저녁.

 수요예배 시간임에도 제치고

날씨가 추움을 불사하고 버스를 타고 수영장 갔다가 시간 맞춰 들어가려고 문 앞 의자에 앉아 기도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입장하려다가 호주머니에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발견한게 한참 지나서였다.

어쩔 수 없이 교회로 버스타고 가서  예배 마치는 것을 기다린 후

아내의 차를 얻어타고야 집에 돌아왔다. 

 토요일. 

참으로 오랫만에 '특송'의 요청이 있어

아버지 학교에서 부부가 찬양하기로 결정된 것이 '한달 보름 전'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가졌기에 곡선정 부터 연습까지 하나도 아니하고

부부 모두 바쁘다는 이유로 요번 주 토요일까지 미루어 왔다.

어제 저녁 드디어는 시간이 거의 없음을 깨닫고는

늦은 귀가임에도 기타를 들고 앉아 이곡 저곡 연습했지만

이전에 잦은 요청의 시간 때.

기도 많이 하고 한참 뜨거울 때 부르던 찬양의 감이 전혀 살지 않는다... .^^;;

그러다가 갑자기 목이 뜨금하더니 감기 기운이 살살 온다.

결국 12시가 다 되도록 둘은 당황 만 하다가

금요일 아니면 시간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뒤로 미루곤 말았다.

오늘 목요일은 내 당직이라서 전혀.........

금요일은 수술이 있어서 연습 할 시간도 없는 데..

결국 시간에 좇기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의 찬양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보는 기도는 했던가?

'곡 선정은요?

 괜찮을까요?'

하등 영적이지 못한 자가 맞기는 하지만

 찬양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여호사밧의 그 믿음의 이쁜 바탕이 

어쩌면 이리도 없었을까?

 예수님 믿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기쁜 것은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을

내 영혼이 먼저 느끼고

그 분의 평강이 내 영혼을 사로잡을 때.. 다.

간질간질하는 듯한 감각이 심장에서 온 전신으로 퍼지는 듯하며

눈물 날 듯한 나른함이 기쁨으로 퍼지는 것.

사람 마다야 다르겠지만

여호사밧의 하나님 뜻 먼저 생각하는 습관,

미가야님의 죽어도 좋을 듯한 강직한 이유...가

다 하나님의 그 은혜의 감각을 아는 자들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것을 공감하기에 이들의 이러한 반응이 감동으로 느껴진다.

아울러 그 감동에 더불어 나의 어리석은 흘러가는 반응이 죄송하게 느껴진다.

응답은 없더라도 주님께 다시한번 여쭈어 보아야 겠다.

 

 감기.

뜨금한 그 성대의 부담감 이후

갑자기 목이 컬컬해지더니

아침이 되니 코가 막히는 듯하고

지금은 깊이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어.

토요일이면 모레인데...

어쩌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얼른 접수하여 내과에 약을 탔다.

그리고 얼른 점심시간에 '링겔' 하나 맞았다.

목이 더 가라 앉는다.

어쩌지..

그러다 깨달았다.

 

 나.

늘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다 하면서도

어느새 3년의 평화처럼 아무 일없이 지난다 싶으면 여지없이 게을러 지는 것이 맞는 것같다.

나의 영적 은사가 부족함으로 말씀을 듣는 것은 분명치 않다해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내 끊임없는 노력이 점차로 약해지는 것이 맞았던 것 같다.

 돌아본다.

수년 전 아주 깊이 감기들었을 때 전인치유에서

목사님의 힘있는 강권으로 인하여

주님께 맡기고 찬양하여 나도 남도 은혜 받았던 경험도 있다.

 그렇다.

그러한 경험이 어느새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 아니던가?

 

 하나님이 여호사밧의 입을 통하여

미리 기도할 것을 권고 하시지 않던가?

미가야의 입을 통하여

분명코 다수의 판단에 '감기는 약먹고 필요시 링겔 맞으면 좋다'고 할 것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정말 그런가 알아보기 보다는

선뜻 그런 듯한 일을 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감기 약 먹는 게 죄라는 뜻이 아니다.

 나.

주하인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의 방편에 대한

모델적 개념이시다.

 일단, 모레 있을 특송에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기도하며 , 꼭 내가 아니어도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임을 기대하여 보자.

 

 

 

적용

 

1. 여호사밧의 그 신실한 믿음을 묵상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자다.

 

2. 미가야의 그 당찬 믿음을 묵상한다.

 . 흔들리지 않는 정확한 믿음

 

3.  말씀을 읽겠다.

 세장

 깊숙이..

 

4. 기도하며 감기약 먹는다  ^^;;

 

 5. 특송에서 실패하더라도 주님 앞에 올바르면 기뻐하리라.

 

6. 걱정을 내려 놓는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늘 .

이렇듯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잡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실은

멍한 몸 상태니 마음도 그런 듯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나의 잘못될 수 있을 순서에 대하여 지적을 해 주시니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믿음의 분량이야 그들 만 전혀 따르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여호사밧님의 순전한 믿음과

미가야님의 당당한 믿음의 결과가

하나님의 살아계신 동행함을 경험하는 자들의 그것이라는

공감으로 다가오며

나의 순서의 흐트러짐.

너무 당연한 것일 것에 있는 순서의 오류.

그것이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다수의 그것과 다름없는

그러나 고쳐야 할 것임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올바른 믿음의 순서를 허락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시여.

또 한번의 작은 시련에 봉착할 위험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인도하셨던

그 주님을 체험하길 원하나이다.

잘못되어도 주님,

잘 되어도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반드시 잘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하에 내 자아가 앞서서

이것 저것 보호막 방어막 다 치고 나서야 안심하는

내 영혼의 습관의 오류를

주님 앞에 맡기나이다.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