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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에게 날 비추어 보다(왕상 22:15-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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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에게 날 비추어 보다(왕상 22:15-28)

주하인 2010. 10. 29. 05:15

제 22 장 ( Chapter 22, 1 Kings )

 

그러고 보니

내 안에도

저러한

이쁨이 숨어 있었네요

 

온통 어두움 뿐일 줄 알았는데

저러한 가녀림 수줍음이

아름답게 숨어 있었네요

 

그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주님의 빛이 비추이니

내 속의 쓸모있는 것들이

저 처럼

드러나는 군요

  

 

27.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 
  아합.

한동안 조신하게 행동하고 금식하며 굵은 베옷으로 자신을 겸비하게 하는 듯 하여

하나님의 겸비하다는 평을 듣더니

아니나 다를까 또 본색을 드러낸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들로만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게 하고

반대되는 소리는 '나쁜 소리'로 치부하여 듣지도 않으려 한다.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다 놓고는

유다왕 여호사밧 앞에서 '비아냥' 대며 다 아는 내용을 시험하듯

미가야에게 물어보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소리가 나오자

'나쁜 소리만 한다'며  감금하며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만 먹이라고 한다.

 역시 아합은 ' 소심'한 자 맞다.

그런 그는 그 소심함을 '사람'들의 수나 눈에 보이는 위엄에

'적극적으로 의지'하려는 게 잘못이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회개가 아니고 ..

 

 오늘 묵상 내용 중에 몇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다.

'아합'이라면 될 것을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왕', 이스라엘의 왕... 하고 표현이 되어 있다.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하나님의 뜻을 배반함은

하나님께 잊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 첫째다.

 잊혀진다는 것.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다는 것.

미움보다 더 괴로운 것은 '잊혀짐'이다.

그는 이제 버려진 인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시다.

 나.

주님 앞에 의도적 '죄'는 없던가?

알면서도 적당히 하나님의 이름 만 앞에 내 세우는 일은 없던가?

오늘 하루 주의를 깊게 하며 살펴 보아야 겠다.

 

 또 ,  좋은 소리만 들으려 했던 ' 아합'의 죄다.

난 나의 좋은 것 만 인정하려는 습성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게 나에게 단 소리가 아니어도 옳을 수 있을 때 과감히 받아들이는 '용기'와 깨달음이 필요하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미가야가 소수이고 다른 의견이지만 그것은 '분노'하고 뺨을 때리고

비아냥 댈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냥, 다른 의견이어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람 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면

내 의견과 달라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가야는 소수이고 고생의 떡과 물을 예약 받은 '좁은 길'을 선택하였다.

왕 일행은 다수이고 달콤한 것만 즐겼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좋아하시는 것을 하고 천국 백성이지만

왕 일행은 세상에서 좋은 것만 하고 악한 자 들이었다.

어느 것이 더 좋은가?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당연히도 '좁은 문'이지 않던가?

 

오늘 하루.

어떤 불합리 하다 생각되는 일이

나의 주위에서 벌어지더라도

묵상을 명심하고 기뻐 받으리라.

 

또한 , 아합에 대하여 많은 지면이 할애 되며 나온다.

그가 그리도 악한 자임에도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도 익숙한 우리의 심성을

아니, 나의 심성을 아합의 소심한 내면을 통하여

들여다 보고 분석하여

그 오류에서 벗어나길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으신 듯 싶다.

 

그리고 그리 영적이지 못한 자들을 묵상하게 하심으로

너무 당연한 그들의 죄악을

되풀이 시키지 않고 싶으신 하나님의 뜻도 ...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아합의 행실을 통하여 여러가지 말씀을 주십니다.

눈과 귀에 달콤한 소리만 듣길 좋아하는

이 품성에 대하여 경고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

이성적으로 앎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러한 삶의 태도를 취하고야 마는

아주 오래된 습성을 주님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내려 놓길 선택합니다.

 주님.

나의 좋은 면 만 사랑하는 내 단점도 내려놓습니다.

아합의 소심함을 어찌 그리 빼닮았는지요?

미가야의 입을 통해 나오는 질책 같이

아합 스스로의 눈에 들지 않는 질책받는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불만족 스러워 하고 때로는 분노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인격이 더욱 크게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아합 같은 자.

그 아합을 통하여 거울에 비추어 보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을 삼아

새롭게 변화되어 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길 원합니다.

 

특별히 간절히 비옵는 것은

묵상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인간의 불합리를

타인을 재는 '도구'로 삼지 않게 되길 빕니다.

저도 모르게 어리석은 인간 군상들에게

실망하고 있는 경우가 점차로 커짐을 느끼곤

깜짝 놀랐습니다.

주님 예수님은 그들 , 그렇게 추악한 자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러 이 땅에 성육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히려 반대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아합의 그 분노처럼

날 반대하고

내 의견에 맞지 않는 자들을 분노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어리석은 자를 용서하소서.

절 불쌍히 여기시어서 이처럼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의 거울이

참으로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늘 사랑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주여.

제 아들들,

제 아내..

제 식구들.

제 주위 모든 분들.

말씀 안에서

그리 사랑 받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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