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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순종할까 (왕상20:-43)

주하인 2010. 10. 25. 10:33

제 20 장 ( Chapter 20, 1 Kings )  

 

주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이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그래도

올곳이 흔들리지 않을 이유는

 

주님의 말씀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순종을 귀히 여기시어

허락하시는

놀라운 평강의 기쁨 탓입니다

 

그 기쁨을 에너지로

다시한번 힘낼 수 있는

우리의 사모함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무엇을 어떻게 순종할까 (왕상20:-43)
35.  선지자의 무리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 동무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선지자들에게는 '전적인 순종' 을 원하신다.

그것이 뺨을 때려달라고 요구하는 친구의 희한한 주문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면 뺨을 때리는 '순종'.
 
36.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저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전적인 순종 아니면 죽음이다.


 
42.  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 왕에게는 ' 기적'을 보이시고 '힘'을 주어 '승리'를 하게 하신 후

순종을 하시길 원하시었다.

 

 같은 교인이라도 '영적 수준'에 따라 요구하시는 순종은 다르지만

순종은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임이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순종'하라 하시는 '순종의 내용'이 무엇이실 까?

우리에게 보이고자 '아합'과 '선지자'의 순종에 대하여는 극명하게 말씀하셨지만

일상에 사는 우리가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가?

 일단은 ' 말씀을 들음'이 순종함에 앞서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꼭 멋진 '전조Aurora'가 있고 응답의 형태를 띄어야 하는가?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

그것은 '깨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나

매일 말씀을 묵상한다.

말씀 묵상 중에 때로는 극명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때는 쉽지만

말씀이 오늘처럼 '순종하라' 하시면서 무엇을 순종할까에 대하여는

정확한 말씀이 없을 때가... 곤란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순종한다는 말인가?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

어떻게는 확실하다.

말씀하시는 것에 하나도 '이견'이 없이 , 나름의 변명이 없이 듣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순종할까?

매일 달라진다고 이전의 말씀은 헛것이던가?

어제 말씀은 흘려 보내고 오늘 것만 오늘 하루에만 유용하시던가?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금 주님의 뜻의 기본으로 돌아간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나에게 '화합'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며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오늘 하루.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조금 더 착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긍휼한 마음으로 환우들의 말을 들어준다.

내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이들에게 먼저 웃어준다.

............

하려하면 할 것이 얼마나 많던가?

 

 아침에 출근하는 데

아내랑 차를 따로 가지고 나왔다.

대부분 아내의 차를 몰고 나와 퇴근 할 때도 아내가 전화하면 맞추어 가던가

아니면 버스를 타고 따로 들어간다.

간호사 출신이던 아내를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이 다니는 병원에서 도움요청이 와

3개월 간 '아르바이트' 식으로 근무하러 나간다.

워낙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 근근히 버티는 게 안스러워

출근 시간이라도 잠시 눈 붙이라는 의미로 그러하던 건데

오늘은 스케쥴이 있어 따로 가지고 나왔다.

 뒤따라 운전을 하던 중

고속도로를 올라 타고 아내가 먼저 차선을 2차선으로 바꾸고

나도 따라서 그러려니 뒤에서 바짝 붙어 양보를 안하려는 차가 있다.

넉넉하다 생각이 들어서 아내 차를 보호할 목적으로

그 사이로 끼어 들어 갔다.

그리 위험하지 않은 상태가 맞음에도 뒷차가 상향등을 키며

불쾌함을 표시한다.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이련만..

 불합리한 감정 반응에 '조금 '속도를 늦추었다.

내 속에 드는 이 어리석음.

얼른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속도를 내어 아내 차랑 보조를 맞추어

출근했지만 말씀을 묵상하고 나온 자로서

이러한 흔들림이 당혹스럽다.

 그러한 나를 , 그러하게 만든 그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라 시는가?

그것을 순종하라시는가?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내려 놓았다.

 

 그래도 오늘 묵상의 말씀이 뜨겁게 다가오지를 않는다.

환우 분들이 잠시 뜸한 사이에 누군가 진료실 문을 세게 두드리고 들어오신다.

아.

요번에 '목사'님 안수를 받으신다며 몇년 전에 연락이 끊겼던 전도사님이

고개를 빼꼼히 드미신다.

 엉뚱하셨던 분.

순수하기는 말도 못하시고 아픔이 많으셨던지

특이 하신 분이시기도 하다.

그 분이 들어오시자 마자 많은 말을 늘어 놓으시더니

한 말씀을 하시며 고개를 떨구시더니 눈물을 많이 흘리신다.

'어...'

놀라서 화장지를 드리니 눈물을 훔치면서 말을 이으신다.

'저는 은사가 크지 않아서 인지 하나님께서 뚜렷이 주시는 응답이 없으셨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집사님 얼굴이 떠오르면서

하나님이 계속 찾아가 끈을 풀어라... 하시는 겁니다.

 너무 놀래서 착각인지 머리를 털었지만

뚜렷이 영상이 계속 떠오르고 말씀이 들려서 어쩔 수 없이 왔습니다.'

 오래 복지부 공무원 생활하시면서 사회 물을 많이 드시고는

사연이 있으셔서 목회자의 길을 밟으시는 분으로

연세가 나보다 많으신데다 크게 마음 상할 일도 없엇고

 '사과'나 '회개'성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으셨었을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하여

목사 안수 받으시기 전 정리하러 다니시면서

받으실 그 마음의 낮아짐이 참으로 안스러웠다.

 그러면서 '순종'에 대하여 말씀하시던

오늘 묵상의 일부가 이해가 된다.

' 아.

 이런 일이 있으려고 저런 '선지자'들의 온전한 순종에 대하여,

 그리고 그러지 못하는 '아합'같은 유약한 기독교인들의 마땅히 해야할 순종에 대하여

 오늘 성경으로 말씀하셨구나.. '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며

그 전도사님의 순종하는 가슴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의 살아계심이

너무도 귀했다.

 

 

 

적용

 

1. 순종에 대하여 다시 한번 묵상한다.

 어디까지가 순종인가?

 순종은 아는데서 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기도로 받아 하는 것임을 느꼈다.

기도 더 해야 한다.

묵상으로 주신 말씀이 이해가 안갈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주실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자.

 

2.  타인을 이해하자.

 

3. 나 자신을 기뻐하자.

 

4. 주님의 말씀을 기쁘게 3장 묵상하자.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절 이리도 사랑하셔서

순종의 예를 또 한번 보이시네요.

주님.

저.

일상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늘 깨닫길 기도합니다.

그리 마음의 열어놓음을 유지할 수 있길 원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순종하는 삶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제 자식들.

그리 되게 하소서.

모두 그리되게 하소서.

우선 제가 저와 화합하게 하시고

타인을 기뻐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주하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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