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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이 일 (왕상 21:1-10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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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이 일 (왕상 21:1-10 )

주하인 2010. 10. 26. 08:18

제 21 장 ( Chapter 21, 1 Kings )

 

 

 

지금까지 살아온 것

모두 주님 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제 영혼 이리

활짝 피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주님의 비추시는

사랑 탓이었습니다

 

이제 주여

제 얼굴

죽도록

주님 만 향하길 결심합니다

 

붙드소서

주여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 왕 아합의

     궁에서 가깝더니 
 ' 그 후에' 라면 무슨 후인가?

아합이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어김으로 질책을 받고 근심하며 돌아온 일.

 

' 이 일'은 무엇인가?

아래에서 계속 나오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으로 인하여 이어지는 일련의 죄악스러운 일들.

 

 그(일) 후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일이 있은 '후'를 의미하며

'이 일'은 세상의 일을 이야기 한다.

 즉, 아합은 하나님의 큰 은총이후 죄를 지은 직후에도

하나님을 의식하기는 커녕

세상일에 몰두해 빠져 들어가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아합을 묵상하면서

그는 진짜로 악해서 악한 것 보다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하여 결과적으로 악해진 것 같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해도 '하나님의 은총' 내지 '하나님의 뜻'은 전혀 의중에도 없는 것이

진정으로 '악'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

정말 악함은 '어쩔 수 없이' 악한 일을 하는 자보다는

악함을 알면서 악함을 의도적으로 행하는 자고

그보다 더 악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지 않는 자들이다.

 

 아합은 정말 소심하고 착한 품성을 가진 자 같다.

끄덕하면 이불 뒤집어 쓰고 끙끙 앓는다.

질책에 조금도 견디지 못하고 마음앓이 한다.

'왕'이면서도 그런다.

자기 마음대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런다.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내가 누군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기독교 인이고

따라서 왕같은 제사장이고

아버지이고

건강한 사회인이고

타인의 선배이고 후배이고

아들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할 일을 확실히 안다.

왕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하고

아버지로서 벽이 되어야 함을 알고

남편으로서 든든한 도우미가 되어야 하고

직장인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아들로서 효도를 해야하고

사회인으로서 공공질서를 지키고

이웃을 위해 긍휼을 기반으로 한 배려를 하고.....

그래야 '아합'같은 증상이 나오지 않고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아합의 또다른 문제는 '욕심' 이었다.

왕으로서 물질이 충분할 것임은 불문가지일 것임을

그는 눈 앞에 펼쳐진 나봇의 포도원을 탐을 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얻어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좌절'하는 것이다.

이 욕심이 얼마나 지나친지 '그 일 후'에도 '이 일'만 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준엄한 질책을 넘어서는 근심이나 갈등은

욕심이 가져오는 것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돈을 사랑함'은 침륜을 가져온다고 나온다.

욕심은 만 악의 근본이다.

욕심은 눈을 가린다.

지나침은 늘 부족함을 넘어서는 손해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아합의 악함의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음이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에 속해 있는 자다.

자신이 그러함에도 일말의 갈등을 보이지 않는 듯하다.

참으로 가슴 섬뜩한 일이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회개'를 할 틈도 주지 않고 명분도 없고 이해도 못하게 한다.

 착한 그를 자꾸만 자꾸만 악으로 밀고 밀고 들어가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 들이 비단 '아합'의 것일 것인가?
현대를 돌아본다.

' 욕심'을 불러오기에는 너무도 다양하고 현란한 물질의 풍부를 본다.

너무도 많은 정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한다.

그 들이 제공하는 것을 보면 바로 '천국'이 그것을 취해야 할 것 같은 혼란을 느끼게 한다 .

시간을 너무 빼앗는다.

'회개'니 '돌이킴' 이니 '내려놓음'등은 생각할 기회도 없다.

 어느새 저녁이고 어느새 밤이고 어느새 아침이고

또다시 경쟁으로,  틈틈히 정신없이 많은 물질이 눈을 잡고

또 다시 또다시...

어느새 마음과 영혼이 사로잡혀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면서 하나님과 자연스레이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교회는 나가지만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

 

 어제 그제.

화장실에 가서 '성경'을 읽겠다는 마음이 들어 핸폰을 꺼냈다.

핸폰 안의 Text viewer를 통해 읽을 수 있기에 편하다.

어 ...그런데.. 이게 .. 손에서 꺼내는 순간.. 미끄러져... '퐁당'...ㅜ.ㅜ;;;

겨우 어떻게 꺼내어 물로 세척을 하고 비누로 세척 했으나

먹통....^^;;;;;;;

그래서 유혹이 생겨오던 '스마트'폰으로 사기로 맘먹고

토요일 근무를 마치자 마자 지하상가로 뛰어가서는

'가격' 과 ' 디자인'에 합당한 폰을 골라왔다.

물론 스마트 폰은 사용료가 너무 비싼 대신 '효용가치'에서는

영업하거나 연구직이 아닌  이상 큰 필요가 없어서 피해왔으나

그 화면의 화려함이 유혹적이어서 망설이던 중

드디어 '변기 사건'을 빌미로 해치워 버린 것이다.

물론 4일이 지나니 다시 잘 동작을 하지만... ^^;;

 그런데 문제는...

스마트 폰이 너무 편하다는 것이다.

누워서도 인터넷을 볼 수 있고

신문을 볼 수 있고

영화도 , 사진도.........

무엇보다도 성경을 깨끗이 볼 수있다는 것이 최대한 장점이다.

정말 재미는 있다.

나한테 진짜로 효용가치는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까짓거 , 성경 . .. 기존의 핸폰에서도 화질은 떨어지지만 잘보인다.

 인터넷 .  편하게 안해도 산다.

노래.   기존의 MP3하나 더 들고 다닌 다고 문제될 거 하나도 없다.

 안들어도 그만이구...

영화.   안보아도 산다.

네비게이션?   없다고 못찾나?

심지어는 스마트폰에 의하여 '정신병'도 생긴단다.

기억력 감소, 불안 장해.......

 결국, 편하고 남들하니까 과도한 돈을 지불하며

스스로 '기계'에 묶이니 점점 더 올가미에 묶이는 느낌이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멍에'다.

 

 아합.

그의 증상과 그 이유에 대하여 묵상해봤지만

그의 문제는 지조없음과 회개 못함이다.

현대의 아합이 매달리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스마트 폰  뿐이랴?

성공.

남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이름으로 '중심'이 될 만한 가치가 없어진 것.

그것이 아합의 정신없음을 유발한 것이다 .

 

나.

핸폰에 있는 정보를 스마트 폰에 일부분 옮기고 나니 새벽 한시다.

몸이 피곤하고 그냥 잠이 쏟아지려 했지만

주님께 죄송하다.

근래에 자꾸만 옛 본성이 스물거림을 느끼는 것이

기도의 부족 탓인 듯 싶다.

말씀은 대충대충.

 억지로 억지로 침대 맡에 걸터 앉아 베란다를 향하여 앉아

자는 아내의 깊은 숨소리를 뒤로 하고

잠시 주님과의 독대를 하려했다.

너무 피곤하지만 '고향'에 온듯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낀다.

점차로 바글바글 집중못하게 만드는 머릿 속의 복잡한 생각은 정리가 되고

마음이 하나로 집중이 된다.

관심은 '하나님'으로 향한다.

난.. 정말 기도가 좋다.

특히 조용한 읊조림의 기도는 기쁘다 못해 눈물이 나려한다.

그럼에도 시작이 어렵다.

어쩜 이렇게도 붙드는 유혹들이 많은지..

그러다 하루이틀... 기도의 분량이 줄어들면

여지없이 짜증 올라오고 속이 뒤틀린다.

겨우 어려운 힘을 내서 아합 됨을 벗어났다.

감사하다.

 

 아침 겨우 다섯시간 남짓 잤지만

너무 개운하다.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 ' 새벽교회 ' 다녀오면 몇 시간 못자도 피곤치를 않는데

 많이 자도 교회 못가면 하루종일 피곤하다'고...

맞다.

당직 방에서의 경험을 여러차례 고백한 것을 돌아보아도

오늘을 돌아보아도

기도는 마음을 하나로 주님께 일치 시켜서

조금을 자도 깊은 숙면이 가능하지만

세상의 것들은 바글바글 많은 생각이

온 영혼의 정신에너지를 뺏아가서 그런 듯 싶다.

 

아합.

현대의 수많은 어지러운 정신을 가진 예비 아합들,

나의 아합 같은 상황들.

피곤하고 정신없어 그대로 방치하면

'가장 악한 자 '소리 들을 위험성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회개하자.

감사하자.

깨달음을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 놓음을 회개하자.

 

 

 

적용

1. 감사하자.

 정신을 잃게 만드는 세상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기도가 감사하다.

 감사하는 기도가 나도 모르게 나온다.

 그런 나를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이 너무 좋다.

 

2. 회개하자.

 주님을 잊고 사는 시간이 많아 져 감을 회개한다.

 

3. 기도의 분량을 늘인다.

  한시간 이상 기도 하리라.

 

4. 성경 세장 읽겠다.

 

5. 스마트 폰 .. 자제한다.

  영화... 자제한다.

  아합의 위험성에서 멀리할 결심하자.

  눈의 정욕을 금식하자.

 

기도

 

귀하시고 감사하신 주님.

아합의 악한 이유에 대하여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의 어리석은 악함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고도

그후 즉시 '이 일'로 대표되는 세상의 것에 정신을 빠드리고 마는 그 죄악이

마치 오늘의 내 모습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착하지만 악한 그의 결과는 모두 회개없음이고 지조없음이었고 욕심 탓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더 자제하게 하시고

더 내려 놓게 하시고

더 회개하시고

더 기도하게 하시고

더 감사하게 하시고

더 주님 홀로 생각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제 아내, 제 자식, 제 부모님.. 모두... 주님 안에서 그리되게 하소서.

특별히 금년 영접하게 하신 어머니 위해 감사기도 드립니다.

그 분과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더욱 그리하게 하소서.

온전한 주님의 가정이 되게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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