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약한 것이 자랑이 되게 하소서[고후11:16-33] 본문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옥에 갇히고
매 맞고
죽을 뻔하고........
이어지는 수도 없이 많은 고난들...........ㅜ.ㅜ;
그게
자랑할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이들이나
범죄계 ^^;;에 사는 사람들이나
정신없는 성인아이 (아이같은 어른들)이나 하는 얘기지..
그런데
그는
그런다.
저 마구 늘어 놓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바닥에나 있을 사람들이나 겪을
부끄러울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그러면서
그는
부득불이란 표현으로
그게
부끄러움이 아니고
오히려
'약한 그것(약한 것이라는 표현으로 세상적인 부끄러운 , 고통스럽고 버릴 만한 일임을 그도 안다)'을
'자랑한다'고 선언한다.
그분의 오늘 선언을 들어가며
복잡한 마음이 스치고 지나간다.
솔직히
'돌로 맞고' ....파선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어느 것 하나라도 경험하고 나면
창피한 것은 떠나서라도
무섭고 두려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 (선교)이 아닐 것인가?
그리고
그러함을 통하여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인가...........
회의와 수많은 번민이 머리를 스치었을 것이
실은 더 두렵다 .
그런데
그는
그 일을 수십번이나 겪었다한다
그렇다함은
그의 뇌리 속에 스쳤을 (내게는 최소한 그럴 것 같다 ) 그 수없는
사단의 붙잡음을
과감히 떨칠
아니 오히려 더 기쁘게 하지 않았으면
그 수많은 고난을 이겨나갈 수 없었을
그 놀라운 내면의 '확신'내지 힘이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 나라 전해야 하는 사명감'과
그를 하여야할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었겠지만
그러나 그러함에도
과연 그 많은 수난과 고난을 겪어가며
자신이 과연 그 사람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을 이길
그 어떤 생각들. . 말이다.
당연하지만
그의 노력과 타고나 똑똑함 ...으로 이룬 것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엄청난 고난과 그로 인한 혼돈을 넘어서는
확고 부동한
진실.
진리.. 말이다.
그것.
오늘
사도 바울께서 선언한
'부득불 자랑하는
'약한 것을 자랑할 '
그 온전한 확신..
성령의 인도하시는 은혜로 인한
확신.......말이다.
그 확신이 없고는
그는 그러한 고난, 상상하기도 힘든 도전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나.. .
'약함이 강함'이라는 명제를
너무도 좋아한다.
내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인생의 버거움들이
저 말씀으로 당연히도 이해가 간다 .
질그릇처럼 추하고 약함이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임할 기회가 되어
'보배그릇'이 되는 그 원리...
그러함으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당연히도 방해하려는 수없는 많은 사단의 궤계와 고통을 이겨내도록
주께서 주시는 은혜의 체험이
내 안에 그득하게 되어
이제는
더 이상
약함이
날 누르는 약간의 창피함이나 부끄러움이나 원망의 구실이 되지 못하고
오직
날 사랑하셔서
그리 허락하셨구나.. 하는
하나님의 원리임을
단순하고 강하고 기쁘게 선언할 수 있게 될 것임을
알기에 그렇다.
오늘
특별히
그 약함을 자랑함을 선언하는 사도바울님을 보게 하심은
내 흔들리는
약함을 부끄러워함을 아시는
하나님의 뜻이시다.
오늘
또 다시
난 약함이 있어도
부끄러워하거나 무서워하거나 혼돈하지 말고
오히려
기쁘게 받아 들여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고 있는
나.. 임을 확인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감사하다 .
주여.
압니다.
알지만 잘 안됩니다.
약함을 기뻐함.
약함이 강함임을요.
그것 아시고
주께서 또 말씀으로 보이시고
말씀에 집중하는 선택을 하는 순간
또 다시 은혜로 붙드시어
내 나머지 인생의 날동안 허락된 하루를
주님 안에서
올바로이 버티게 하실 기회임을 깨닫습니다.
주여.
홀로 하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과거 묵상 (2013.04.18)
진정한 지혜 건강한 약함
주님
어두운 제 영혼에
빛같은
주님의 진리로
제 갈길을 밝히소서
비록
나
그리 밝지 않고
또
그리 강하지 않아도
주 말씀 만
바라보며 나갈 때
이 어둔 세상이
절 바라보고 나갈
지표로 쓰임 받길 원합니다
날 사랑하시고
날 기뻐하시어
모든 걸
바르게 용납케하시는
내 지혜의 근본이시여
19.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진정한 지혜가 무엇일까?
'어리석은 자를 기쁘게 용납하는 구나'
어찌 약간은 비아냥 거리는 투의 말씀이시다.
용납하는 것.
어제 묵상에서 했지만 용납은 특히 '나'에게 중요한 덕성임에도
용납을 모두 다 하여야 되는 것은 아닌 가 보다.
20.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이렇게 까지 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덕이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말하신다.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지 세상의 일들이 아니다.
잡아 먹히고 빼앗기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희생이 되어야지
명분없는 세상의 것들에 의함은 아니어야 한다.
스스로 높이는 것은 죄다.
스스로 높이게 되는 데 무비판 적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은 죄다.
뺨을 때리는 것 같은 어이없는 상황 때 '예수님'을 생각하며 이를 참으면 아름다우나
그냥 보복이 두려워서 참거나 판단이 마비가 되어 참아가며
그것을 용납으로 착각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용납이 아니고 잘못된 '지혜없는 '일이란 것이다.
그런데 모두에게 , 모든 상황에서 그렇듯 구분이 가능한가?
특별히 '감정적'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던 사람들에게
특히 한국 같이 '체면 '문화가 많이 발달한 곳에서
늘 지혜롭게 상황판단하여 '용납할 일과 용납하지 않을 일' 에 대하여
구분하여 대처할 만큼 성숙한 판단이 가능할까?
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더냐
그 지혜의 근거가 이것이다.
용납의 근거가 이것이다.
이분 사도 바울꼐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띄어 왔다고 고백하고 있으시다.
여기서도 그리 나온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게..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게..
약한 자에게 약한 모습으로 다가가고
고통스러운 자에게 애타는 모습으로 다가갔다고 한다.
사도행전에서는 필요할 때 세상에서의 신분 ,'로마'시민권자 임을 드러내기도 하셨다.
그렇다면 이런 '자유로운 처세' ^^*, 가르치시고자 하는 지혜의 모습은
어떤 생각에서 근거하는 가?
예수님의 사도로 거듭난
즉, '중생'한 자의 기본 개념은 어떤 것인가 ?
약함과 타인을 향한 애탐이다.
모든 관점의 기본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자로서의 기본'이고
그 기본이 '약해짐'이고
예수께서 주시고자 하는 그 생명을 얻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사랑'이다.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보라.
사도 바울님의 지혜의 근본이다.
그 분은 '약한 것'을 자랑하신다 하시었다.
그 약함을 자랑할 마음의 버퍼는 '예수님을 위함'이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함을 위함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자존심을 내려 놓을 수 있었고
그러기 때문에 그의 스스로의 약한 모습 때문에 '자존감'을 상할 이유가 없었으며
똑같이 낮아지는 상황이어도
굳이 '비굴함'에 처할 이유가 없었다.
동일한 낮아짐도 '하나님 때문에 자존감은 높아졌다.
타인을 높게 보면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제대로된 '지혜' 안에 있었다.
그는 '자연스러운 ' 사람이었고
그는 '자유스러운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유'로 인한 '지혜' 탓이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하며 자신의 소리를 당당히 발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
'부득불'이란 표현 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이라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아는 지혜'를 가진 자의 표현을 하며
그것을 '자랑한다'는 당당한 자신감이 넘치었다.
그 자랑의 근거가 '약한 것'이니
그 얼마나 놀라운 선언이던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한다'
그거야 말로 진정한 지혜고
진정 강한 자다.
자신의 약함에 부르르 떨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자의
그 마음의 복잡함,
그 마음 속의 부대끼는 흔들림,
그 흔들림의 잠시나마 지옥같은 불안정에 대조하여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건강한 지혜가 참으로 부럽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그의 건강한 약함이 진정으로 부럽다.
적용
1. 나도 부득불 자랑하는 자 되자.
함부로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만 자랑하는 자 되자.
2. 약한 것을 자랑하자.
하나님 때문에 약하여 지는 게 자랑할 일이다.
약한 것이 자랑할 일이다.
어떤 약한 것도 '예수님'을 위하여.. 하면 기뻐짐을 명심하자.
그 원리를 깨닫고 순간적으로 반사적으로 내 영혼을 사로잡는 것이
어서 어서 심령천국의 삶을 사는 기본임을 명심하자.
3. 긍휼을 간구하자.
약해짐을 기뻐함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4. 예수님을 위하여 약함을 기뻐하자.
5. 성경 세장 읽자
6. "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
명심하고 외우자 .
기도
주님.
아들 학교 때문에 같이 일찍 출근했습니다.
나온 김에 조금 깊이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인가 마음이 많이 좋습니다.
지금 만 같아서는 모든 약한 것을 자연스레이 자랑할 수 있을 것 만 같습니다.
주님.'
지금 같아서는
모든 내 살고 있는 이유가 '주님을 전파함'이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이 지혜.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깨달아지고 다시 생각나게 하는 것처럼
늘 일상에서도 잊지 않게 하소서.
조금만 건드려도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고야 마는
내 '자존심'의 틀이
이제는 깨지게 하소서.
주여.
그게 주님의 말씀 탓이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성령이 내 ... 그 오래된 견고한 진을 파쇄하고 깨드리시사
저로 하여금 진정
매사 매사 '주님' 때문에 약해질 기회를 깨닫는
진정한 '지혜'의 순간 순간을 경험하게 하시사
주님 때문에 더 약해지게 하소서.
선택하게 하소서.
주님 영광위하여 어려움 다 겪어 이겨나가게 할 결심을 하게 하소서.
그런 지혜를 주소서.
주님.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우는 자들을 같이 울게 하시고
웃는 자들을 같이 기뻐하게 하소서.
괜한 오해의 두려움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더 빨리 이유를 찾게 하시사
깨끗한 하나님의 허락하신 감성으로 그들을 긍휼히 보게 하시고
강하려는 진정 약한 세상의 사람들에게
약함을 선택한 진정 강한 제가 되게 하소서.
이 놀라운 가역적 원리에 대하여
세상 모든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이 같이 깨닫게 하시사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예수님 믿는 자'들로 인하여 밝아졌다는 소리 듣게 하시어
주님의 영광이 그로 인하여 더욱 뻗어나가는 일이 마구 넘치게 하소서.
주님.
어떠한 자리에 있든 간에
제 아들들 굳게 잡아 주소서.
주님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젊음의 폭풍우를 뚫고 주님으로 인하여 약하여짐을 기뻐하는 지혜가 넘치게 하사
잘 숙성된 포도주와
잘 익은 곡식의
향기와 뿌듯함을 지니게 하소서.
그 영혼에 주님이 든든히 자리 잡고 있음을
세상이 알게 하시고
가장 지혜 있는 자들이 되어
정말 세상에도 필요한 그들로 만드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에 나와 함께[고후13:1-13] (0) | 2020.10.13 |
---|---|
그들을 위하여[고후12:14-21] (0) | 2020.10.12 |
용납을 넘어서[고후11:1-15] (0) | 2020.10.09 |
육신의 나 온전한 나[고후10:1-18] (0) | 2020.10.08 |
넉넉한 은혜 뚜렷한 원함 [창9:1-15] (0) | 2020.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