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픔의 의미[계16:10-21] 본문
10.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천사는 '좋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착함'의 대명사다.
천사같다는 표현은 착하다는 최고의 칭찬이다.
그러나, 계시록의 천사는
아픔과 혀를 깨물게 하는 고통을 가져오는 '천사'다.
천사가 나쁜가?
아니다.
타락한...천사는 '루시퍼'지만
여기 천사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천사가 아픔을 가져오는 것은
'이익'을 가져다 줌이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그것도 가장 선한 도움이 되는...
눈물을 머금고
가장 선함을 가져오기 위하여
너무도 착한 그들의 본성까지 억누르며
하는 무서운 행동.........
11.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그로 인한 '아픈 것'과 '종기'.
얼마나 아팠고 힘들었으면 저랬을까.. 싶기는 하다.
그런데 그 대상이 '하나님'이고
그 원망이 정도를 넘어서는 비방이다.
또한 '천사'의 의미처럼 '감사'하고 '선한 결과'를 기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방' 한다는 것은
그들의 태도가 정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도...
그러함은
그들의 태도의 잘못된 훈련의 결과이다.
'회개'를 하지 아니하는 삶의 태도 탓이다.
회개는 자신을 돌아봄이다 .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돌이키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되는 점이 몇가지 있다.
일단 저러한 태도..가 비단 '불신자'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일인가?
계시록은 막연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불신자들을 심판하러 온것처럼 생각되지만
과연,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들 중에서도
불신자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은 자들이 없다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가?
내 속에는 늘 예수님의 생각으로만 그득한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구원받은 자'의 의미가
당연히도 그렇게 되어야 할 자들이 취해야 할 당연한 태도이지
그게 반드시 나랑은 일치 하지 않지는 않은가?
당연히도 삶은 '영적 전쟁터'이다.
사단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라고 그냥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우는 사자처럼
호시 탐탐 실족하게 하기 위하여 잠시도 자거나 쉬지 않는다 한다.
그러기에 저 회개 하지 않고
하나님을 비방하는 행위를 하는 자가
내가 될 개연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오늘 말씀에서 하시는
회개를 하여야 할 자는
'나'도 포함이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회개를 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회개하면서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회개하고 온전히 돌이켜 거기로 부터 다시는 돌아가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고 창피하게도 자꾸만 되풀이 되는 것을 경험하며
어느 때 '회개'라는 단어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슬쩍 피해버리는
그런 마음의 부담을 가지게 되었었다.
이것은 비단 나의 문제는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행위'를 회개하라 한다.
그것.. 죄에 대하여 통찰력을 주는 부분일 수 있다.
죄.. 그것은 어쩌면 다양한 이유가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우리 각 개인의 영적인 약점을
'나쁜 ' 영의 터치에 의하여 (예를 들면 '상처', 특질상 형성된 부분...)
우리의 심리적 육적 싸이클을 거치며
외적으로 나올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경우(어디까지나..이런 경우..다. ) 도저히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에 의한 행위 , 외적 부분 만이라도 돌이켜 회개할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음이다.
외적인 부분이라도 깨어 회개하면(내적인 부분은 예수님께 맡기는 선언하고 ^^*),
내적인 부분은 하나님께서 주님의 때에 해결해주실 것이 아니신가?
그렇다면, 눈물을 머금고 베푸실 수 밖에 없는
고통과 아픔은
그 분의 사랑의 표현이시며
그 아픔의 강도나 기간은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영향을 받음을
다시한번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신 것이다.
( 계시록의 종말에 펼쳐지는 심판은 개전의 여지가 없는 불신자들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묵상, 큐티,레마는 조금 다른 의미다..)
15.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렇다.
아픔을 허락하심,
공의의 심판조차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아픔'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도저히 돌이킬 여지가 없으시는
가장 마지막까지의 시간동안을 인내하시고
마지막 , 사랑의 표현으로
'회초리'를 드신 것이시다.
깨어 있어
돌이키길 바라시는 것이시다.
나.
오늘 '주일'.
무엇을 회개하여야 할 것인가
무엇 돌이키지 못한 것이 있는가
왜 그리 변치 않고 아픔이 지속되는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그 행위라도 회개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신 하나님의 공의의 매를
피할 수 있게 된다.
맞지 않고 효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
오늘은 거룩하신 주님의 날이십니다.
오늘도 어쩌면 아픔이있을 수 있겠고
그래도 그 아픔은 하나님의 사랑임을 잊지 않길
깨닫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
묵상 중에 제 죄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 부분..
자꾸만 되풀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저항하는 부분임을
주님께서도 아십니다.
주님.
그러함에도 그러함의 결과만이라도
그 행위만이라도 회개하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어린 권고를 느꼈습니다.
감사하나이다 .
제 잘한부분을 아주 기뻐하시고
잘못하는 부분을 끝까지 인내하시고
그래도 사랑하신다시며 기다려 주시고
이제 다시 기회되어 되풀이 되는 죄된 행위를깨닫게 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오늘 행위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시고
혹여 그러면 즉시 회개하는 자 되게 도우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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