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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날아다니다[계17:1-18] 본문

신약 QT

성령으로 날아다니다[계17:1-18]

주하인 2012. 12. 17. 11:47

 

 


3.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

성령이 임하셔서

나를 데리고 가신다.

성령님이 모든 환란과 기이한 일을 넘어서는

객관적 입장에서 볼 기회를 제공하신다.

하나님은 '사도요한'의 관점에서

나를 보게 하신다.

성령님은 나를 ,우리 말씀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들에게

그러한 '개인적 인도하심'을 보게 하신다.

 

 세상의 환란에서 관조하는 모습에서 위치하게 한다.

그것..

모든 우주의 벌어지는 일들은

하나님의 손바닥이란 이야기시다.

 

   

18.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 광야'

종말시대의 '이 땅'

음녀와 용과 두뿔달린 짐승.. 의 무법천지.

그들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그득하다.

그들이 승기를 잡은 듯,

끝가는 줄 모르고 행패를 부리는 곳.. .

그것이 이 세상이다.

 '이 땅' 이다.

'이땅의 큰 성'이다.

 

광야.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는

특별히 한걸음 떨어져 관조할 수 있는 자들에게는

정해진 결과 , 승리하는 싸움에서

우리의 모난 곳을 다지는

잠시의 고난의 장소일 뿐이다.

연단을 받아 정금처럼 나올

때 벗기는 장소일 뿐이다.

 

 

광야.

이땅의 삶.

그 광막하고 괴로움..

그 속에서 매몰되어

그것들의 횡포에 정신이 빼앗겨 버리면

이 삶은 공포와 고통과 고난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이루실 계획 속의 하나일 뿐임을 깨닫는 다면

결국 '이겨버리고 말' 하나님의 시나리오 속에 움직이는

'찻잔속의 태풍'일 뿐이다.

고난과 고통이 온 인생을 암울하게 만들고 정신을 피폐하기 만들기 보다는

마음을 가볍게 만들고 관조하게 만든다.

깨달음은 우리의 몫이다.

말씀 가운데 인도하시는 매일의 레마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자들에게는

성령께서 그 삶을 인도하셔서 가볍게 만드신다.

어려움이 어려움보다는

시간지나면 깨끗이 되어버릴 '시험'이 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원리릉 알아도 '각론'속에 들어감이다.

삶의 매일 속에서 부딛치게 될 여러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 원리를 이루어 갈까?

 

토요일 .

TV를 켜보니 '무한 도전'에 '뉴욕에 간 노HC을 맞이 하러온 싸이" 가 나온다.

부럽다.

헬리콥터 타고 나온다.

가만히 지금부터 저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한다해도...........

불가능하다.. ..하늘이 낸 경우의 수에 올라탄 사람이다. ..

좌절이다. ..

그 사람의 입장에서 올라보았다.

한없이 좋을 것만 같지는 않았다.

좋은 차도 3개월

좋은 아파트나 집도 일년 이상을 못가고

좋은 아내도 3년 이상을 유지 못한다는 말처럼

저런 환경도 수년을 유지 못하게 하는 게

세상의 것, 땅의 성의 것들이 아닐까?

그러한 황홀함은 이제 더 이상 무엇으로 누릴 까?

아마도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마약에 빠진 이유가

미리 짐작이 간다.

가지게 되는 것들로 인하여

이제 '음녀'의 연단이 시작이 되면

그 가진 것들로 인하여 더욱 하나님의 원리..

성령의 인도하심을 타고

바람처럼 '광야'에서 관조의 시선으로

세상의 음녀들을 바라볼 수는 없을 것 만 같았다.

설령 알아도 , 그들이 '666'을 제시하면

그 성공의 흔적을 놓치기 싫어서라도

많은 고민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음녀의 유혹,

광야의 혼란 속에서

성령의 데리고 인도하시는

관조적 가벼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소유를 내려놓음'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랬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난 많은 부분 내려 놓았다.

일단, 하나님께서 내가 소유로 삼을 듯한

'자식'들의 번듯한 성공을 내려놓게 하시고

'관계'의 부요함의 성공을 내려놓게 하시고 ㅜ.ㅜ;;

소유의 욕심도 내려 놓게 하셧다.

그랫다.

나.. 지금도 '차' 사려면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안들어 14년 째 카니발 타고 있다.

걸어다니는 게 더 좋다.

사진을 찍지만 가장 싼 카메라를 소유케 하셨고

스마트 폰도 .. 한참 유행지나서 갤노트..로 구입했다.

의도적은 아니었다.

욕심이 적어지며 날 구속하는 게 덜 해지는 가벼움이 좋았다.

성령은 '가벼운 나'를 '광야'로 데리고 가기 쉬우셨을 것이다.

 

 

오늘 레마는

'성령'께서 '광야'에서 볼

음녀의 장난을 구경하기 위하여

오늘 내가 취해야 할

'가벼움을 위한 태도' 가 아닌가 싶다.

무엇일까?

어떤게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비교'하게 만들 상황이 나에게 다가올까?

그럴 때 오늘 묵상을 연상하면 되리라.

 

아침에 '둘째'가 많은 이야기를 차에서 늘어 놓았다 .

어제 '아.. .이제 기도의 기쁨을 알겠어요.. '하며

교회에서 청년부 예배를 마치고 들어오며

발하는 아들의 탄성이

가슴에 기쁘게 박혔던 바다.

 

그렇다.

성령이 가볍게 드시는 하루의 시작이

큰 것에 있지 않았다.

아들의 '비교적 잘자라가는 신앙' 안에서의 세상관이다.

감사햇다.

 

주님..

오늘 묵상이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바쁜 월요일의 잠시의 틈을 타고도

또 이리 말씀을 주십니다.

성령이 인도하실 것을 간구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그 성령께서 세상에 날 데리고 운행하시며

지혜와 가벼운 관조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게하실

그 성장된 중심 잡힘을 기대합니다.

주여.

오늘 하루 어떤 일로 절 비교하게 만들

사단의 궤계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미리 주님께서 허락하신 말씀의 레마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자꾸만 말씀 가운데 나를 낮추고

주님 성령이 임하시어 허락하실

놀라운 평강을 기대하여 봅니다 .

감사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아무 것도 이치적으로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오늘 하루의 시간에서

가슴에 소록소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망이 솟고 희망이 생김은

이것이 진정한 축복임을

다시한번 깨달아 갑니다.

누가 있어.. 이 귀한 축복을 진정으로 축복으로 받겠나이가?

오직 주님의 사랑,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주하인이 될것이기에 가능한 일인지 압니다.

부디 제 깨달음 더욱 강하게 하시고

저처럼 제 아들들도 강하게 주님의 성령으로 이끄시사

이 광야의 횡폭함을

날아 다니게 하시어

가볍고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되게 하소서.

비교를 내려 놓게 하소서.

욕심을 버리게 하소서.

성령으로 인하여 허락되신

스스로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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