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싸우는 정욕(벧전 2:11-25) 본문
(벧전 2:11-25)
11.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영혼을 거스르다.'
맘에 들지 않다.
내 생각과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자들, 상황.
'싸우다'
싸우는 것 좋지 않다.
' 육체의 정욕'
싸우는 정욕.
싸우는 것은 정욕이다.
정욕이라 함은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본능적인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 원죄가 끼어들어 갔기에
우리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욕구를 견디지 못하여 타락된 성질을 말한다.
싸우는 육체의 정욕.
자기도 모르는 격분은 '정욕'이다.
내려 놓아야 할 정욕.
정욕이 없어지지 야 않겠지만
과한 분노는 자신의 육체적 성질 탓이다.
내려 놓아야 한다.
내려 놓을 수 있다.
주님을 의지하면 그럴 수 있다.
'권한다'하셨다.
싸움하면 절대로 안된다... 가 아니다.
화나 분노가 나올 때는
영혼을 거스리는 어떤 이유가 있음을 깨닫고
그 거스리는 것을 주님 앞에 자꾸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에 '죄책감'은 가지지 않되
'행동'은 회개해야 한다.
어제 목사님이 그러셨다.
'죄책감'은 어떤 이유이든 '사단'이 주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양심으로
자신을 절제함은 필요하되
양심을 가장한 과한 '죄책감'은 자신의 영혼을 갉아 먹는 다.
그렇다고 '양심'을 마비시키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음은
도덕적 타락의 위험성이 있다.
성품이 온유한 자들은 이런 고민이 필요없겠지만
소위 급한 성격을 가진
나' 같은 자들에게는 ^^;
중요한 문제다.
분노가 생기려면 '영혼을 거스르는 ' 어떤 내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임을
인정하고 깨닫고 조심해야 하며
싸우려는 정욕을 그대로 받아 표출함은
'죄'이기에 자제해야 함은 당연하되,
어쩔 수 없이 저지러진 싸움은
죄책감으로 자신을 쳐서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란
단절된 생각으로 자신을 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다.
'권하되'..라는 말씀은
할 수 잇으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있을 수 밖에 없을 수도 있으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이야기기도 한 것 같다.
그러기에 그때는 ' 행동'을 회개해야 한다.
행동을 깊이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육체의 정욕을 자극하는
거스르는 존재.. 에 대하여 하나님께 내려 놓아야 한다.
주님 십자가 보혈 만이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는 자신은 '불쌍히 여겨주실 것'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자꾸만 되풀이되는 싸움'에서 점차로 멀어진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수영장에 갔다.
자유 수영만 한다.
레인에 마크가 붙어 있다.
'초급'.. ' 고급'.
자연스레이 '고급'으로 갔다.
오랜 수영시간 덕에 '매일 같이 ' 하루에 30~40바퀴씩
쉬지 않고 자유수영과 접영까지 연결해서 하고 오다 보니
같이 수영하는 분들이 하나둘 자리를 피해준다.
그러기에 상급, 중급 레인으로 가면 그들에게 피해를 많이 준다.
어제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각레인에 한 두명씩 있었다.
수영을 시작하려는 찰나,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날 강하게 치고 나간다.
한사람은 사과하고 가서 다시 수영하려는 데
또 한사람이 뒤쪽으로 부터 급히 나오며 강하게 치고 간다.
일어나 보니, 두번째 사람이 다짜고짜
' 여기 고급이란 글짜가 보이지 않아요.
저쪽으로 가세요.........'
그러더니 수영을 하면서 가버린다.
어이가 없다.
......
뒤 따라가서 '무슨 뜻인가'를 물어보니
더 이상 그냥 똑같은 소리로 '강압'적인 되풀이를 한다.
'화' 가 오른다.
' 이 사람이 나를 초급으로 아는가?'
- 설령 그리 알아도 그게 무슨 차이일 겐가?
이게 날 스스로 당혹시킨다.
'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해도 '사과 먼저 하는 게 예의지..'
- 가만히 보니 술먹고 수영을 한다 '
' 뭐하는 사람야?
- 시흥 ,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곳에서
수영을 조금 하는 것으로 잘난체 하는 것 보니 꼴갑이다
......
목소리를 높였다.
내 속을 누비는 '-표시'의 생각들........
내 영혼을 거스르는 생각들.........
거기에 나중에 다가오는 - 믿는 자로서... 라는 생각은
'나'를 더욱 위축되게 한다.
아침.
주님은 날 아시고
다시 한번 정확히도 말씀하신다.
' 무엇인가 네 영혼을 거스렸지?
그래서 졌지?
그래도 난 널 안다.
'싸우는 정욕'을 제어하길 권한다'
정욕이란 단어가 어려운 일이고 끈적거린 것임을 알지?
그리 크게 좌절하지 말거라.
네 행동은 회개하고 자제 하되
네 자신은 인정하고 받아 들이라.
정욕을 자극하는 존재들을 물리쳐라.
내가 도우마.
말씀을 붙들고 더욱 기도하라. ' 라시는 것 같다.
적용
1. 회개하자.
. 싸우고 싶어하게 하는 거스림을 인식하고도
화낸 행동과 사실을 회개하라.
깊이 깊이.. 십자가에 가져가라.
2. 나를 받아 들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날 사랑하신다.
회개하면 더욱 사랑하신다.
내가 날 사랑할 수 있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자.
3. 영혼을 거스리는 정체를 깨닫자.
주님 앞에 내려 놓자.
기도하고 간구하자.
오랜 싸움임을 아시는 것이다.
4. 감사하자.
주님은 '주하인아........네가 '종'으로 자처하면서'.. 어찌... !!' 라고 혼내지 않으신다.
말씀에서 '권하신다 ' 라 하신다.
주님은 날 이처럼 보듬으신다.
죄송하고도 감사하다.
그 사랑의 인내에 감사드린다.
5. 성경 세장 읽겟다.
하나님 말씀이 길이고 내 발의 등이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목숨이다.
생명이다.
기도
주여.
전.. 주님을 몰랐다면
세상에 존재할 가치도 없는 자로
누더기 같은 자존심을 가진
싸나운........자로 만
그저 하루하루 살다가 죽을 ....
그런자로 생각됩니다.
주여.
말씀이 있으시기에
싸우는 정욕에 졌지만
다시 한번 일어납니다.
주님의 선한 권하심과
하나님의 그 부드러우신 평강 속에서
다시금 힘을 내서 일어납니다.
제 힘없는 스러짐을 용서하시고
제 잘못했던 행동을 바로 잡으시고
영혼을 거스르는 정욕이 있을 때 붙드시고 깨닫게 하시사
되풀이되는 습관적 분노를 만들지 않도록 하소서.
주여.
약한 부분을 불쌍히 여기시사
건드르는 악한 존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태우시고 씻으시며
성령의 불로 없이하소서.
주님.
저를 스스로 인정하고 사랑하게 하시사
괜한 아픔 ,
이제 느끼지 않도록 하소서.
주님.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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