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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고전1:18-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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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고전1:18-31)

주하인 2008. 7. 3. 08:53

  제 1 장 ( Chapter 1:18-31 )

 

십자가라..

무겁기도 하지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움 뿐이고..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십자가의 그 무거움이야 말로

가벼움이다.

십자가의 그 답답함이야 말로

사진 속 꽃같은 화려함이다.

주님은 역설이다.

역설이지만

진리다.

그러기에

믿을 수 있는 자만

볼 수 있고

볼 수 있는 자 만이

알 수 있다.

 

주님은 공의시지만

주님은 사랑이시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


딱딱하고

현실에 괴리 되어 있는 듯하고

한마디로

십자가만을 쳐다본다는 것은

미련한 이야기인 것으로 보여

그 이론적인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십자가 만 바라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플랜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짜고

사람들을 모으고 네트워킹하고

모금하는 등

있는 최선의 것을 다하고

작정기도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기도 한다.

그러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옳을 수도 있다.

그들이 그들대로 수준에서

그렇게라도 하여

주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기회라도 되니까..........

 

 하지만

십자가의 도는

그런 것하고는 조금은 다른

뉘앙스로

오늘 묵상에서 다가온다.

 

 조금은

비장한 느낌의 '그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고

고리타분할 듯하게 느껴지는...

 

과연 십자가 만 가지고

격변하는 시대에 맞는가?

수많은 도전과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십자가가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럼에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미련해 보이지만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시다...라고.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유대인이 어떠한 사람들인가?

율법적인 성향을 가진 자들..

 그들은 표적을 구한다.

표적은 '기적'과 '이적' 을 위한 전조증상.

그것 만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그게 없으면 안믿는 다는 불신의 반증이니...

 

 헬라인...

사변적이고 예술적인 성향.

그들은 '지혜'가 최고라 생각한다.

이땅의 합리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외는

믿지 않으려는..  

 쉽게 말하면

그럴 듯한 합리적인

현대인의 모습.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에 타당치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는

지상에 눈이 고정된 자들.

 

그들이 옳은 것 같지만

공기가 보이지 않음에도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그 광대 무변하심을

어찌 물질계의 눈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면서도

오래 살아도 100년을 넘어서지 못하는

유한한 먼지의 형상이

온 우주를 만드신 그 분이

눈에 뵈지 않는다고 믿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발상이 아니던가?

 

가장 유식한 듯 보이는 자가

가장 미련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헬라인인가

유대인인가

잘 아는 것이야 말로

지혜의 출발점이다.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그들은

당연히 꺼린다.

고리타분하고

죽은 지식..이라 생각하지.

 

하지만

미련한 그것

십자가를 믿는

미련한 듯한 자를

달갑게 여기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지니게 되는 자들은

주님의 자녀들이다.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게 신비다.

아무리 믿으려 해도

본인의 생각으로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강골 불신자였다.

먼저 영접한 아내를

깊이 박해했다.ㅎ

 그 아내의

3년 베게송사에 끌려나간

교회에서

난 회심(回心)하게 되어 버렸었었다.  ^^*

 

 180도가 돌아버리는 것은

어찌 설명할 수 있는가?

주님의 강권적인 catch !

그것 이외에는..

난,

내가 주님을 믿게 된 것이

기적이다.

 

   
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

그게 내 마음인가?

단 일분이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다 생각되면

견디지 못하고

조금의 손가락질이라도

부르르 떨게 되는 것이

어리석은 내 마음이지...

그건

내 가진 것..

나.. 라는 개념이 너무도 강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돌아보면

난 내가 중심이 되고

내가 자랑이 될 때

내 육신의 힘이 충만한 때는

온통

실패와

충돌과 갈등 뿐이었었다.

 

 주님을 영접하고

수년 간을

내 자아와

환경 사이에서

주님의 허락된 연단기간을 거쳐서

이제

조용히

내 자아가

주님의 말씀 앞에서 누그러지기 시작해서야

내 영혼과

내 주위가

평온으로 잦아들기 시작한다.

 

 난 이제 고백할 수 있다.

 

" 주님 만이 진리시다.

 주님 만이 능력이시다.

 주님 만이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라고

영혼 깊숙이 고백할 수 있다.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내 자랑은

오직 주님 밖에 없다.

 

 실제다.

현실의 나.

아주 적은 성취지만

나를 부인하고 얻은

몇가지 성과물 들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내가 했다'라고 자랑하는 순간

모조리 허공에 흩어지고 말 것 이란

위기 의식이 있다.

모두

주님을 의지하고

그 분만을 정신없이 매달리고

그 분이 주신

영적 평온함 가운데서

하나하나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분이

날 이렇게 연단하신 이유를

이제는 안다.

 

 내가 나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은

누구라 할 것없이  

파멸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오직

주님,

그 분 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 만이

유일한 안전의 길일 뿐이다.

 

 그리 살고 싶다.

내 모든

삶의 중심이

주님이 되길 원한다.

내 성공의 모든 기쁨이

주님이 원인이었음을 자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 깨어 있고

진실 만을 눈을 뜨고 보길 원한다.

 

 십자가는

능력이시다.

오직 그 분 만을 바라보고

매일

주님을 쳐다보고 말씀을 듣고

살아가고

수정하는 것이

내 죽을 때까지의

삶의 행태이길 원한다.

 

주님은

그리하여도 충분한

기쁨의 원천이시니까....

기도

 

1.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생각한다.

 

2. 십자가 만을 바라본다.

 

3. 성경 6장 읽겠다.

 

4.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심을 믿는다.

 

5.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백번 읽겠다.

 

기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만을

주님 십자가 만을 의식하고

살 수 있길 소원합니다

힘을 주소서.

자랑의원천이신

십자가 예수님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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