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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주님은 아신다 (고전 2:1-16)

주하인 2008. 7. 4. 08:32

제 2 장 ( Chapter 2, 1 Corinthians )

  이 벌처럼

난 살았었다.

그러나,

가끔은

내 마음대로

분주했었다.

주님의 꿀을 찾았지만

가끔

엉터리같은 당분에

눈돌릴 때도 있었던 것만 같다.

 

아..................................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어제 백번 읽도록 시키신

주님의 묵상의 적용이

이해가 간다.

이제야......

 

 한동안 잠잠하고

옳게 선택하고

내 행사를 잘 유지하다가

콱~꼬꾸라 졌다.

아내에게

왁......하고

그래도 다행스럽게

자르고 나왔다.

그리고는

아침..

점심 시간 되어서

윗분이 전화가 오셨다.

오늘 모임에 오라신다.

 수요전인치유 모임을 위한 회식.

 

 목요전인치유.

그 시간 난 정말 힘들었다.

그렇지만

홀린듯이 2년 가까이

다양한 감정을 맛보면서

좋기도

힘들기도

짜증이 나기도

주님 앞에서 치유받는 느낌도

남을 손가락질 하다가도

나를 낮추는 원리를 깨닫기도

뒤에 손가락질 하는 자들의

입다물게 하시는 주님의 원리도..

기적도

찬양을 통해 불신자의 회심도

.....

별스러운 시간이

밀리듯 밀리듯

떠밀려 왔었다.

반은 정말 하기 싫고 비참하고

반은 정말 좋아하는 일 ,

진짜로 좋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수요체제로 바뀌면서

난 습관처럼 되어버렸던

전인치유를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

한편 홀가분하고

한편 수용하기 버거운 묘한 느낌.

 하지만, 주님안에서

내려놓고 받아 들이게 되었지만

다시

나에게 짐처럼 다가오는 듯

새로운 수요전인치유는

내 의지와는 별개로

자꾸만 부담으로 오게 된다.

 그래,

주님이 원하시면.. 이라는 생각으로

그전에도 그랬듯이

자연스레이 참여하길 원하는 데

리더 분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으신가 부다.

편치 않는 전화였다.

 더구나, 수술이 두분이나 있는데...... 

몸도 마음도

탈진 되려하는 데...

마음에 부담이 되는 전화를 받고 나니

약간의 시간이 남아

무거운 마음이나마 잡아 보려했던

묵상이 뒤로 뒤로 미루어진다.

 

 어찌 되었던 간에

수술이 늦어졌다.

여덟시나 되어서 내려와서

결국은 주님께서

날 위로하시는가?

그냥 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제 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날 붙들려는

오래된 악습들이 날 몰아치려 한다.

 

' 네가..

 너 때문에..

 이렇게 해서....

 이러면.....

 이런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분명히 그렇기는 하다.

아주 오래된 역기능의 소리들이

'introjection ' 되어

그게 녹음기 틀듯이 그리된다고는 한다.

아버지, 어머니,의미있는 타인..

 

정말

이 언어는 중요하다.

그들이 죽어도

내 속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死語들..

 

 오늘 묵상

거의 힘없이 쳐다보았지만

'사람의 속'을 '사람의 영 '밖에 누가 알랴고 하신다.

그렇다.

저런 사어들이

다 '영'의 영역들이 아니겠는가?

난  오랫동안

생각을 많이 했었고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심리학과 의학

그리고

몇학기 아니지만

통신 신학을 조금 하다 말았다.

그리고는 아내의 신학교 논문을

' 귀신들림'에 대하여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여 써줬던 적도 있었다.

 

분명코

정론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저러한 사어들,

말의 위력

저주 ... 들은

영적 영역이라 확신한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는

분명히

구약시대의 제단의 모형인 성전처럼 이루어져 있다.

뜰은  '육신'의 모형이다.

성소는 '마음' 즉, 혼의 모형이다.

지성소는 '영'의 모형이다.

 

 원죄 이후 우리의 지성소에 '사단'이 상처를 입혔다.

이러한 영역은

대를 두고

부모나 형제 , 스승, 친구 등의 의미있는 타인의

입을 통하여

육체적 체벌을 통하여

사단의 손톱이 쉽게 할퀴고 지나가게 되어있다.

 

예수님의 영접으로

성령이 우리 성소에 받아 들이지 않는

모든 불신 영혼을 소유한 육신들은

반드시 그러기에 사단의 손길을 벗어날 수가 없다.

예수님 보혈로

우리의 원죄로 인한 이전의 자범죄가 해결이 되고

이전의 것은 기억되지 않은 후

성령,

그 분 보혜사 께서

우리 영에 들어오신 후부터

우리 기독교인이라 부르는

선택받고

구원받은 절대 축복의 영혼들은

영속에서

이제

영적 전쟁의 소용돌이의 중심 사령부가 되게 된것이다.

 매일같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성령'의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선택하여

그 분의 뜻대로 인도하심 받아야 하는,...

그러나,

그게 맘대로 되는가?

사단도

광명의 천사처럼 

우는 사자처럼

완전 회복 되지 않은 영혼의 틈을

자꾸만 건드리면 유혹을 한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 가에 따라

그 날은

주님의 것인가

사단의 놀잇감이 되는가가 결정이 된다.

사단의 그것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나면

마음 속의 '사어'들의 소리가 커지고

그것은

'신' , '불신'자를 떠나서

최소한 이땅의 삶이

처량해진다.

부정적여지고

힘들어지고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현대의 정신없이 돌아가는 속도는

주님을 선택한다는 사실 자체를 우습게 만들기에

'우울증'이 그리도 많아지는 현상을  가져오게도

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선한 선택에 도움을 주시는 분이

또 성령이시다.

그 분은 '모든 것을 아시되' ,  

'하나님의 뜻' 까지 '통달'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주의 궁극의 가장 중심에서

성령의 무궁무진한 능력의 연결을 통하여

그대로

주님께 우리의 매사를

놀라운 탄식으로 보고 계시고 안타까워 하고 계신다.

 

 매일 같이

주님의 말씀 앞에서

겸허하고

시간을 내서 그 분과만 앉아 있어야 한다 .

로렌조형제가

'주님의 임재연습'이란 책을 쓴 것을 보고

끄덕끄덕 인 적이 있다.

그 분은

수도원의 주방일 등을 하면서도

성인이 되신 분이시다.

그 분에게 비결을 묻는 사람에게

그 분은 단 일초라도

주님의 임재를 잃은 적이 없도록

몸부림 친 탓이라 하였다한다.

어찌 가능한가?

난,

큐티를 통해서

적용을 통해서

주님을 위한 배려의 시간을 통해서

가능하다 생각한다.

 

난 ,

어제 부터 오늘까지

졌다.

입으로 범죄를 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다.

아침에 눈을 겨우겨우 들어 쳐다본 묵상에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깊은 곳이라도 통달'하고 계신다는 말씀에

위로가 되었던 탓이다.

난,

위의 그런 '사어'들의 속삭임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연습을

얼마간 해왔다.

그냥

주님이 싸우소서.. 하고 맡긴다.

가만히......

판단도....

죄책감 들려는 마음도....

회개도.......

그냥.............

그리고는

이제 이 늦은 저녁에

아주 적게 남은 힘을 짜내

묵상의 글을 적는다.

 

아...........

안하려하다가

천사같은 분들의 답글을 보고

힘을 냈다.

 

하루 종일 날 사로잡았던 감정은

'외롭다'였었다.

그게

내 필생을 잡아오던

기본 感傷이었다 .

 

하지만 덜 외롭다.

주님이

다 아신다고 생각하니..

 

참.

주님은

내 깊은 잘못을 안타까워 하시지만

그 분을 단 한번 생각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난 후로는

조금은

매사가 덜 어렵다.

 

감사하다.

 

 

주님.

아시지요.

감사합니다.

용서하소서.

힘주소서.

이해하소서.

아내의 마음도

자식들도

내일의 아침 찬양인도도....

주님 모두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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