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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이유( 고전1:1-9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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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이유( 고전1:1-9 )

주하인 2008. 7. 1. 10:15

제 1 장 ( Chapter 1, 1 Corinthians )

 

 어디에 있어도

주님을 의식하면

거기가 천국인 것을..

 

 가끔 눈돌리면

보이는 것은

더러운 수채 구멍 같은

세상입니다.

 

 난

그래도

주님을 위해

아름다운 꽃

성결한 흰꽃을

주님 앞에

피워 올리고 싶습니다.

 

주여..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바울은 사도다.

열 두 사도에 포함되지 못했어도

그는 사도임을 확실히 안다.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임명을 받았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공포하고

사도직을 최선을 다해 함으로

이 시간

내가

기독교인의 행운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는 '사도'가 틀림없다.

그리고 그는

'사도'임을 확실히 안다.

 

 나는

'하나님의 기쁨을 전하는 자'로서 서고 싶다.

그러나,

아직

바울처럼

전신을 다 바친

그런 자라고는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내 속이...............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 에서

거룩하여 진 자라 나온다.

 

 어떤 분이

결혼은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거룩이 목적이라고 한 얘기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성도는 '거룩'이 목적이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와 평강이 목적이 아니다.

자칫 예수님 믿고 오는

놀라운 은혜와

그에 따른 평강이 너무나 좋아서

거기에 머무르는 것으로

믿음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오인하는 때가 있다.

특별히 주하인 !

 하지만  성도는 '거룩'이 목적이다.

'성화'가 우리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환경은

그 것을 이루는 도구일 뿐이고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업적은

주님의 말씀에 노력한 흔적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을 이루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쉽지 않기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도우미로 주어질 뿐이다.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러한 도구를 받은 우리가

그러함에도

성화를 위한

거룩을 위한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은

위에 말한 바 처럼

은혜와 평강을 주신 주님의 뜻을

아이처럼 그것 만을 열매로 즐기려는 성향,

둘째로는

거룩이 목적임을 알지 못하는  무지

 셋째로는

알면서도 부정적 성향으로 하지 못하는 이유등이 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목표가 거룩이길 바라시며

그러하기 위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살기를 제시하시는 것이다.

그것도 감사함으로..

 

그 것이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고난의 연속인 인생을 살면서도

거룩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어제 묵상의 적용을 시행하느라

늦은 운동 후 올라간 기도원에서

자고 나서 5시에 일어났다.

 내려와서  부지런히 세면을 하고

옷을 갈아 입고

병원에 오니 시간이 넉넉하다.

피곤치도 않다.

그냥 편안하다.

늘 부끄러움이 많아

마이크를 잡으면 얼굴이 벌게지고

말이 데데해지는 난,

새벽 예배가 끝나기 전에

샘누리 홀에 들어가 앉아

주님 앞에 제가 있습니다.. 라 묵상기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기타를 둘러메고

일곱 시 부터 시작되는 2부 예배를 위하여

찬양을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현재의 내 모습은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르다.

미친 사람 같다.

내 나이에

이 시간에

이익도 없이

잘난 체하고 픈 마음도 안들면서

찬양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새벽을 다툴정도로

너무 좋아하여서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명하여 불러서 세우신 것도 아니고

두려워서 서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일까?

 

난,

내가 누구인지 알기 시작했다.

피상적인 게 아니고

하나님에게 맞추어서

난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확고 부동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 속에서 이그러진 관계 속에서 형성된

잘못된 '정체성'이 아니고

이제 중년의 나이에 영접하게된

진리이신 그 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 후반기의 정체감을 인지하고

정립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 안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조금씩

아주 아주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말씀 안에서 바로서려는 노력은

내 실제의 노력이

올바른 것이 든 아니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기에

그 분으로 부터 내려오는

놀라운 은혜를 느낄 수 있게 되고

그 은혜는

내 내적인 평강을 유발하고

'정말 말씀은 이리도 살아 있구나'라는

놀라운 체험을

거의 매일 같이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것은 다시 말씀에 침잠하게 되는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으며

그러한 동력은

내 영혼의 그림판인 마음에

기쁨으로 표시가 되게 한다.

그 기쁨은

찬양을 할 때 놀랍게 표시가 되고

글을 통하여 휘발 되기도 하며

가끔은 시야를 쏘아들어오는 듯

그 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여

사진을 찍게 만드는 현상을 가져오게도 한다.

 

 그렇다.

난 그래서

아침에

마치

미친 듯이 찬양을 한다.

예전의 판단 기준에 의하면

미친듯이...

 

 이것이 집중되고 더 개발되면

사도 바울 같이

나로서의 내 정체를

다시 한번 세상에 선언할 날이

올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바라기는

그러한 정체가

부디 이제는

단지 내 감정적 안정을 다치지 않는 선을 넘어서

내 아들

내 아내

내 부모

내 이웃

그것을 넘어서는

온 인류애적인 사랑을 감싸는

그 어떤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슬슬 올라온다.

 단지 바램 뿐이긴 하지만...

 

 

 

 

 적용

1. 거룩이 내 인생의 목표다.

 거룩은 답답함이 아니다.

 주님의 뜻에 의한 거룩은 은혜의 기회일 뿐이다.

 

2. 말을 줄이겠다.

 

3. 오후의 수술을 남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4. 주님의 은혜를 사모한다.

 주여. 

 여러가지 필요한 기도 제목 아시지요?

 

5. 감사한다.

 

6. 남을 위하여 좋은 일 한가지 하겠다.

 

7. 성경 여섯 장 읽겠다.

 

 

 

 

 

 

기도

 

주여..

간절히 바라옵기는

이리 큰 기대도 좋지만

실은

기대 후의 주님의 연단 과정에 있을

고난 중에

좌절할까봐

실은 조금은 두렵기도 합니다.

그것 마져

주님이 알아서 하소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의 분량이 아직 나에게 남아 있다면

그것 마져

기쁨으로 감당할 영적 풍부함을 주소서.

거룩하게 하여 주소서.

입을 닫게 하시고

눈꺼풀을 조금 더 아래로 낮추게 하시고

얼굴의 표정을 좀더 온화히 하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강대함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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