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직 점점 더[시80:1-19] 본문
오직
매일
점점 더
주님 임재하심을 사모함이
제 모든 목적이 되게 하소서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만군의 하나님이여'
19.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하신다.
크레센도 ~
주석 설교 하시는 목사님의 강해를 듣고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것이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자의 '탄성'임을.. .
3구절 모두
'우리를 돌이키시고' '회복하여 주시고' '돌이켜주시고' .. 라는 기도와 더불어
'주의 얼굴 빛을 비추사 '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얼굴의 광채를 비추소서'....라며
'구원을 얻게 하소서' '구원을 얻게 하소서.' 하다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로 바뀐다.
주님을 점점 더 깊이 만나는 자의
자신도 모르는 깊은 탄성의 소리다.
감동.
자신도 모르는 하나님 은혜에 취한 자의 탄성...
그리고 그 기도의 내용의 흐름이 비슷하면서도
점차로 깊어지는 게 느껴진다.
우리를 돌이키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돌이켜 주시란다.
'회개'와 돌이킴 마져 '의탁하고 간구한다'
먼저 회개를 간구한다.
회개 시켜 주시길 간구한다
오직 주님께 의탁하고 의지하는 자의 기도다.
심지어는 회개하여 주게 하시라신다.
회개가 기도의 기본임을 너무나 잘아는 분이시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의 얼굴의 빛이 비춰지게 되는 기도를 간구한다.
회개후 맑아지는 영혼으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
하나님의 빛을 마주함으로
그의 고백은 점차 힘이 있어진다.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하나님'
누가 시켜서도 아니다.
하나님의 얼굴의 빛을 마주하는 자. ...
그래서 '구원의 기쁨'이 어떠한지를 아는 자다.
구원 받은게 그냥 영접되어진
첫 사랑의 상태에서 끝나는게 아님을
이분 시편기자의 고백으로 알 수 있다.
구원은 온전하게 주님의 얼굴의 빛을 마주함으로
영혼이 주님으로 채워지는 상태.......
죄는 멀리되고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채워진 상태..........
그 분의 사랑 안에서 하나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오늘
시편 기자의 말씀을 통해
그림 그려지듯 보여주신다.
그런데....
그렇다면
과연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시편 기자의 말씀이 이해가 간다.
공감이 되고
수천년을 내려오면서도 동일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비슷히 표현하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불신의 논리로 , 공격을 받아도
지금도 내 안에 동일한 기쁨이 흐름을 느낌은
주님의 살아계심의 증거임을
다시금 확인되게 해서 감사하다.
그런데........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로서
아직도
여전히
변함없는 '죄송함'이 내 안에 남아 있고
번연히 남아 있는 오류는 여전함은
웬일인가?
분명코 주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할 만큼
많은 체험과 공감을 누림에도
왜인가?
왜 분명 하나님의 얼굴의 빛을 보는 사실을 깨닫고 있으며
구원이 어떤 것인지
점점 깊은 감탄의 언어를 발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내 안의 문제는 여전한가.
왜 아직도 미움은 남아 있으며
왜 아직도 걱정은 걱정으로 날 흔들려 꿈틀대며
왜 ..........
왜...........일까............?
말씀을 묵상하며
약하게 나마 깨달아지는 바가 있다.
어쩌면 난..
지금까지는
내 걸어온 길의 어떠하심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허락하심에 의하여
주님의 임재하심의 기쁨을 누림으로
많은 회복이 있었으나
그 방향이 조금 이제 바뀌어야 함을 말이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여왔으나
이젠
그 문제들을
주님께 더 아뢰고
주님이 해결해주시길 그냥 내려놓고
기다리는 것...................
주님을 도구로 (죄송^^;;) 여기까지 옴은 허락되었지만
이제 주님께 그냥 아뢰고 주님이 해결하시길 기대하고 내려 놓는 것.................
그냥 기도와 주님 얼굴 빛을 마주하게 되는것이
모든 목적이 되는 나..............말이다.
잘 표현을 못하겠다.
더 깊이 기도해보아야 겠다.
주님.
주님을 더 깊이 만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나도 모르게 깊이 roaring하듯, 탄식하듯 기도해져가는
시편 기자의 그 모습처럼 되길 원합니다.
주님.
내 감정의 안정을 위하여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다가
편해지면 또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다가
또 불편해지면 또.............................
그 다람쥐 쳇바퀴 돌듯
내 아픔을 소경지팡이 처럼 이용하는 것도
주님은 그냥 인내하고 받아 주시며
주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포용하셔서
오늘 시편 기자님의 고백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지경까지는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
어찌 정확히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제 회개 마져 회개 시켜주소서.
온전히 회개케 하고 돌이키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의 얼굴 빛을
온전히 바라보게 하소서.
그런 믿음의 깊이를 허락하소서.
그래서
더 온전한 구원에 다다르게 하소서
주여.
제게 힘을 주소서.
주님을 이용하여
제 감정의 편안함을 유지하려 하고
따라서 덜흔들릴 때는 덜 기도하는 그 미련한 미천함을 회개케 하소서.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의 얼굴 빛을 뵘을 놓치 않는
그것이 목적이 되게 하소서.
그 기쁨이 너무 좋아
더 기도하게 하소서.
주의 기쁨을 놓치 않게 되기 위하여
매사 회개케 하소서.
점점 더 그러게 하소서.
주여.
주님의 날이 가까와지니 그러게 하소서.
지금껏 이 부족한 자...
부족했던 믿음의 방향을 참아주시고
지금까지 보듬어 주셔서 인도하시는
주님의 뜻이
한단계 더 발전한 구원의 믿음
온전한 믿음을 위한 자 되기를 기대하심을
제가 믿게 하소서.
주여.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오전 금식과 절식을 시작하게 된지 3일 째입니다.
며칠 괜찮았던 것이
오늘은 많이 시장을 느끼게 되려 합니다.
자꾸만 손이 유튜브, ... 쪽으로 갑니다.
마음이 분산되려는 지
흔들 흔들 합니다
주여.
안정함이 흔들리려 합니다.
주여.
오늘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
점점 더 깊어지는 믿음의 신앙을 묵상케 하십니다.
주여.
제게도 그리하게 하소서.
완벽히 이해는 가지 않지만
주님 기도로 바라보려 하오니
얼굴의 빛을 비추시사
온전한 구원에 한발 더 다가가는 계기의 하루가 되게 하소서.
말씀 있으시니 그리 되게 하소서.
회개 마져 주님이 돌이키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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