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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의 답[룻1:1-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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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의 답[룻1:1-14]

주하인 2022. 5. 1. 10:49

(펌)

붙좇다.

cling으로 구글에서 검색한 사진 ㅎ

웃지 않고 절절히 매달리는게

룻의 붙좇음일 거 같은데.ㅎ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사사들이 치리할 때'다.
가장인 '아버지 아비멜렉'이 주인공였다.
하나님 믿는 자들이지만 사사시대의 정리되지 않은 시기.
믿음이 깊지 않은 시기.
대다수의 가정이 그렇듯 '남자 , 남편' 아비멜렉이 이야기의 중심처럼 보이고
그가 '믿음'을 절절히 유지하기 위하여 인내하기 보다
'모압'인 '세상'의 삶을 열심히 살았다.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리고 열심히 살았지만 '남편의 시대', '가장의 시대'는 끝났고
아들의 시대가 되었다.

괜히 가슴이 뜨거워지려며 눈물이 나오려 한다.
느껴지는 게 있다.
우리 시대는 많은 것을 겪었다.
격변.
고성장 시대와 처절한 경제 발전의 시기를 겪었고
나 개인적으로 '예수님 구원'의 대 역사를 1997년,
그 격동의 시기에 겪어 냈다.
그리고 뜨거운 초창기의 믿음을 체험하며
아주 아주 많은 영적 현실적 변화를 겪어 내었다.
산부인과 의원의 원장을 내려놓고 종합병원의 과장..
그리고 그리고 .. 지금.
또 ... 그리고 그리고 많은 시간...
지금.
심한 고난과 피난...
영적 모압, '고센지방'으로 표현되는 지금 PT시로 이동...
'나'... 자아로 대표되는 남편, 가장의 자리가 내려놓아지며
자아가 죽고 '하나님'이 내 안에서 중심이 되어가는... 영적 변화.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거기에 내 개인 뿐인가?
시대의 조류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완전히 대치되면서 오는
세대의 가뭄 같은 변화.
아날로그에서 디지탈 시대로 변화되기 위한
타는 듯한 고통.......
그 간격으로 상징되어 보일 수 있는
두 아들들이 '가장'의 책임을 지기 위한 시간들....

그리고는 드디어 코로나로 인한 겪어보지 못했던 시간으로의 이동.
그 완전한 대 격변의 시간을 통해
'두 며느리'와 '나오미'가
'중심'으로 어쩔 수없이 올라오게 되는
이 변화.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정말 지금 우리 시대를
완전히 그대로 투영하여 보여주는 것 같다 .

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시대의 선택'에
어떤 것이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한 질문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가슴이 뜨거운 것 같다.
나를 들여다 보여주시고
앞을 바라보라시면서
'정해진 답'
'오직 하나님'에 대한 것.......
그것을 말씀하시기에
그런 것 같다.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나오미가 드디어 시대의 가장, 중심 인물로 떠오른다.
이야기의 전개가 180도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다.
폭풍우, 어두움, 불안, 공포.......가 예상되어지는 .......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했다.
아..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하나님이 유다 땅에 곡식을 주셨다는 소문을 들은 것.
하나님 자체보다는
하나님의 주신 것,
그게 '기복'일 지라도
하나님은 우선 어떤 이유라도 하나님을 찾게 되는 사실을 귀히 여기신다.

거기에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선대' .. 즉 하나님이 선하게 대하실 것임을 믿는다.
아...
이게 가슴이 아프다.

엄청난 고난의 연속이
우리나라 고난의 역사를 보는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아픔을 보는 것 같다.
내 지내온 인생을 반추해보는 것 같다.
그러면서 그 아픔 가운데서도
그녀는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이 선히 대하실 것임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러한 고백을
두 며느리에게 '행'함으로 보인다 .

인생의 버거움,
이 미련한 인생들의 가장 큰 미련한 이유의 본질은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은 '사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표현에 다름아니고..
유한한 이 3차원의 인생들은
누구나 영혼 깊숙이 '사망'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하여
젊을 적 일에 , 유혹에 매몰되어 살지만
힘이 빠지고 현실적으로 가능치 않은 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홀로 되어 갈 때
외로움은 '영혼에 공허함, 공포, 두려움, 쓸쓸함. 연민 우울... ' 로 표출되기 시작하며
그를 느끼지 않기 위하여
다양한 행동을 취하게 된다.
우선.. 반항이다.
주변으로 힘들게 한다.
자신의 존재감 발휘를 위하여
세상적인 이룸, 물질, 관계의 확장, 권세.........를 향해 매진한다.
아.. 추악한 정치가들, 타락한 믿었던 자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우리는 순간 느낀다.
'나.. 두렵다......나.. .외롭다.. 나 알아달라.. '라고......
그래서 그들이 힘들다.
또 유혹으로 매진한다.
불륜,불법은 쾌감을 준다 .
쾌감 후의 공허함,두려움, 자책,......은 외로움에 더큰 힘듦을 배가한다 .
그러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끝간데 없이.. 그런다.
아니면 대체제인 도박, 마약..

또다른 유형의 외로움 도피는
자책이다.
깊은 우울...로의 도피.
그 힘듦이 얼마나 힘든지는
심지어 엘리야의 까마귀 사건까지.......알잖던가?

각설하고
나오미는
그 절망의 상태에서
과감히 두 며느리를 내려 놓았다
이것은
'하나님 믿음'도 있지만
그니의 영혼의 선택이 옳은 방향으로 서 있는 이유기도 하다.
' 항상 옳은 선택' ,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심성.
그러기 위하여 그 인생내내 얼마나 많은 옳은 연습을 해왔을 것이던가?

그렇다 .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선택하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방향으로 주변을 향해 마음을 넓혀가는 자............
옳은 인격.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었고
그 표본을 '나오미'를 통해 보여주시고 계시다.
우리 인생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이시며 말이다. ㅜ.ㅜ;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어디 이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이 있던가?
서로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선택'을 허락하는 장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고...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하나님 안에서 그 어떤 것도 '죄'가 아닐 수있음을 보여주시며
이제 새로운 ,
한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이 바야흐로 우리들 앞에 놓여
느끼지 않고 살려고
많은 두려움으로 꽁꽁 부여잡지만
반드시 마주 해야할 대격변
어쩌 면 그 안에 '하나님의 종말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을 지 모를 그 시대에
이제 '하나님과 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대 프로그램'에
주연이
바야흐로
우리가
내가 되어야할 시점에서
당연히도 해야할 선택은
'하나님을 인식한 결심, 결단'이라는 것이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진 것은
이제 이전과 같은 달콤한 위로, 눈에 보이는 물질의 이룸,.. 어릴 적 했던 동일한 행동은
반드시 내려 놓아야 하고
상상하지도 못한 세상이 다가올 것을 받아 들일 결심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룻을 보라.
나오미가 '룻'기를 통한
그들의 세상에 중심이 되어지는 장면이지만
'룻'.. 존재감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아내에서
바야흐로 '룻'으로 드러나는 시점이 되는 순간이다.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라고 나온다 .
아... 이 표현이 좋다.
아니.. 솔직히 가슴이 울렁일 만큼 좋다.

동사 보통 못마땅함 애착을 갖다얼른 NIV 찾아보니 Clung 이라 나온다.
'cling'의 과거형이란다.

cling 어휘등급
1.동사 꼭 붙잡다, 매달리다
2.동사 달라[들러]붙다

이렇게....

왜일까?
모압여인인 '룻'
유다여인 '나오미'
비록 시어미와 며느리라는 약한 고리로 연결이 되었지만
이방여인으로 하나님을 깊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며
어쩌면 선민의식으로 가득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박대를 받을 수도 있을
결정적으로 '남편죽은 미망여인'이....

이게 놀랍다.
아무 희망
아무 기대할 이익에 대한 기대나
아무 관계의 고리가 깊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나오미'에게 껌딱지처럼 'cling' 한 ...매달린채 ^^*
"붙좇아 나오는" 그니의 상태는
나오미의 인격에 반하였을 인간적 개연성 밖에 없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나올 내용상
단지 인간적 이유일시 형제.. 가족으로 돌아가는게 맞다.
그러함에도 그러한 선택은
오직 '하나님'
그의 계보를 통하여 '예수님'까지 이어지는
그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절절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게 되었다는 추정 이외의 다른게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

3차원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게......
이들.......이다.

아..
내내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나려한다.

그들이 불쌍하다는 차원이 아니다.
죄송하게도
난..
나이든 남자다.
풍상을 겪을 만큼 겪은 자다.
인생의 그러함은
내 태어나 커온 가정을 겪어가며 수십년을 늙어온 자로서는
가능치 않은 개념이다.
더구나.. 알고 듣고 읽고 배우고 되풀이 되풀이 묵상의 재료로 쓰여진
이 '룻'기........
단지 그 미망 두 여인의 인생 여정으로 눈물 짓기에는
내게는 별........타당치 않은 상황이다. ㅠ.ㅠ;

하나님께서
내게 보이심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내 영혼이 눈치 챈것이다.

상상하기 싫은 '가보지 않았던 시대'....에 대한 '소망'이며
돌아보기 싫은 '지내온 시대'에 대한 오히려의 '감사'다.
'은혜'다.
'레마'다.
주일에도 일어나
깨끗한 자세로 하나님을 뵈려는
내 태도에 대한 위로시다.
그게.......
정말 감사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일.
거룩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기뻐합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시대를 묵상하며
이상히도 '룻기'를 통하여
위로와 용기를 받습니다.
다시금 '하나님 만이 답'이심을 봅니다.
아..
제 시대는 가버렸고
더 이상의 기대와 욕심을 부릴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게 이제 자연스럽습니다.
주여.
뒤로 앉아 쳐다보는 자......의 개념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놓치 않고있으니
현실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난.. 버려진 자가 아니고
외로울 이유가 전혀 없으며
두려워하기 보다 잔잔한 기대로
시대를 바라보는 태도를 취해도 될 것 같은
안심이 듭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홀로 영광 받으소서.
거룩하신 내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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