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성령의 불 영혼의 향로(시16:36-50 ) 본문
제 16 장 ( Chapter 16, Numbers )
37.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을 명하여 붙는 불 가운데서 향로를 취하여다가 그 불을
타처에 쏟으라 그 향로는 거룩함이니라
거룩한 불을 담는 향로
늘 활활 타는 성령을 지닌
그런 성령의 사람이 되고 싶다.
38. 사람들은 범죄하여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로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편철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리라 하신지라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늘.. 은 아니지만 냉랭한 차거운 믿음은 아닌지 생각될 때가 많다.
아마, 그것은 일상에서 짓는 '고범죄' 탓은 아닌가 싶다.
빨리 끊어야할 죄.
거기에는 '안목의 정욕'이 아주 많이 차지하고 있다.
나에겐...
어제도 비디오를 느즈막히까지 봤다.
'죄는 생명을 스스로 해한다는데.. '
영생의 불인
성령의 불이 뜨겁게 타오르지 않음은
내 죄 탓이리라.
41.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아주 죄의 지배가 늘어나면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며 오히려 '여호와의 사자'이신
모세와 아론을 질타하는
이런 '죄'를 구분 못하는 '죄'를 짓게 된다.
그럴듯한 모습.
그지 없는 죄.
둘째 아들이 특박을 나왔다.
어제 저녁에 병원으로 저녁을 사달라고 나왔길래
백운 호수라고 안양에서 제법 운치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들.
생각이 많았던 아이라 나름으로는 아이의 자존감을 높일 요량으로
단 둘이서 아주아주 비싼..ㅎㅎ
대화를 많이 했다.
생각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장래에 대하여..
신문에 나온 가십에 대하여....
애가 많이 성장해 있다.
기뻤다.
특별히 기쁜 것은 계속 하나님의 기쁨.. 에 대하여
애는 들떠서 이야기를 한다.
기동단내 교회의 목사님들이 아이를 이쁘게 보셨던 모양이다.
아이의 순수성.
그 영적 맑음을 기뻐하셨던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들을 감싸신듯하다.
그리고는 설교 중에 아이는 드라마틱한 깨달음을 얻었다.
'야곱의 고난.'
열시가 다되어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이가 고백한다.
' 하나님 소리만 나와도 가슴이 벅차요.
또 눈물이 나려 하네요.'
아..........
그동안의 고민과 갈등이 일거에 없어지는 듯 하다.
아이는 '성령을 깊이 체험'했다.
전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내 아들 자신의 ' 하나님으로 들어왔음을 난 확실히 깨달았다.
할렐루야다.
이제 모든 것은 다 잘되리라.
향로에 담긴 불이 꺼진다는 것은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고라 등이 그냥 천수를 다하다 죽기만 했더라도 슬퍼하여줄 사람들이 있거늘,
그에게 정말 비참한 것은
성령의 불,
불켜진 향로를 하나님의 손으로 수거된 사실이다.
성령을 회수하셨음은
그는 지옥 백성임을 이야기 한다.
이게 비단 죽어서만 있는 이야기 이던가?
'살아 있되 죽은' 것이 바로 이거 아니던가?
그 절체의 외로움.
그 절명의 두려움.
그 암울한 메마름.
그게 성령이 없으신 분들의 증상이 아닐까?
매사 매일 매시간,
정말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시면 어찌 살까?
이 암담한 세상,
아무런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들로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며
늙어가는 육신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들의 그 암담함은 어찌할까?
죽을 맛이 맞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이 죽을 것 같은 삶.
내가 그랬다.
정말 하나님의 구원이 없으셨다면,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단 일초라도 숨도 쉬기 싫은 상태.
주님의 도우심의 은혜로 평범한 하루하루가
나름의 기쁨과 충만한 사랑으로 채워지니
그게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터지지 않을 조건이련가?
그러함에도 가끔가끔 사이클 처럼 나를 잡아가는 메마름은
하나님의 뜻도 있으시겠지만
나의 '죄' 탓이기도 함을 안다.
오늘 말씀 중의 '죄가 스스로의 생명을 해함'이라는 고백이 있지 않은가?
모과에 모과장의 캐릭터로 연상될 버걱거림이
날 붙잡는다.
다행이도 말씀으로 이겨나가고 그를 미워하기 보다는
그의 행동에 대하여 불쌍히 여길 마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보다 조금은 여러 곳에서 비걱거리는지
이슈화가 되어가고 있다.
마음이 복잡하다.
고소하기도 하고 ㅜ.ㅜ;
안되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르는 분야에서
특별한 '의료적 실수'는 아닐지라도
협조 분야에 의하여 당연히도 이루어질 것들이
또 똑같은 그 사람의 성향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하는 생각이 날 사로잡는다.
그러함에 따라 마음에 조금씩 '내 개인적 원한' 비슷한 마음이 끼어들라 한다.
그런 마음에 나를 맡기면
화가 나고 울컥해버릴 것 만 같은 두려움이 든다.
그래서 하나님께 멀어지고
은혜로 매일 같이 열심히 추구해도 모자를 듯한
성화에 대한 나의 결심이 또 자꾸만 느려질 것 같다.
갈등이다.
속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은혜에 좀더 다가가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사이의 갈등.
다행이도 오늘 '죄의 변장'과 '죄의 생명을 멀리하게 함'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신다.
'성령의 불 같은 뜨거움'과 '죄의 생명을 끄게 하는 차거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신다.
가만히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실제로 그리 화날 일 만은 아니다.
화내서 크게 문제화 만들기에는 그리 큰 잘못은 '실제로' 없다.
단,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소양 내지
부드러워질 것에 대한 배려의 부족 탓에
진료의 운행 방향을 버걱 거리게 했고
거기에 나이든 의사의 자격지심을 자극 했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흥분하는 것은 그 자격지심에 의하여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을 가 하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해결해야 할 '내 죄'의 영역이다.
내 성령의 불을 뜨겁게 달궈
내 영혼의 향로가 불타오르는 것을 막아설 위험이다.
최근에 날 더욱 힘내게 하는 깨달음이 있다.
'내 자식들의 모본을 위하여'다.
솔직히, 내 아들들.
어디에 내 놓아도 개인적으로 빠짐이 없이 반듯하게 컸다.
믿음도 좋다.
그러나, 관계 면에 들어가면 약한 부분이 없지 않다.
화합이나 융합 부분에 가면 그렇다.
사회적 능력 부분에도 이해할 수 없이 막혀 있다.
그 자식들이 하나하나,
예전의 힘없음과 안타까움은 결론적으로
아버지로 내 올바른 '동일 시'의 대상으로서 부족함이
그 원인이 맞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전에는 오히려 '포기'하고 도피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게 난 기쁘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만날 수록,
어제 둘째의 입에서 터질듯한 감동으로 계속 고백했던 바처럼
하나님의 모든 허락하심은 다 뜻이 있으심을
이제는 확신한다는 것이다.
그래..
그러기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는 다른
이후의 내 삶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
그 것은 '내 자식들의 훌륭한 모델'로서의 아버지 상이다.
생명의 능력을 깊이 만나가는 아버지.
정말로 어려운 과정을 믿음으로 견뎌내고
말씀으로 변화되어
매일 매일 성화되어가는 아버지...
그게 바로 '생명력 있는 아버지'가 아니던가?
그 아버지의 모본을 아이들에게 배우게 하는게 내 목표다.
그런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의 삶의 방향을 잡고
발의 등불을 삼아가는 나의 결심은
참으로 옳게 선택한 나의 길이라는 것이다.
이 길에 방해 되는 것은 '죄'다.
죄는 가능하면 멀리하여야 한다.
죄의 유혹은 너무도 크기에 이전에는 거부할 의지도 없었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다르다.
그 유혹을 분리해낼 지혜를 간구하고
분리할 여유가 생기고
멀리할 결심과 선택 만 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
내 영혼의 향로에서 타올라
평강과 기쁨으로 내 영혼을 사른다는 것이시다.
기쁘다.
감사하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의 원리를
난 그래서 깨우쳐 간다.
그게 감사하다.
적용
1. 성경 세장 읽으리라..
2. 교회 예배드리겠다.
자꾸만 예배의 시간을 잊어먹고 드디어는 수요 예배는 거의 안드렸다.
죄송하다.
오늘은 드린다.
3. 성령을 사모한다.
그 불을 사모한다.
4. 자식들과 우리 부부에게 주신 영혼의 향로를 기뻐한다.
드물게 보는 영적인..
5. 죄를 얼른 회개한다.
기도
고라의 죄를 봅니다.
그들이 지독한 죄를 지은 것이 맞지만
그들의 태도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정확히 인용하고
그 인용함의 당당함이 모세나 아론에 대하여 하등 흔들림이 없음을 보며
참으로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를
현실에서 구분하는 것이 힘이 들 때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나름 말씀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태가 틈을 타면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실은 실로 무서운 불신앙의 모습을 띄우고 있을 수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의미에서 '죄'는 늘 경계해야 겠습니다.
죄는 마음을 냉랭하게 하고
성령의 불을 꺼뜨려
겉으로 경건하되 속은 식어버린
어이없는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어서
죄가 무섭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님.
저.. ..안목의 정욕이 강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감성으로 흔들리는 것을
가끔 하나님의 일과 헷갈립니다.
주님.
TV에 비디오에 컴에 빠져
주님을 가까이 하는 시간을 빼앗겨
어느샌가 냉랭한 신앙인으로 변하지 않도록
절 붙드소서.
저 혼자 힘으로 안되는 것이
마치 옛날 주님께서 절 담배를 끊도록 해주시던
그 강력한 임재의 도우심을 기도하게 합니다.
주여.
저.. 그런 것싫어지게 하소서.
마음을 들여다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더 강하게 사모하게 하소서.
주님.
제 자식들.
정말 변하게 해 주심이 감사합니다.
특별히 아이의 어제 고백이 제 가슴을 움직였습니다.
개인적 하나님,
그 놀라우신 하나님을 열렬히 체험하고
성화의 말을 하고 있는
아이의 그 체험이 감사합니다.
주여.
그 어린 영혼을 붙드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인도하심대로 이끄소서.
아이를 쓰소서.
제 아들들.. 쓰소서.
그냥 두지 마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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