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울며 가슴치지 않기 위하여[계18:9-20] 본문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대 환란 때
불타는 곳 많고 연기 나는 곳 많다.
이것에 따라 '블랙 아웃'은 왜 없을까?
이웃나라에서 '환율 강제 다운'은 왜 없을 것이며
동족이 '미사일'을 발사할 위험은 어찌 없을 까?
큰나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전쟁을 불사한다 위협할 일은 어찌 없을 것인가?
환경은 날로 나빠져 회귀하는 연어는 줄어들고
대재앙은 속속들이 어찌 일어나지 않을까?
우리.
기독교인이라고
그 환경 속에 어찌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울고 가슴칠' 기독교인들은
그리 많을까?
그리 울며 가슴치는 자들을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도요한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들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후유.. 하는 한걸음 떨어진 입장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울고 가슴치는 자와
울지 않고 가슴치지 않을 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소유'.
아니 소유보다는 '소유에 대한 욕심'이 그것을 결정하지 않을까?
무소유는 각 종교마다 주창하는 바가 비슷함은
그것의 가져다 주는 피해의 진실을 깨달았음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감정적 안정이 다 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세상을 가벼이 떠나 거할 '천국'의 보장이 있음이 다르다.
그러기에 울며 가슴을 치지 않을 것을 넘어
사도요한, 제 3자의 가벼움이 있을 것이다.
온전한 믿음을 지향하는 자.. 에게 만...!!
10.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7.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보라.
그들이 천년가고 만년 갈듯 붙들고 있던
세상의 것들은
'사상 누각'이다.
그것들.. 오늘 표현이 정말 적나라 하다.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임했다.
한 시간에 망하였다. '
정말 그렇다.
누가 그랬나?
현대의 문명은 정말 바람 부는 것처럼
전기만 끊긴다던가
석유만 끊긴다던가.. 하면 순간 폭싹 무너져 버린다고..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눈감고
마구 마구 소비하고 더 가지려 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 세상 사람들 뿐인가?
우리 믿는 자들도 예외는아니다.
배부르고 따신 방에서
그냥 편안히 지금이 좋사오니 하고 있다가
불현듯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아니.. 그냥 블랙아웃이라도 되면
추위나마 어찌 참을까?
한시간에 망해 버리면.. 이라는 말이 가슴에 오는 이유다.
제 3자의 시선,
사도 요한의 관조의 시선이
내 마음이 되어야 한다.
14.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유'가 낮아져야 한다.
탐하면 , 욕심이 늘어나면
잠시의 육신은 편할 지 모르지만
그만큼 마음은 편협해지고 메마른다.
평화는 .. 반드시는 아니지만... 소유와 반비례한다.
여기까지는 '불교'나 유교나 선을 주장하는 도교나 비슷하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까지다.
이제
비워진 후의 공간.
영혼의 빈공간은 절대로 그냥 비워지지를 않는다 .
사단은 늘 그 빈 영혼의 지성소를 채우려 한다.
예수님께서 쫓아낸 귀신이 돌다가 더 많은 귀신을 데리고
귀신을 쫓아준 자의 영혼을 채울까 걱정되니 더 열심히 기도하라신
말씀을 하시지 않았던가?
그게 원리다.
영혼은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한다 .
비우기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욕심제어로 가능하다.
영혼이 탐하는 세상의 과일은
노력으로 피할 수는 있지만
결국은 더 큰 탐욕으로 채워진단 이야기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완전히 대치되어야 한다.
오늘 레마는 그것인 듯하다.
세상의 것.. 아무리 탐해도 그것은 채울 수 없는 갈증이다.
그것으로 흔들리고 빌 이유가 없음을
그 어이없는 세상의 '거짓된 ' 합리는
'하루 아침에 망한다'는 구절로 강하게 알리신다.
내 현재의 것에 만족하고
부족한 것 , 약한 것 , 곤란한 것을 ...
예수님으로 인하여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성령이 도우시면
비워진다.
비워진 후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가득채우는 것이
온전한 '이땅의 삶'의 '처세술'이다.
감사하다.
적용
1. 아침에 얼마전 미국 Eagle Nest Foundation (ENest.org")의 운영자이신 목사님 사모님이
복강경수술 받고 퇴원 후 내원하셔서 한참 이야기를 하셨다 .
그들의 힘있는 선교적 삶이 귀하여 외래 환자 분들을 한참 기다리게 하면서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세상에 '가치'는 꼭 그들처럼 큰 것은 아니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조금이라도 입을 열어
하나님 나라를 증거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가치가 아닐까?
2. 소유를 내리자.
'비교'에 대하여 어떤 님이 답글을 다셨다.
비교야 말로 소유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사단의 원초적 작전이다.
없음을 기뻐하기로 마음 먹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러자.
3. 오늘 응급 수술 받을 환자.. 예수님 증거했다.
기도하자.
4. 성경 세장 읽겠다.
5. 내 아들들.. 을 위해 기도하자.
우리 아들들,
세상의 것들이 허무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정도는
신앙이 깊은 아이들다.
그러나. .. 세상을 사는 젊음의 피가 그들을 얼마나 혼란케 할까?
기도하자.
아픔을 위로 하시길 그러자.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진정한 소유욕이 어떤 것이고
어디까지 소유를 내릴까.. 지혜를 주시길 기도하자.
6. 나의 소유를 위해서.
혹여.. 자식들을 소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면..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 육신의 소유 부분은 내리자.
영적 , 영생적인 소망으로 채우자.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
계시록을 가지고 풍성한 묵상이 나오도록 하심을 그렇습니다.
소유,
그것의 일상 속에서의 실체에 대하여
헤메이지 않도록 하게 하시고
가지고 가지지 못함이 실제의 소유와는
그리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아는 지혜를 주소서.
가지지 않음이 자존감 세우는 반대적 미련한 소유를 자극치 않게 하시고
하나님 일을 위하여 허락받을 물질적 소유가
진정한 비움과 거리가 있을 것을 깨달아알게 하시고
더 바랄 것은
가진 것과 영의 부요와 반비례하지 않도록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사도요한의 객관적 시선이 부럽습니다.
자녀들에게 대하여도 마찬가지고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그런 지혜와
자유로운 평강을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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