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성령님 인도하심대로(행 10:34-48) 본문
제 10 장 ( Chapter 10, Acts )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은 '성령'으로 하나님께 직접 부음 받으셨다.
성령으로 충만한 예수님은
귀신을 쫓고 능력으로 많은 일 행하셨다.
성령이 부어지시니
성령이 충만해지시고
그러니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성령은 '설교' 들을 때도 내려온다.
금식하고 간절히 기도해도 오지만
듣기만 할 때도 내려 오신다.
그분은 부어지시는 '물질'이나 영의 일 부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기도 하지만
내려오시기도 하신다.
그 분은 우리의 상달되는 구제와 간구와 열심에 따라 '더' 부어지시기도 하지만
당신의 필요에 따라 내려오시기도 한다.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성령님은 베드로까지 놀랠 정도로
신자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내려오신다.
주님은 주님의 뜻에 의하여
세상에 영향을 미치시기도 한다.
반드시 우리의 열심과 비례하는 일차원적이신 분이 아니시다.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성령을 받은 자들이 말하는 방언은
성령 충만한 증상일 뿐이기도 하지만
방언 안하면 성령이 없는 역의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올리기 위한 방언 만이
성령의 방언일 수있다.
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 만이
선택받은 자들이다.
그들의 현재의 성분이나 성품,
그들의 죄악 여부와 상관없이 성령을 받으면
모두 주님의 자녀가 된다.
예수를 믿는다 시인해도 '성령세례'가 없으면
주님의 구원을 받은 자가 아니다.
기독교인의 이름은 가졌지만 성령체험이 없으면
그들은 주님의 자녀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성령의 이글거리는 듯 살아 움직이시는
그 사도 행전의 시대에
하나님은 '주님의 뜻'대로 주시기도 하는 '성령'님이시기도 하지만
그 분 자체로 '삼위일체 '의 한 분이시기도 한
성령하나님에 대하여
오늘 묵상구절을 통하여 드러내고 계신다.
나.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여 이리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시는가?
때로 '성령' 주세요.. 라 기도하면
성령님이 마치 받는 물건인양 값없이 소홀이 인식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다.
물론 그 분은 주님 예수님 앞에 간구하면 오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그 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하여
올바로 몸부림 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전혀 예상치 못하게 임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나.
나에게 성령 하나님은 ' 흐름', '흐름의 통로'로 이해된다.
일위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온 우주를 지배하시고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원천이신 그 하나님의 에너지가
예수 그리스도 ,
제 이위 하나님을 내 구주의 신호탄으로 하여
제 삼위 성령 하나님의 파이프라인 같으신
통로를 따라 무한정 내 영혼에 퍼부어지는
하나님의 에너지를 경험하길 기대하시는 것......
그게 내가 이해하는 성삼위 하나님의
아주아주 아주 아주 적은 눈을 가지고 바라본,..
마치 개미가 거대한 사람을 밑에서 올려다 보고 판단하는 듯한
그런 이해의 일부분이시다.
정말 죄송하다.
어찌 인간이 ..............하나님을..........
그러나 아직은 어린 영혼이기에
- 인간 세월 속의 나이는 영원에 비하면 감히........어리다는 표현조차... 어이없는 것 아니던가? -
이리 이해하여 받아 들이고
나름대로 일정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동행하여 키우실 때까지
허락되어진 내 영혼의 거울 속에 비취어진 그 분이시다.
이제 '성령'님,
성령하나님의 이글거리시는 운행을 다시 한번 오늘 목도를 한다.
나.
내 일생에서 이렇듯 조금 더 영적이고 균형잡힌 힘있는 믿음이
지금 유지되고 있는가?
아니다.
조금 무엇인가 비들 거린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함이 없어서다.
왜 이던가?
안다.
말씀하시는 대로 금식등의 열심도 부족하지만
그것보다는 실은,
' 하나님이 내 삶의 전 부분에서 우선되고 먼저 되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나의 비틀림이다.
세상일 다하고 그제야 말씀을 겨우겨우 붙든다.
어찌 할 수없는 시간적 부분과 삶의 무게가 있긴 하지만
그러함에 대하여
난 어느 순간 '당연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이 뒤로 밀리고 때로는 잊어먹기까지 해도
아무런 아쉬움 - 죄스러움은 주님이 싫어하심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
아쉬운 것은 주님의 그 평강과 평안이 약해짐을 안타까워서
하나님을 더 열심히 사모해야 하는 그 영혼의 원리를 잊이 아쉬움이다. - 이
없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오늘 금요일.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여행을 위하여 국제 면허증 하러 간다.
바쁜 스케쥴을 조정해서 오랫만에 내 반휴를 즐긴다.
그리고는 아침에도 바쁘게 환우가 밀리다가 이제 시간이 남았음에도
난 '에이......하루 빠드리자......' 하면서 그냥 넘어가려다가
불현듯 '이게 정말 죄인데........'란 생각이 들어
말씀 앞에 섰다.
맞다.
성령이 충만함 만이..
성령 하나님이 내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고
하나님 앞에 직고하셔야 만이
내 삶은 다시 옳음의 방향을 잡고 흘러갈 텐데........
이 어리석은 자아는 또 태만과 교만의 끈에
사로잡히려 하고 있다.
이러다 또 며칠 지나가면 딱딱히 굳은 얼굴과 영혼으로
이리 저리 마구 찌르면서 갈등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당황할 텐데...........
마음을 다 잡고 묵상 글을 올리려 블로그 앞에 앉았다.
역시.....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된다.
정리하시는 하나님은
하루하루 나와의 대화를 통하여
또 어두운 인생의 발길을 옮기도록
내 발 앞에 등을 켜 주시는 것이시다.
성령하나님..................
감사하나이다.
내 매사를 책임지시는 하나님.
오늘도 말씀으로 절 인도하십니다.
깨달음으로 절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특별히 희망이 되고 소망이 됨은
이방인,
그들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베드로님도 놀랄 정도의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저
매일 매일 주님 앞에 서기에도 부족한
긍휼 적고 상급적고 노력 적은 모습으로 살지만
그러함에도 성령 하나님이 날 충만히 채우시고
사랑하심을 인증 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듯 해서
그게 감사합니다.
예전처럼 그리 당황하지 않으리다.
주님 말씀 가운데 주시는 성령의 에너지로 살다가
주님 원하시는 대로 몇 몇 적은 충성으로 보답하고
오늘 하루 또 마무리 하겠습니다.
간절히 비올 것은
막연하나마 제가 기대하고 바라는 장래가 있고
그 장래에 걸림돌이라 생각되는 이 모든
주님과 저 만이 알고 있는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제거 시키시사
때가 되면 주님...
제 앞의 길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 길이 주님의 일에 온전한 헌신이든
세상에 살면서 내 적은 경험으로 세상을 계도하든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성령님.....
오늘 저를 강하게 잡아 주소서.
제 자식들............도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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