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흔들림 없는 삶 (행 10:17-33 ) 본문
제 10 장 ( Chapter 10, Acts )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베드로는 기도할 때 비전을 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도 사람.
흔들린다.
영어로는 wonder라 나온다.
18절에 나오는 '의심' 이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면이 많이 강조된 해석이지만
wonder는 이것 저것 결정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상황으로
조금은 '결정내리지 못하며 당황하는 상황' 에 대한 표현같다.
즉 , 흔들리는 마음.
그것은 의심에서 느껴지는 악함 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쏠리는 약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다.
방황, 혹은 흔들림.
이게 나의 전 일생에서 많이 경험되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그러다가 끝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손해보는 경우가 많거나
아주 그럴까 두려워 조급히 판단을 내려 버리는...
세상에 얼마나 선택의 순간들이 많은가?
세상에서 높이 올라가는 것도 좋으나
올라가면 떨어지는 것이 두렵고
경쟁에서 성공하여 이기면 좋으나
눌리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아들들 열심히 가르쳐서 내 뜻대로 성공시키면 좋겠으나
강압이 예전에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무대뽀 모습으로 비칠까....ㅎㅎ
살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지혜'임을 느낄 때가 많다.
그 지혜가 세속적인 성공의 지략보다는
조금은 더 풍성하고 통합적이며
타인과 나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결정이 되면 좋겠다.
타인에게 좋게 하다가 내 속이 타버리는 어이없는 빈껍질의 느낌도 아니고
나에게 우선권을 두다가 '이기적'이 되어 버리는 현상이 나타나서도 안된다.
지혜....를 위하여 여러가지 선택의 기준이 있다.
철학, 종교, 학문..............
그러나 그들 모두 정답이 없다.
결국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고
치우칠 것이 두려워 또 선택을 어렵게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
성경에 있다.
' 고후 12:10'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하고 곤란하고 .... 를 기뻐함
약할 때 강함.
어느 종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수는 있다.
도덕책으로도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거기에는 따르기 어려운
' wonder'가 늘 따른다.
의심보다는 방황이다.
그 방황은 어느 누구도 그러한 약함으로 강함을 온전히 이루어낸 사람이 없음을 알기에 그렇다.
쉬바이처라는 분의 뒷이야기가 나쁜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간디는 '성적 도착'의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최근에는 '인도'의 불가촉 천민 출신의 여성 장관이
좋아하는 구두를 위해 비행기 전세까지 내서 사오라 시켜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일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영' 속에 있는 불완전,
하나님이 허락하신 '에덴 동산의 사과 '사건 이후
어느 누구도 완전할 일이 없다.
할 수가 없다.
영혼 속에 원죄의 성질이 남아 있기에 그렇다.
예수님으로 이전의 죄는 잊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지만
성령 님으로 인하여 매일 씻어지는 사죄의 은총이 없다면
매사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진실이고 진리이기에
난 약할 상황이 내가 가야할 방향이라면 이전과는 다르게
크게 흔들림 없이 약할 길을 선택한다.
그러면 그 선택을 주님은 기뻐하시고 성령으로 깨달음과 얻음을 주신다.
내 삶은 결국 '강하게 됨'을 많이 경험하고 있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 흔들림.
나.
굳건한 평강 속에서 화평을 누리다가
가끔 의혹이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주님'을 의식하고 사는 자로서
하나의 무게가 더해질 때가 있다.
죄의식. .. 당혹감
오늘 베드로님은 순간 흔들렸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환상'을 어찌해석할 것인가?
뒤에 곧 나오지만 그는 '유대 선민'으로 율법을 깨뜨리고
이방인을 만나야 하는 자로서의
현재적 위치와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자신의 환상이 잘못 아닌가.. 하는 인간적 약점에 대하여 흔들렸던 것이다.
그러자... '성령"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의심하지 말라.
내가 저를 보냈다.'
그리고 나면 무엇이 흔들릴 겐가?
믿는 자들의 편안함.
나.
아직 뚜렷이 음성을 듣지 못한다.
가끔 느낌으로 강력히 올때가 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대감과 더불어...
그럴 때는 억지로 순종하고 말씀에 맞추면 굉장한 기쁨이 오는 경험을 가끔 했다.
며칠 전 식사를 하면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비인후과 선생님의 고백을 들으며 끄덕인적이 있다.
외국에 갔을 때 마침 주일이라서 가려던 교회를 인터넷으로 체크해보니
근처에서 멀어 이것 저것 흔들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
'네가 뭐를 찾아 헤메냐'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크게 걱정하지 않고 여행을 가니 마침 에스콧트 나온 분이
여행사 직원이 사정이 생겨 '이사급' 상사가 대신 나오고
그 분이 그 교회에 출석하셔서 무사히 해결된 일이 있다 한다.
이 작은 일상에서의 해결은 아주 적은 일례다.
많은 간증들이 믿는 자들에게는 있다.
흔들림이 줄어 드는 것.
인생에 당혹감이 줄어 드는 것.
그래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세상에서는 그리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만
진정 평화가 찾아오게 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의한 선택은
바로 통합적 장점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가장 선한 방법.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야 한다.
믿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말씀 가운데 체험이 쌓여야 한다.
그 분과 동행하는 체험의 시간이 늘면
삶이 자연스러워 진다.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여도 자유스럽다.
나.
무엇이 부족한가?
기도의 분량이다.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또 무엇이던가?
'구제 ' 부분이다.
이 부분에 지나면서 마음이 '턱~'하니 막힌다.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경험하며
어느샌가 '구제'는 나의 일과 먼 이야기 처럼 느끼기 시작한 게 '죄'다.
선교는 남의 일 같고
봉사는 시간 남는 사람들의 일 같다.
헌금은 하나님이 십일조 빼먹은 적 없고 가능하면 감사헌금 열심히 하고
가끔 적당한 정도의 선교 헌금과 선교비 지원 개인적으로 얼마씩 하니 된 것 같다.
알게 모르게 난..
성경에서 나오는 그 열심을 보면 '저항감'을 가지게 된 나를
이 말씀과 더불어 잠깐의 묵상에 느끼면서
'회개'할 부분임을 생각했다.
처음.. 이 병원에 오고
하나님 첫사랑의 경험이 너무도 뜨거울 때는
어느 것이나 다 할 것 같았는데
이처럼 굳어 버린 내 영역의 믿음이 생긴 것 같다.
다시 기도하여야 겠다.
성령님께서
나의 약한 부분, 그래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내 특질 속에서 허락된 내 믿음의 영역과
남들, 특히 교회나 선교 단체의 요구하는 모든 것을 태우는 신앙열심 사이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옳은 것인지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자유를 누려야 겠다.
어쨌든 난... 주님이 원하시면 한다.
언젠가 되어서
주님이 ' 주하인아... 다 털고 일어나라' 하시면 할 마음의 자세는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매일 내 속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기회에
당혹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뚜렷한 인도하심을
알고 순종하는 적용을 연습해야 한다.
그리고 기쁨으로 기다려야 한다.
적용
1. 기도하는 자 되어야 한다.
. 당직이다.
기도하는 당직일이 된다.
2. 성령을 간구하자.
하루 종일 그러자.
지혜를 주시길 간구하자.
3. 모든 일에 주님께 여쭙는 습관을 들이자.
문제는 듣지 못하는 내 영적 수준의 미약함이다.
기도의 분량을 늘이자.
4. 성경 세장 읽자.
5. 모든 것 주님께 맡긴다.
기도
주님.
많은 부분에서 헷갈리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이것을 하자니 저것이 하고싶고
이것이 걸리니 저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만히 평화 가운데 기다림은
예수님의 그 평강 덕분이십니다.
성령의 말씀가운데 임재하심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머리가 아프고 시간만 보내는 초조한 눌림이었습니다.
주님.
주님 안에서의 이 평강의 누림과 그로 더불어 모든일이 잘 풀려나가는
이 역사가 제 영혼에 '믿음'으로 온전히 자리잡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말씀으로 절 붙들어 주시고
말씀하시듯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고 증거를 목도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내 삶.
온전히 주님의 것이란 소리 낼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주님은 내 모든 평화의 근원이십니다.
주님은 흔들림없는 요새시고 반석이시고
어두운 밤길에 제 발의 등불이 맞으십니다.
주님은 평강의 왕이시고
주님은 내 생명의 근원이시고
내 온전한 인생의 목적이십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랄 것은 제 부모님.. 제 아내 제 자식..
제 아는 모든 분들.. 주안에서 같은 누림 누릴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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