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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영혼을 주님께 드리자 (출 29:1-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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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영혼을 주님께 드리자 (출 29:1-18)

주하인 2009. 6. 6. 15:17

제 29 장 ( Chapter 29, Exodus )

 

 

주여.   

제가 드리는 붉은 믿음을 받으소서.  

주여. 

저로 흰옷입은 성결함을 주소서. 

주여.

오직 그것만이 제 삶의 목표가 되게 하소서. 

주여.

거룩하여짐 만이 오직 유일한 이땅 거함의 이유가 되게 하소서.

 주여!!!

 

( 나의 영원하신 기업은 /채진권 )

 

 


1.  너는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로 거룩하게 할 일이 이러하니 곧 젊은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수양 둘을 취하고 
18.  그 수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제사 지내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모세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아론 들에게 직분을 위임하고 이리 가르치라.'

모세가 누군데 목회자를 가르치는가?

'성령'의 예표라 생각하면 나에게 주시는 말씀임이 이해가 된다.

신학자들이 '모세'가 성령의 예표라 설명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들 목회자들은 '신령'해야 한다.

즉 , 거룩해야 한다.

그러기에 '속죄제'를 드린다.

예수님 오신 후 우리는 매일 속죄제를 드릴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론'으로 대치될 수 있다.

주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지만

나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날마다 거룩해져야 한다'

' 성령께서 세상의 모든 거룩해져야할 기독교인들에게

 거룩하도록 가르치실 것이다.'

 ' 거룩함이 우리가 주님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화제이다.

 그것 만이 우리가 주님께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라신다.

 

 어제.

일찍 끝나는 금요일.

환우 분들이 날 좋아해서 인지 ^^;;;; 자꾸만 환자 분들이 오신다.

어젠 네 분이나 수술이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일찍 퇴근하지 못하고

오후는 하루 종일 수술 방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틈틈히 수술방 내 마취과 의사 의국에서 대화를 했다.

비슷한 연조의 남 선생님들 두분.

대화가 결국 자식들에 대한 부분으로 건너갈 수 밖에 없다.

 '베트남 선교사' 출신이시며 목사님이신 일년 선배 M 수술부장님.

역시 철저한 신앙인 답게 자식에 대하여 물려줄 재산이 없음을

확고히 말씀하신다.

 또 한분의 신앙 깊으신 W 선생님.

자식도 살 기반이 있어야지 않게냐 시며 재산을 도울 수 있으면

도울 만큼 물려 줘야 한다 하신다.

 나.

자수성가의 모델이신 우리 아버지와

냉랭한 가족 분위기 탓에

철저히 자수성가할 수 밖에 없었던 차라

그 가운데 겪을 수 밖에 없던 그 외로움과 그 힘듦이 처절하나

한편으로 그 아버지의 자신 밖에 모르는 철저한 독립심 탓인가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물려 줄 수 없는 것을 강요하여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고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 고생의 그 어려움, 그 외로움의 지옥같음을 알아

지금은 조금씩 아이들 모르게 내 마음 한구석에서

얼마되지 않는 내 재산을 나누어 놓고 있다.

 결국 그 두 선생님의 중간입장이다.

  그러다가 대화의 방향은 결국 '사람들이 사는 이유' 쪽으로 흘러간다.

불신자, 아니 기독교인의 대부분 들 조차

자식을 성공시키는 것이 인생의 목표로 되어있고

그러다가 죽어가는 것 이외의 다른 존재의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

결론처럼 도출되어 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고심하는 분들도 있고

그 부작용으로 존재의 흔들림으로 고난을 겪는 분도 있게지만...

 어쨋든 살아 있다는 것,

살아 간다는 것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해명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산다는 것.

그리고 죽는 것.

그리고 그 후...

 

주님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가 될 수 없다.

주님이 예비하신 그 천국이 계시기에

이 인생과정이 '천국'의 시민권자로서 당연히 거쳐야할

시험의 과정임을 자연스레이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어떠한 상황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살아가는 이유의 가장 큰 부분임을 알면

어떤 모습이든

어떻게 살든 크게 걸릴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불현듯 드는 생각이 이것이다.

만일 주님이 '너 무엇을 가져왔느냐?'하고

천국의 문앞에서 여쭈어 보실 때

난, 무엇을 내밀까?

 다른 사람들은?

 '자식의 성공'을 내밀까?

'기도의 분량' 만 내밀까?

'돈'을 내 밀까?

'성공'을 내 밀까?

교회를 크게 일구었음만을 내밀까?

'전도'의 숫자만 내밀까?

............

어떤 것을 내밀어도 내가 내어 미는 것이

주님에게 어떠한 '득'이 되실까?

전도 많이 하고 , 기도 많이 하고 , 선교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 영혼이 땟국물로 더럽혀져 냄새를 풍긴다면

주님께서 혹시 코를 잡지는 않으실까?

 겨우 '자식'이나 성공시켰고 돈이나 내밀어도

그게 주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자식 데리고 가서 주님께 보여 드려 자랑할까?

기껏 벌어논 '원'화를 천국 돈으로 어디서 환전할까?

부동산이나 건물은 어찌 들고 갈까?

교회당 커다란 것 들어다 어디에 놀까?

주님이 그 곳에 앉으셔서 기뻐 하실까?

..................

 주님께 드릴 것은 '영혼의 새하얌' 뿐이 없다.

깨끗이 정화되어 주님 앞에 가야

주님이 날껴안으실 것 아니신가?

내 등을 두드리시며 '주하인 네가 승리 했다.' 하지 않으시겠는가?

 

 오늘 묵상의 거룩함은 '속죄제'를 통하여 이루어짐을 말씀하신다.

제사의 방법이 자세히 나온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 탓으로 이렇게 되었다.

이 제사장의 신분이 되었고 '속죄제'를 드려 주심으로  깨끗함을 입었다.

이 깨끗함을 날마다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가능한가?

자식 에게 들일 정성 탓으로 '주님'께 ㄷ릴 매일의 깨끗한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지 않나?

 매일 기도해야 한다.

그게 '화제'다 .

그게 '매일 번제'다.

성령으로 매일 '화제'를 드릴 기회를 예수께서 마련하고 가셨다.

자식을 길러도 자식이 목표가 되면 더러운 것이다.

자식을 주님 뜻에 맞게 기도하며 길러가는 것이 '성화'의 길이다.

선교도 그렇다.

주님 뜻에 맞는 ,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하는 선교가

자기 '성화'까지 도모하는 선교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주님을 위한  매사의 일이 기도와 예배로 전제될 때 그것이 성화의 삶이다.

 

  M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수년간 아이 뒷바라지 하신 후 '선교지'나갈 계획이시란다.

아이는 하나님께 맡기신다 한다.

그것이 올바른, 누구나 할 수 없고 , 받는 아들로서는 고생일 것이지만

주님이 궁극적으로 바라시는 신앙인의 모습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중간의 삶도 허락하셨다.

거기에서 성화를 기대하시기도 한다.

 W선생님께는 그 삶 속에서 또.....

 

오늘은 쉬는 날이다.

현충일.

어제 수술한 환자 분들 회진을 위하여 나왔다.

저녁에 찬양대 첫 모임에 오라해서 가련다.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동안 '성화'와 '거룩'의 삶을 살기 위해

오늘 하루라도 최소한 노력하련다.

 낮아지고 기다리고 조심하고 말 줄이고

그게 주님을 위한 길이라면 그럴 것이다.

 

 

주여.

감사합니다.

전 아직도 먼... 거룩이라는 이야기만 나와도 소름이 돋을

엉터리 심사를 가진 자 올시다.

그럼에도 주님.. 주님의 말씀이시니 선택적으로 노력해보려 합니다.

성령으로 이끗소서.

아론 들을 모세가 그랬듯이

저도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거룩의 모습을 다지게 하소서.

전 안되고

제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거북스러움이 있지만

주여.

당신이 도우시면

전 흰옷 입을 수 있습니다.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주여

당신이 씻으시면

순백색의 영혼으로 절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제 인격에

하얀 꽃의 향기가 발하게 하소서.

 주님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그 붉은 피로 그리될 줄 

믿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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