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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처음 (계21:1-8)

주하인 2006. 8. 28. 08:41

(요한계시록21:1-21:8)  
 

1 또 내가 새 하늘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어둠은 ~~ 물러가고~ 새 날이 ~ ♪ )

 

 

 어제 오전 예배를 마치고 둘째를 데리고 서울에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 설명회에 다녀왔다.

정말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

제 눈에 안경이라서인지 재주는 많아 보이는데도  모든 것에 의욕을 보이질 않는 아이.

그래서 학교성적이 말도 아니다.

물에는 때려서 데려갔지만 도저히 물을 먹일 수 없는 고집 불통.

그래서 주님께만 맡기고 지켜는 보고 있지만 답답해 하던 차

우연한 기회에 동료의사에게 비슷한 자녀를 미국에 보냈다는 얘기를 듣고 마치 하나님의 응답인양

열심히 알아 보았지만 문제는 성적이었다.

...

 그래도 목표가 있고 가능성이 그쪽에 있는 것 같은 약간의 흥분심도 들어 가능한 쪽으로 최대한

알아보기 위해 다녀온 것이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접촉으로 아이의 심경을 넓혀 주려는 목적.

일년의 재정적 손해와 시간적 손해를 감안 하더라도 애에게 자극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위해 갔다.

 

 기대로 인한 약간의 흥분과 더불어 다녀왔다.

가보니 거기 온 학부모들의 아이는  모두 공부 잘하였다.

예전보다는 비교라는 의미에서 가슴앓이는 훨씬 덜 하였다.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집에 왔다.

중부 캔서스 쪽으로 크리스찬 사립으로만...

아이도 꽤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게 좋았다.

 

저녁에 집사람과 아이의 일에 대하여  대화하는 중

자꾸만 안되는 쪽으로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갑자기 눌려왔던 속 상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꾹참고 말없이 일어나  그냥 먼저 잠을 자러왔다.

 

꿈이 뒤숭숭했다.

생전 뭔가 상징적인  꿈을 꾸지 않았었는데 큐티를 하면서 이제 두번 째 꿈을 꾸었다.

 

( 꿈 속에서는 길이 좀 스산했다. )

 

오랫동안 쫓기었다.

그러다가 시골 깊은 산속의 마을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노인 한분에게 갈 길을 희망없이 묻자

그 분께서 참으로 고맙게도 따라오라면서 꾸불 꾸불한 산길을 인도하시면서 저 산등성이만 넘으면 된다는 것이셨다.

 고맙게 인사하며 올라가며 굽은 길을 가다 오른 편을 내려다 보니 밑의 계곡에 두무리의 우리가 보였다 .

 

한 쪽 무리의 우리를 쳐다 보니 머리가 두개달린 듯한 양인 듯한 동물이 있어 놀랐더니 움직이니 그늘에 의해서 착각이 된 순한 양이 었다.

( 이것 보다 훨씬 더 무서운... )

 

맞은 편 우리를 보니 세걔의 우리가 모여 있는 데 '야수' 들이 묶여 있었다.

앞쪽에는 정말 큰 늑대가 휘황한 털을 날리면서 금빛 줄에 묶여 있었다.

그 옆에는 정말 아름답고 힘이 있어 보이는 대단한 크기의 '사자'가 있었고

더 안 쪽으로는 '호랑이'가 역시 묶여 있었다.

 

그 맹렬함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금방이라도 끊고 우리까지 넘어서 뛰쳐 나올 것 같아서 두려워서 올라가지 못하고 그냥 잠이 깨었다.

 불안했다.

며칠 전 사고로 알게 모르게 가슴 한쪽이 얼얼하던 차

비록 아이에 대하여 예전과는 다른 주님의 눈으로 보려 애를 썼기에 평정을 유지하기 가능했지만

집사람의 부정적 반응에 눌렸던 악감들이 마치 터져 나오려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 사슬 ..........)

 

 그 사슬은 어제 묵상 글 중 천사들의 사단을 쇠사슬에 묶어서 무저갱에 던졌던 그 사슬일 듯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선한 무리와 악한 무리의 양극을 대비시키면서 그 사이를 지나서 반드시 지나서 성공해야 할 '좁은 길'에 대하여 보여주시는 상징적인 의미이신 듯 했다.

 

그래서...

예전에 보이던 내 반응과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이기로 결정했다.

 

가능하면

조용히...

출근했다.

 

 

 그리고는 주님을 가만히 묵상했다.

그러나 사나운 악감의 야수들이 포효하는 것처럼 두려움과 화가 올라 오려 하는 듯 불안하였다.

그럼에도 ..주님의 손길로  잡아주시는 듯했다.

 

새 하늘 새 땅은,  꿈에 보여진 양 무리와 야수 무리의 내 속의 강한 공존 즉  처음 땅  바다 를뚫고 좁은 길을 건너 올라가면 도달할 새로운 세계이며 , 그 존재감은 이전 , 치열한 싸움 상태에 있을 때를 건너서 곧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의 상태임을 보여 주는 것이고 , 속의 불안함은 과거에 나에게 이런 악감들이 있었고, 그 악감은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난을 초래할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현상인 것 같다.

 

 아침에 묵상에서  새   처음  의 비교가 범상치 않게 눈에 들어왔다.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출근할 때 둘째를 학교 앞에 내려 놓고 가면서 내 입에서 깊은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 주님 , 나 정말  쉬고 싶어요.... 주님'

 

묵상이 이어지면서 또 한번 눈에 딱 들어오는 구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다. "

"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

 

희망이다.

꿈과 많이 들어 맞는다.

정확히 위로하신다.

 

살아계신 주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처음 부터 끝까지 그 분이 날 아신다.

완벽히 위로하시고

완벽히 미래를 제시하시고

완벽히 보장하신다.

 

 

 

 

 

적용

 

1. 오늘 혹시 있을 지 모를 '화'를 자극할 상황에서 절대로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2. 둘째의 장래에 대하여 다시금 여쭤 본다.

 

3. 주님께 감정의 인도를 맡긴다.

 

4. 해결하실 주님께 며칠 전의 일을 맡긴다.

 

 

기도

 

살아계심을 전 늘 느낍니다.

일상에서 주님의 흔적을 발견할 때 전 흠찟 놀랍니다.

주님의 임재하셨던 그 향기를 맡을 때 전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놀람보다는 기쁨이 큽니다.

아니

기쁨보다도 당연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당연함은 당당함으로 바뀝니다.

그래

내 일생에 늘 이러셨어.

앞으로도 이럴거야.

이리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쉽지 않은 곡절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내 속은 이해치 못할 평안과 담담함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주님을 바라보는 결과의 현상이었음을 알고 고백하고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강력하게 말씀으로 잡으십니다.

이제 새로운 땅과 하늘로 날 채우신답니다.

아..

가볍고 어지럽기 말도 못하던 이내 심사에

주님은 당신의 평강과 은혜로 채우신답니다.

이제

내 앞에 좁은 길

마치 곧 달려 들 것만 같은 대적들의 자극에도 불구하고

묶여 있는 금사슬이 끊어질 것만 같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냥 꾸준히 달려갈 용기를 허락하소서.

그마져도 주님이 허락하시면 됩니다.

이제 시작이자 끝이신 주님.

당신께서 지켜주실 그 약속의 뉘앙스를 믿고 가려하오니

변하지 않게 하소서.

두렵지 않게 하소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세상의 큰 것보다

눈에보이는 어떠한 결과물 보다

내속의 것이 변하여 드리는 것이

주님에 대한 찬양이 되길 원합니다.

 

가끔은 주님

아직도 힘이 들고 어려우니

저희 눈의 눈물을 씻어 주소서.

조금만 더

위안과 쉼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 우리가 모르는 미래를 맡기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 코리 텐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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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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