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들도 하나님은 믿었다[삿18:1-22] 본문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단자손.
그들도
출애굽 시절 그 뜨겁던 하나님 인도하시는 중에 염탐하던
그 행동을 '흉내'는 내고 있다 .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그리고 정탐자 그들도 마치 '선지자'를 만난 듯
미가 집 거짓 선지자 레위 청년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마치 '신비한' , 하나님이 인도하신 대단한 이야기를 듣듯
솔깃한 내용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한다.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그리고는 그들은 마침내
그러한 비밀스러운 , 내밀한듯한 (얼마나 가슴 떨렸을까... 하나님의 일을 위험스럽고 비밀스러운 가운데 한다는 써스펜스가 있던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만난 레위지파 제사장이라니... 그들의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시나리오 아니던가? ㅠ.ㅠ) 만남 가운데
'확신'(아.. 이 미련한 자 들의 확신의 무서움 ㅠ.ㅠ;) 을 가지고
드디어는 '기도'를 원하고 '응답'을 바라지 않던가?
그 순간, 그 들 스스로 정탐자된
거짓 신앙인들의 가슴은
얼마나
거짓 소망으로 불타올랐을까?
아니다.
응답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얼마나 형통할 지 ' 확인도장을 받기를 원하던 거 였다.
10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그리고 그에 부응하듯
'거짓 제사장'은 그들의 자아에 꼭 맞는 대답을 한다 .
17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갈 때에 그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그리고는 이하
마치 '형통'한 듯한 흐름으로 인하여(아.. 예수님은 추수할 때까지 곡식 다칠까 가라지를 그냥 두라시지 않았던가.. 가라지 방치의 시간!)
단지파는 그곳에 자리잡으며
마침내 그들의 어이없는 행태는
'마침표'를 찍는다.
우상까지 욕심내고 거짓제사장 까지............ㅠ.ㅠ....
저들의 모습이
하나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너무도 많이 보는 이 땅의 거짓 모습들.
세습하는 대형교회 목회자와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
이권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뉘어지는 논리들의 유형...
코로나.......등의 큰 일로 인하여 드러나는
거짓 논리들...
그 안에 '철저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사히 행동한다.
유사 행동
'타락한 천사'
광명의 천사.......
사단의 하나님 흉내.
사단은 '끝이 다르다는 뜻'이고 대다수 비슷하다는 의미다.
욥을 질타하는 친구들의 논리.
...............
또
아니다.
비단 '기독교'안에만 그런가?
점(点) , 사주 ,역학, ... 끝만 조금 다를 뿐이다.
유사이래 너무도 많은 작게 다른 것으로 인하여
세상에는 이리 많은 분파와 갈등과 알력이 있지 않던가?
단 지파.
그들의 겉모습은 '훌륭한 신앙인'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기도'를 해왔다.
그리고 나름 옳은 땅을 나누어 받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모두.. 그 안에
'자신'의 뜻이 앞섰다는 것만 다르지............
주일.
집에 올라와 이쁜 천사 , 손녀의 재롱을 보며 토요일을 보낸후
숙면을 취한 후
충분한 시간을 누워 있으려 했으나
습관이 무섭다고
일곱시 채 못되어 여지없이 눈이 떠진다.
아..
자유롭고 편안하고 좋은 시간.
쌀쌀한 겨울 냉기가 살짝 느껴지는 때 따스한 이불,
극세사의 부드러움이 등을 문질러줄 때
이불 속에서 일어나기는 정말 어렵다.
늘 그렇지만
이 시간은 일어나서 하나님을 마주하는 때임에도
그냥 뒹굴뒹굴하다가
또 습관적으로 머리 맡에 놓여 있는 갤탭을 꺼내어 유 xx를 들여다 보고 싶은 유혹이 번뜩든다.
아..
원래 이 '안목의 정욕'에 약한데다가
아주 오래전 부터 복잡한 머리와 심성을 마취시키려
보고 멍하니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집으려다 주춤했다.
보는 것, 듣는 것, 취미에 빠지는 것........뭐 죄일까?
하지만 자주 선을 넘어
하나님과의 무언의 약속 (정말이다... 내 읊조리듯 배앝은 소리를 들으시고 나도 모르게 성무일과처럼 되어 버린 시간 아니던가?..) 을
자꾸만 침범하는 게 죄스럽다 .
아니.. 이것이다.
나.. 복잡한 심성이라 함은
내 속에서 다양한 '나'의 욕구를 빌미로 쉽게 다른 생각들이 침범한다는 것이 아니던가?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 하나님으로만' .. 나를 채워가야 함이
이 땅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유일한 이유,
삶의 유일한 목적임을
잘 앎에도
어쩔 수 없는 인생들의 특질을 들어
우리의 너무나 강력한 '원죄적'성품을 들어
구약에 보여지는 그 강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넘어짐을
일으키시고 또 일으키시고 또 기다려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빌미로
또 하루 하루 이렇게 또 실패하고 실패하는 것이다 .
그래서 ,
얼른 손을 집어 넣고 잠시 나를 들여다 보았다.
그래 그게 옳다.
하나님의 시간이니
이 시간 만이라도 '세상'의 가치와 생각으로
날 오염시키는 것을 자제 하자.......고 생각했지만 ^^;
말씀 구절이라도 읽자는 핑계로
얼른 이불 속으로 잡아 들여 갤탭을 펼쳤다 .
아.. 지루한 말씀 구절.
단 지파의 이 미련하고
구역질 나는 어이없는 행태들.
너무도 익숙한 죄들이 역하게 느껴지려 한다.
주님이 말씀하시려는게 무엇인가 알듯하시지만
그리 힘있게 다가오지 못한다.
...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소액 투자해놓은 '미xxx' 프로그램을 나도 모르게 들여다 보면서
떨어진 액수에 마음이 빼앗겨 버리려 한다.
어쩌지...
또 , 안본다고 다짐했던 '구독' 버튼을 누르니
겨우 한개의 업그레이드 밖에 없다.
얼른 껐다.
힘을 내 이불을 박차고
서재로 와
묵상을 하려 애썼다.
아... 이것 저것 누르고 만지고...........
그러고 보니.. 영상예배를 드리면서도 난.. 비슷하게 안절부절한다.
교회에서 드리는 것과는 달리...
그러다가 '묵상기도'를 잠시하며
이 어이없는 단... 미가.. 들을 통한 레마가 무엇일까 집중하려다. ..
내 이러함이
이들의 '하나님 믿음을 흉내내지만 전혀 그렇지 못함' ..
그러면서도 '하나님 믿는 듯'함을 버리지 않는
저 습관화되고 두려움이 두려워 저러는
'자아 충만'함의 거짓 신실한 모습과
어쩌면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말씀의 오늘 주제가 '저들도 하나님을 믿었다' 다.
겉으로만...
나도 하나님을 믿었다지만........제대로 믿고 있는가?
혹여 지금이 그대로 부담없이 유지된다면
그게 저들의 모습이 될 것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하는가....는 깨달음이 온다.
저들과 비슷하게 살수 밖에 없는게
세상에 육신의 껍질, 텐트, 장막을 입고 살수 밖에 없는 우리네 존재고
이 상처입은 텐트 안에 하나님 모시고 살면서
그래도 잘 살려는 지표는
그것을 허락하신 (상처입은 심성과 육신을 가진 우리 영혼의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의 우리네 현재 )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지표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신가' 다.
성령이 계시면 비록 저들처럼 어이없는 행동이
어쩔 수 없이 내게 나오지만
저처럼 우상과 거짓 제사장을 '의지적'으로 '자랑스레이' 받아들이는
구역질나는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말이다.
아..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고
성령의 임재감이 있는 우리는
저러한 너무도 익숙한 유혹과 혼란들이 밀려와도
구역질로 거부하고
돌이키고 또 돌이킬 수 있음이다.
그렇다면 성령을 놓치지 않는다함은 어떠한 일이
어떠한 현상으로 나온다는 이야긴가?
아..
최소한 나에게??
우선
자꾸만 돌이키는 회개가 나도 모르게 있어진다.
그렇다.
따사로운 이불속에서 '안목의 정욕'과 더불어 나른한 게으름을 누리고자 하는
유혹에 자꾸만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야 한다.
그보다 더 큰 기쁨,
자꾸만 눈뜨고 살다보면 잊어 버리게 되지만
성령께서 임하실 때
그 얼마나 크고 놀랍고 기쁜,
정말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만 같은 행복감이 들던가?..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서라도
눈이 좋고 잠시 피상적 마취의 나른함이 있지만
결국 점차로 기분이 흔들리고 눈이 흐릿하여지며
상대적으로 반비례로 커지는 육신적 심적 퇴보를 주는
사단의 , 자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온전하고 순수하고 맑고 흐르며 건강한
성령하나님의 기쁨을
자꾸만 사모해야함이다.
아..
또한 그러한 감각적 감정적 추구는 역시
교묘하고 비슷한 흉내를 내는 영적 왜곡에 흔들릴 개연성이 있으니
말씀을 통한
매일 단련
그 앞의 회개
십자가 예수님을 매개로 한 돌이킴이 전제가 되어야 함이다 .
그러함이 있음의 이유가
잊혀지지 않기 위하여서라도
'성령'의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그러다
그러다
내
이땅에서의 시간이 다 되어
주님 부르시는 그 시간,
이땅의 마지막 시간
어쩌면 내 개인적 소천의 그 시간 전에라도
주님 이 땅을 정리하실 7년 대환란의 시간
주님 예수님 재강림하실 그 추수의 시간이 되게 되면
잘했다 주하인아 소리 들을 만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성장된 모습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게..
우리네 인생..
선택되어진 구원의 백성으로
마땅히 서야 할
오늘의 태도 아니던가?
아..
세상에는
많은 하나님을 믿는 자가 있다.
단지파도 하나님을 믿는 자 였다.
나........
그렇지만 조금은 다른 자다 .
그것...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여.
거룩하신 주일이 또 왔습니다..
예..
이렇게 이렇게
또 몇번 지나고
몇번이 또 지나다 보면
주님 부르실 그날이 곧 오겠지요.
부디 그때
이들 단지파들의 모습과는 다른 하나님을
옳게 보고 서 있는 제가 되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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