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래도 그는 사사였다[삿15:1-20] 본문
1.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막장 드라마.
드라마 속의 엉터리 삼손.
11.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12.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치지 아니하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래도 나름의 원칙이 뚜렷하여
선을 넘지 않는 삼손.
그들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저리 공손했겠는가?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그런 그가 '블레셋' 인들에 있을 때는
그가 원튼 원치 않든
'성령'이
'갑자기'라도 임하셔서
정말 '핵사이다'의 일을 벌인다.
물론,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그리 아름다운 면은 아니지만
그는 '고대'의 중동 지방에
'사사'로 자리 잡았던 만큼
다른 가치관이 있을 수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렇단 말이다. ㅎ
핵사이다의 힘쎈 '삼손'.
정의로운 삼손
언제든지 어디든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있으면
홀로 (다른 사사들이 이스라엘 인들을 모아서 전쟁을 한것과 달리 ) 징계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그들의 명분과 '전쟁'이든
홀로의 '학살'이든
결과는 '대적자'들을 물리침이다.
어떤 면에서는
결과론 적으로 그는 '백성'들에게
최대한 덜 어려움을 끼치면서도
동일한 결과를 나타낸게 아닌가?
일상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영웅의 풍모는 아니어도
결과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이 하신 것'임은 동일하고
동일하게 이방 악한 백성들을 징죄한 것도 ........
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그리고
그러함이 '사사'로서 하여야 할 임도 분명하고
더더구나 같은 민족들에게는
순한 양도 그리 순한 양이 없지 않던가?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조금은 불효자의 면이 없지 않지만
그것도 시대적 환경과 교육부재로 그랬을 뿐
더 이상의 '막장 불효'를 한 모습은 없었고..
어제 묵상 구절 '삿14:4'에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던 것 같이
하나님의 일은
인생, 이 길어야 100년 채 못되는 육체의 삶을 유한히 사는 자들로서
영생의 중심이시고
모든 능력과 지혜와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일을 가히 짐작하려 하고
우리네,
아니
내 눈으로 감히 짐작하고 판단하려 하는 것이야 말로
'우(愚)', 어리석고 미련함 아니던가?
정말?
'삼손'은
그렇게 행동해서 '삼손같다'라는
마치 '일B이 일B했다' 나 '중K이 또 중K 했다' .. 라고
이중행보와
미련함의 극치의 대명사처럼 비아냥거리며 쓰는 것 처럼
"삼손이 삼손할 ' 뻔했지만
그 삼손이 삼손할 것을 들어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니'
하나님의 일을 해내고야 만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고
여기서 우리는
'주하인이 또 주하인 했다'라는 표현이
'성령 하나님'으로 인해
좋은 의미로 바뀔 개연성을 보는 것이다.
희망이고 소망이며
그것이 늘 가능한 것이
우리네 믿는 자들의 '행복'이며 축복이다.
할렐루야.
이제.. 주님께서는
삼손을 통하여
좋은 몇가지를 보이신다.
우선,그는 일관된 정체성을 가진 자다.
자신은 '사사'로 부름 받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이며
그러기에 '백성'들을 절대로 대적하지 않는다.
어찌 어찌 가련하고 어이없이 보여도 무조건 애낀다....
그것도 겸손히.. .더 떠받들며..........라는
아주 멋진 '정체성'이 있다.
그것..........
그로 하여금 매력있게 보이게 만들고
선굵이 보이게 만든다.
그것이 '겸손'의 바탕 아닐까?
하나님을 의미로 타인을 위하는 것.
자신을 철저히 인식하는 것.
마치 입다가 '소의'를 버리고 '대의'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의 기준이 바뀌어
옳은 사사의 역할을 하게 된 것 처럼...
또한,
삼손은 그런 자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냥.. 그는 그로서 살았다.
멋대로..
그러다가 일할 때가 되어 '성령'의 임재감이 있으면 '확'~~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나이든 자의 연륜과
그의 그러한 기본 심성은 같이 나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임재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알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찾아오시지만
그래도 성령의 임재에 민감하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
깨어 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정숙해야 한다.
겸손하려 노력해야 한다 .
물론, 삼손은 특별한 예이고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리드 해나가시는 분이지만
그의 기본 심성은
위의 백성을 아끼는 예로 보아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나름의 기본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은
'늘' .. 볼수 있지 않던가?
갑자기 임하시면
갑자기 능력을 행하는 것..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
그 삼손의 좋은 점을 명심하고
하나님을 내 틀에 맞추려는 일체의 시도를 피하는 것...
그리고 조금더 '겸허'하고 '말씀'에 순종하려는 절제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감사하다.
그리고 하나더.. 나를 포함, 모든 자들의 부족함을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을 전제로 한 가능성으로 받아 들이자.. 다.
삼손도 삼손했다 .
그리고
그러니
그도 '사사'였다.
주님.
깨닫는 바가 많습니다.
나머지 의 오늘 하루 시간동안
가슴에 내려오게 하소 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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