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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으로 번민하지 않아도 될 하루[삿16:15-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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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으로 번민하지 않아도 될 하루[삿16:15-31]

주하인 2021. 12. 3. 08:48

 


15.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인간적인 눈으로 보아

비록 인간적으로 성숙해보이지는 않아도 (성숙?  오직 온전한 성숙은 성령으로 성화된 성인 뿐 ^^;)

인간의 눈으로 보아

사랑스러운 여인의 저러한 궁금과 재촉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고

또 여인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논리적 마음의 약함이 맞다. ㅠ.ㅠ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사'의 입장으로 

정확히는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는 모든 올바른 기독 정체성을 가진 눈'으로 보아

절대로 옳지 않은 

반드시 피해야할 '악'의 유혹이다. 


 
16.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이땅을 

일반인으로 살아가야할 

그러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자'로서

'번뇌(너무 불교적 느낌이라서 번민'으로 바꿨다.  제목을... ^^;)' 함이 당연하다. 

아.. 

 그 보다 그 전에 

그런 상황을 만드는 '죄'의 저변을 멀리 돌아 다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나는 (아.. 저런 음란죄,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안지키는 저 만큼의 죄는 안지고 있다  .   지금.ㅎ .. )

비록 현재는 아니어도

저런 '번민'을 가져오는

죄와 경건 사이를 

매일 

오고 가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주시는 말씀은 

'번민'에 대하여다 

 

당연히도 저러한 번민은

옳고 그름의 정확한 구분을 하지 못하며 (보라.. 인간적 시선과 당연히 우리가 지켜야할 신본적 시선 사이에서 )

그러기 전에 죄에서 멀리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에서 

정말 

매일 

매사 

죄와 멀리 떨어지고 

정결케만 살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하여 '세속 (번뇌..처럼 불교냄새 나서 괜히 선택한 단어다 ㅎ)' 을 등지고 

산속에서 살거나 수도원으로 들어가거나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서언 하지 않고는 

(아.. 그들도 쉽지는 않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원죄적 인간의 본성도 .. ) 어찌

죄에서 멀어질 수 있던가?

 또, 그들은 또 그 자리에서 그에 합당한 유혹, 번민이 없을까?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매일 호시탐탐 노리고 

그 영적 강력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신들의 착각이지만 .. 그래서 무식한 열심이 더 두렵다..ㅎ) 지경까지 와 있는데

거기라고 번민이 없을까?

 

 

28.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

   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런데

이런 번민과 

그 번민을 가져오도록 허락하시는 주님께서 

과연 '번민'과 그 번민에 져 죄에 잠시 넘어지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그러함에

아무런 대안이 없으실까?

 그냥, 사단에 맡겨 놓으시고 

시험에 지면 '지옥' 

이기면 ' 천국'.. 뭐 이런 흑백이 그 분의 논리의 전부이실까?
 '번민'하다가

그 번민에 치일 수 밖에 없는

이 가련한 '주하인'같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방치'하시고야 말것인가?

 

 보라.

사사로서 부름 받은 삼손.

그 삼손이 '세상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행태로 인하여

눈이 뽑히고 머리카락이 잘린 상태로

포로로 갖은 노역과 수치로 방치된 수개월 (머리카락 다시 자랄 시간 ^^;) 간이 허락되었지만

그 삼손이 더 이상의 쓸모없는 자,

죄 지었으니 당연히 고역 받다가 스러지는게 

하나님의 뜻이고 그 분 능력의 한계 이셨을까?

 우리 , 티끌보다 작은 자들의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고 

조금은 패역한 모습을 보인다고

우주보다 크신 그분이 

우리에게 그 만한 절망으로 '포기'하실 것인가?

 

 그 번민과

그 안의 몸부림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이도 임하시는 성령'을 느끼고 힘을 쓸만큼

나름 좋은 면이 있는 

삼손,

당신께서 '사사'로 쓰시기 위하여 부르신 그 자 (죄송, 조금 속상한 삼손이라서 .. ㅎ)를

그냥 방치하여 추하게 스러져 가게 방치하실 것이라 생각하기는 

너무 어이없는 일 아니던가?

 

 결국

그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았음,

아니, '놓치지 않고 있어왔음'을 

이 절절한 기도에서 드러내 보이시고 (고난이 유익 ^^;)

 

 


30.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러함 ,

그의 번민과 갈등과 

하나님 나라와 자신의 세상 ( 이 3차원 물질계, 자아의 나라)에서의 혼돈을 통해

사사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며 살아왔던 

그 마져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가운데 

사사로 세우신 바 그 본질을 다 행하게 하신다. 

 보라.

살아있을 때 그런 거 보다 죽어가면서 더많은 블레셋 (영적 사단의 상징 ^^;) 을 죽였다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시간을 넓고 오래 보면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손길아래서 벗어나게 된 것이 없다. 

 

 하지만,

사사로서 결국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 개인 삼손으로서 

옳았던가?

 인생의 의미로서 사사가 행복했던가?

그렇다면 

원죄적 존재로서 태어나

이 땅을 살아가는 자로서

하나님의 뜻과

내 기쁨과 

그 사이의 번민과

.........

어떻게 조율하는게 옳은가?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뜻대로

즉, 인본주의 넘어서 '신본주의'로 사는게

인생이 재미가 없기만 하고

고난 뿐이던가?

 

 아.. '번민' 투성이 !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산다는게

삶을 규격화 시키고

제한된 범위안에서 

이리 사는 게 맞는 가.. 답답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는 '성령'의 체험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가운데 살려는 자들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셔서

세상이 알 수 없는 

크고 놀라운 비밀로 

내밀히 ^^* ( 아.. .이표현이 너무 좋다 ^^) 인도하신다. 

 그 때의 행복감,

평강,샬롬으로 이해되는 (내게는 ^^*)

이 놀라운 해방감, 전율의 기쁨을 알게 되면

저런 소리를 할 수 없다. 

 아.. 그런데 그 기쁨과 놀라움은 

이 어이없는 육신 속의 나, 육신의 성향이 강한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 같은 '우리'

홍해 통과와 수없이 많은 광야 체험을 했으면서도

또 돌이켜 죄 안으로 돌아앉는 

이 육신이 전부인것 같이 사는 우리에겐

자꾸 잊혀지는게 본질이고

그를 통해 

영적 전쟁의 일환으로 

'번민'하게 하는 게 원리지..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 인도하시어

우리의 시험, 연단의 이룸을 허락하시어

'영생'에 사는 것이 

주 목적임을 

자꾸 잊고 

이 땅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게 

그래서 자꾸 위의 전제, 대 전제를 잊고 살기에

이러한 번민에 대하여 몸부림 치는 거다. 

 

 오늘 말씀은

'번민'.........

그 번민을 가지고 '번민'하지 말라...가

오늘 내게 주시는 의미인듯하다.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는지

내 앞으로는 어떠할지

그러기에 오늘 하루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지

벌~써 잘 알구 있지 않던가?

 

영적 문제로

과거의 흔적으로 

날.. 아직 번민하게 하고

그 번민 자체를 고민하게 하려는

어이없는 사단의 장난은 

이제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태풍치는 바다 속 주님과 함께 있는 나.......다. 

그러다 말게 내려 놓자. 

그러한 나를 

말씀으로

성령으로 인도받아 

또 한번 깨닫고 내려놓고 받아 들이고 나가자.

 

감사하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주여.

번민으로 번민치 않아도 될 

수없이 많은 논리가 

아마도 , 주님 성령으로 인하여 

이리도 선명히 느껴지는 듯하나이다. 

덕분에

또 하루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것 같고

영적 원리를 깨달아

제 영혼의 훈장으로 갈무리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주여.

거룩하시고 귀하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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