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름다운 애도 옳은 지혜[삼하1:17-27] 본문
17.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다윗은 일체의 모든 생각을 다 접었다 .
다 차단하고
하나님이 슬퍼하실 일이니 슬퍼할 것으로 결정하였고
그는 실제로 깊이 '조상弔喪' 하였다.
어쩌면 그의 슬퍼함은
'요나단' , 그 깊은 우정을 나누던 친구의 죽음이 있었기에
더 깊은 슬픔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23.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보라.
'사울과 요나단'을 같이 묶어
그들을 높이고
25.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그들을 '두용사'로 치키며 '조상'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며 '요나단'의 이름을 들어내긴 했지만
사울은 '두용사'에 묶어 그냥 하나로 슬퍼하였다.
아마..
그는 분명코 하나님의 뜻을 깊이 헤아리기에
'사울'을 슬퍼하고
일체의 은원(恩怨)을 드러내지는 않고
그의 옳은 부분 ,
그 옳음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임을 기준으로
자신에게 잘해주었던,
일개 촌소년에서 파워풀한 인생으로 바꿔준 매개체로서의 사울 만을 기억햇으리라.
오늘.
무엇을 내게 보이셨을까?
그냥..
그의 대범함?
그의 죽음 앞에 누구나 다 아름답게 생각하려 하는 경향?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마음이 제대로 흐르지 못할 것을
인간의 마음을 쉽게 눈치채는 영악한 자기 갈무리로
좋아하는 자와 묶어 '두용사'로 묶어버려 슬그머니 슬픔으로 밀어넣는
자기 단속의 결정체.. 로서의 다윗?
........
그것이라면 굳이 교훈이나 동화책, 설화 아니면
말씀이신 하나님의 역할이 별필요치 않치 않은가?ㅎ
무엇인가?
무엇을 내게 말씀하시려는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오늘
내가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라 생각하셔서
오늘 말씀을 허락하셧을까?
나의 내밀한 속을 바라보시면서...
나.
옳은 흐름과
자연스러운 태도,
긍휼, 사랑............에 대하여
진정으로 배워보지 못한 듯하다.
아마.. 어쩌면
원죄적 인간으로서 완전히 옳은 자가 있을 수 없어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옳은,
진정히도 선한
그래서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으로 인하여
서로 서로 배려되고 '천국'처럼 살아갈 자격을 가진 자,
당연히도 세상에 없을 것이지만
그러함에도 난.. 좀 .......그랬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 못된 건지
일상에서 매사 걸리적 거리는 생각들이 많아
삐걱삐걱...
그게 싫어 좀.. 나 만의 테두리를 치고 살아왔었던게 사실이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자격으로
흘러 내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하여
아주 아주 많이 회복되고 자연스러워졌지만
아직도 버겁게 남아 있는 흐름을 막아서는 어떤 것들이 있었다.
그 부분......
그부분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하나님 안에서의 '조상'
옳은 애도
자연스러운 흘려보내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을 일말의 어색함 조차
배려되어 하나로 묶어 자연스레이 '두용사'로 슬퍼해줄 수 있도록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말씀을 통한 '모델', 모본......
그리고 깨닫게 하심
성령의 어루만지심.................
결국에 보이는 '긍휼의 흔적'.
마침내 도달해내고야 말
세상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이란 전제에 들어맞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
그 흐름을 막아서는 사단의 장해가
말씀을 근거로 자연스레이 녹아내려버리는 개연성.
기쁨.
행복.
긍휼한 행복.
날아갈듯한 가벼움.
그리고 이어짐.
오실 주님을 기뻐할 당위성.
그것.
오늘 '두용사'에 묶어 흘려보내는
다윗 심성에 조금이라도 남을 사단의 궤계의 근거.
그것을 내게 보이심이시다.
감사하다.
주님.
어제는 아내와 토요일 근무를 마치자 마자 서둘러 음성에 다녀왔습니다.
언니와 장모님.
그리고 아주도 복잡히 얽힌 인과관계를 정리하는
아내의 단칼의 정리를 주님께서 도우셨습니다.
참.. 기뻣습니다.
이제..
곧 오실 예수님.
곧 뵈올 하나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갈 이때
서서히 천국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그리되어가는 것으로 느껴져
참 행복햇습니다.
가는 길.. 초행이지만 단 한번도 막힘없고 단한번도 이리저리 회차한 적없는 길을 예비하여 주시고
찬란한 주말 날씨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연스러운 만남 후
본홈인 AY에 올라오는 길 역시 여행길 처럼 가벼운 흥분과 더불어 그리되게 하셨습니다.
늘 그랗듯
토요일 저녁을 본집인 본홈에서 쾌청히 지내고
이 아침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주여.
아칭메 다소 어려운 '조문'.. 슬퍼함을 마주하게 하셧지만
그 안에 옳은 감성, 옳은 흘려보냄.. 자연스러운 긍휼함.......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주여.
제게도
믿는 모두에게도 그리되게 하소서.
하나님 안에서
주님 만 바라보고
주의 뜻을 읽으려 노력하면서 사는 자들에게
어떠한 걸림돌도 자연스레이 물흐르듯 흘려보내지며
하나님 안에서 용서되는 모습을 봅니다.
노력과 결단과 용서의 행위를 거치지 않고도
허락하신 흐름 안에서
자연스레이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애도'를 봅니다.
주여.
제게도 허락하소서.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고
취할것은 취하는
자연스러운 하나님 안에서의 '옳은 애도' 말입니다.
감사하오며 기대합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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