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선한 애도와 악한 쾌감[삼하1:1-16] 본문
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사울'이란 '첫왕'..기념비적인 인물이며
다윗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의미의 인물'이 죽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
그 큰 대 사건이 벌어졌을 바로 그 당시에도
그는 여전히 전쟁터에 있었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늘 그랬듯 '머물'며 쉬었다.
무슨 말인가?
일상이라 생각되어지는 일의 가운데
하나님의 극적인 역사가 벌어지며
한편에서는 그리 벌어질 때 역으로 그는 자신의 일에 그냥 최선을 다했다.
그게 '인생'이며
그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과정을 보이시는 것 같다 .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이
뫼비우스의 띠같이 끝없을 듯한 그 때에도
그래서 머리와 마음 속에 무료함을 넘어서는 암담한 답답함이 들려 할 때도
하나님은 하나님 역사의 시계,
하나님의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일을
다른 한쪽에서 '진행'시키고 계심이시다.
아무 일도 없고
아무 변화도 없으며
심지어 아무 희망이나 소망이 없을 때 같을 때 조차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에계 예비하신
우리를 위한 시간을 돌리고 계심이시란 것이시다.
그러하다면
실망이나 좌절, 지침이나 우울...........이 있을 여지가 없다 .
인내의 훈련이며
그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기대함을 놓치지 않는 훈련의 시간이
바로 지금 아닐까?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그리고 그러한 역사가
마침내 '다윗'의 버거운 인생에 다가왔을 때조차
그는 '흥분'하거나 '당황'하거나
예기치 못했던 일에 놀라거나 하는
그 어떤 감정의 요동을 보이지 않고
마치 그래야할 것이 그랬을 것인 태도로
'차분히' 청년에게 묻는다.
"사울과 요나단이 어떻게~~"
요나단 친구의 죽음에 먼저 안달복달하지 않고
원수이자 친구아버지,과거 장인, 자신을 세워준 권세자......................등 수없이 많은
두려움과 애증의 관계인 '사울'의 죽음에
두려움의 해방,
그를 표현함의 갈등
아쉬움........등을 격렬히 표현해 하지 않고
차분히 물어보는 것이다.
'일상을 마치고
인생 대격변의 사건을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마주하고
어쩌면 묶였던 끈을 풀려서 바야흐로 자신의 시대가 온 것을 깨닫게 되는 대 기회를 마주하는 등
...............
한편 뜬금없이 듣고 있는
그러한 자의 태도라기에는
너무나 차분한 모습으로
그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12.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그리고는
그의 말을 듣고는
일체의 그 복잡한 심사는
흔적도 보이지 않고
'슬피 울며 금식'하는
절절한 애도만을 표현한다.
그 안에 보이는 심사는
'통쾌함' .. 자유에 대한 안도감...................................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
오직 '애도'일 뿐이다 .
일상에 충실한 자의
슬퍼할 일에 대하여 마땅히 하는 단순하고 깊은 애도...........
요나단 친구에 대하여서는 그 상실감에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지만
위의 예상처럼 사울에 대하여는 아니지 않는가?
비록 그 다윗이 '사울'에 대하여 마음을 정리했다고 하지만
그 복잡함에 대하여 일말의 흔들림이 있어야함에도
즉 말씀에 표현되어지는 뉘앙스는
'악한 쾌감'은 전혀 보여지지 않고
'오직 애도' 다.
보라.
14.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그 다윗의 마음의 흐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그는 분명코 '요나단의 죽음'도 가슴이 아팠겠지만
진실로 가슴아파 하고 힘들어 하는 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 사울의 죽음이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사울을 존중하고
그의 죽음에 대하여 그 복잡 미묘한 관계속에 파생되는
애증,.. 등의 사단의 기뻐하는 감성에 휘말릴 일이 없음이다.
그는 일상을 최선을 다해 행하는 자이다.
그리고 항상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하여 정리하며 사는 자다.
그래서 반드시 언젠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일이든
가장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는 자다.
그래서 그 시간이 언제이든 어떤 모습으로 일이 벌어져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그리 흥분도
그리 당황도
그리 울부짖음도
그리 속상해함도 없다.
자연스럽다.
애도할 것은 확실히 애도하고
해치울 것은 확실히 정리한다.
그게 어찌 가능한가?
'하나님을 전제로 바라보는 세상'이 그의 시선이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가능치 않을 것임을 아는 자다.
그러기에 '애도할 것은 애도한다'
'정리할 것은 정리한다. '
'하나님께 죄가 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즐겨하지 아니한다"
오늘
다윗을 보면서
이 지루한 하루.........
늙어가는 하루가 펼쳐져 있다.
또 습관처럼 내 무의식 저변에 '미워할 자''들의 미운 행동들이 밀려오려 한다.
지루한 하루의 무거운 질림이 누르려 한다.
아..
다윗이 큰 명분없는 싸움이지만 허락되어진 그때 그 시절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다가
마침내 다가온 '인생의 격변'의 시간을 초래할 대 사건을 접하고
'애도'와 '기쁨'의 혼란을 경험하려 할 뻔 하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그 마음이 흐르게 하였고
애도할 것은 애도하며
슬퍼할 것은 슬퍼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옳지 않은 것은 과감히 정리'하였다.
닮자.
주님.
출근 알람이 울립니다.
감사합니다.
말씀 붙들고 오늘 또 세상에 접목시켜 보겠습니다.
애도할 것은 애도하며
기뻐할 것은 기뻐하는 옳은 자.. .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맞추어 그리 판단하는 자 되려 힘써보겠습니다.
도우소서.
제 마음을 마음대로 잡아 끌려는 그 고소한 쾌감,, 악한 쾌감의 사단을
제해버리게 하소서.
성령으로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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