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마지막을 위하여[삼상31:1-13] 본문
주님 부르실 그 날에
나 이리 함박웃음을 웃으며
주님 마주하게 되리라
그날을 위하여
그 날을 기대하면서라도
조금더 힘내자
주하인아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이땅에 정해진 이치로 인해
죽음은 누구에게도 불가피한 결말.
아쉬운 것은
요나단의 마지막이
그의 보여준 너무나 신실한 우정과 하나님 안에서의 담대함으로
조금더 아름다운 결말의 마지막을 기대했것만
'요나단' 자신,
하나님을 아는 자 요나단과 더불어
'사울의 아들'
'왕자'의 신분으로서의 요나단으로서의 죽음에 이르른 것 같다.
하나님 만이
모든 것을 아시겠지..
영원 , 영생, 천국까지 범위를 넓혀 보면
요나단에게 주어진 다른 '상급'이 있으실 것을 믿지만
어쨋든
3차원 세상에 거주하는 자로서
누구나의 마지막
내게도 있을 마지막 , 끝을
잠시나마 묵상하게 하신다.
나...
어떤 '마지막'이 있을까?
6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13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그토록 두려워하던 '사울'이
결국은 '죽었다'
그의 마지막은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 거 같다.
아... 가룟 유다 빼고....
그의 죽음은 '사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유사에 없을 비참한 말로이지만...
각설하고
'죽음'보다
'끝'으로 묵상하고 싶었다.
다윗과 비교되는 '사울'의 끝.
하나님을 잘 믿는 자의 끝과
'세상'을 더 따르던 자의 끝.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다.
심지어는 '고난'을 위하여 부름을 받게 하셨다는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으셨다.
당연하다.
고난은 유익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부름을 받았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고난'이 없던가?
세상의 것 많이 받은 자들에게는 고난이 없던가?
정말?
대통령였던 N님...
시장 했던 P.님,
회장하셨던 J님
국회의원했던 ...님..(이름이 ..생각이 안난다.ㅎ)
유명 탤런트였던 c씨.........
..........
그들 뿐인가?
오늘 사울은 어떤가?
가진 자들 중에도 가장 성공한 자였던 (솔직히 그시절의 왕이 현대의 최고보다 권력의 수위라는 면에서 비교할 수 조차 없지 않은가? ^^;;)
그러면서 용모.. 등 하나 빠질 것없이 다 가진 '사울'이
고난이 없었던가?
이들 모두 '자기 스스로 ' 목숨을 끊은 분들이다.
왜 인가?
'고난'이 두려워 견디지 못하고 시행한 최후 아니던가?
그들이 사뭇 고난이 없었더라면 저런.. *&^%$#...했을 것인가?
내내 잘 보듯 사울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힘들어 했다.
대개 그 이유가 자신의 욕심, 상처.. 등으로 인한 바탕에 의하겠지만
그 기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함'
'하나님과 매일 함께 하는 자가 아니었을 것임'이 확실하다.
사람이 위안과 소망이 있는데
어찌.... ㅠ.ㅠ
반면 '다윗의 끝'을 보면
전혀 다르다.
그의 일생이 '고난'이 없던가?
누구보다 심한 '고난'의 일생이 '다윗'이었음은
새삼 그의 성장과정 부터
사울이 죽는 날까지의 모든 과정을 돌이켜 보아도
우리가 아는
자식들의 반란 문제도
그는 ㅜ구보다 고난이 심했던 일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끝은
이 들,
하나님보다 '자신'의 기분, 자신의 욕심, 자신의... 자신의... 가 우선이 된 자들의 마지막
그 끝과는 사뭇 다르다.
그도 두려웠지만
그도 '고난'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달랐다.
인생으로,
인간으로서 보는 그의 마지막 역시
그리 쾌청하지만은 않았지만 (해피엔딩)
사울처럼 비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죽을 때 그 마음은 '소망' 가운데 있었으리라.
무엇을 보이시려
두 그룹을 대비시키시는가?
'고난'은 인생에 필연이다.
사는 것은 '고해'라고 믿지 않는 자의 입에서 정리된지 오래다.
누구에게나 힘들다.
하지만 그 고생이 '반드시 '거쳐나가야 할 필연이라면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영적 에너지' , 성령의 은혜로 살아간다면
고난은 고난에서 그치지 않고
'연단'으로
우리의 영혼을
풀무질을 통하여 '금과 은'으로 나오게 하는 귀한 도구가 될 것이며
그때 얻어지는 '쉼'과 '안식'의 체험들은
곱게 곱게 우리의 영혼에 쌓여
'상황과 상관없는 ' .. 고난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아... 더 큰 소망으로 바뀌게 하여
점차로 우리의 인격은 고아해지고 성숙해지게 되어
마침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역까지 가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그 모든 이룸을 이루고 간다면
당연히 '성인 聖人'이 되고
'성화 聖化'된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
부르실 그날에 온전한 '천국백성의 자격'으로 소천 되리라.
무엇을 내게 , 오늘 말씀하시려는가?
기왕에 '고난'이 필연이라면
하나님께 더 맡기고 하루 하루 살아가보자.
할렐루야 주님.
코로나가 뜸해진 이후로
갑자기 한가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더 믿음이 커서 인지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지는 바대로
어떤 일이든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
말씀에 의거
주시는 은혜로 이겨나가려는 시도를 하지만
만성적인 두려움이 '다윗'을 아기스로 일방적 도피하게끔하는
알면서도 멍해지는 엉터리의 결정과
그의 폭풍 같은 어려움의 연속처럼
제게도 괜한 두려움들이
슬그머니 슬그머니
옛 습관을 자극하며 밀려 오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주여.
오늘 사울의 인생과 다윗의 인생 과정에서
그들이 너무 다름에도
고난은 똑같은 무게로
여지없이 삶을 힘들게 하여옴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주님을 놓치지 않고 살았던 '다윗'과 '사울'의 마지막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당연히도
영원이란 개념,
영생과 영멸의 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두 인생 자체를 비교한다는 것 조차
하등 가치없는 일이 맞지만
주님께서는
이 땅, 이 물질계, 이 3차원의 세상에 사는 자의 시선으로
눈 앞에 보이던 , 보였던
두 대표 상징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대비시키시며
저에게 위로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전.. 분명코
장담하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노력하는 자 맞습니다.
비록 부족한 바 너무 많아
다윗님처럼 대단하지는 못하지만..............말입니다.
주여.
제게 만성적으로 다가올려 하는
이 고난으로 좌절하지 않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냥...
3차원의 문제 3차원식으로 풀어주시거나
아니시면
영적은 성장을 위한 달가운 고난,
차원 높은 성장을 위한 매개체로 제 영혼이 받아 들여
절 바꾸시는
고난이 유익이 되는 자 되게 하여 주소서.
그 안에서
제 삶이 너무 어렵지는 않게 하시어
저와 기도하는 제 아내와
제 식구들과
이제 기도의 이정표로 허락하신
정말 기도한 대로 태어나게 하신 '손녀'의 삶의 순조로움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이 3차원, 물질의 문제도 풀어주셨음...합니다.
흐르는 주님의 원리를 압니다.
흐르게 하소서.
흘려 보내주시고
제 마음의 막힌 부분을 풀어서 더 원할히 흐르게 하소서.
영육혼간의 훌륭한 연단을 이루어
주님이 보시기 가장 선한 방법으로 절 인도하소서.
걱정과 근심...
내려 놓습니다.
받아주소서.
생과 사,
복과 화..........
그 모든 것 주님께 달렸음을 믿고 의지합니다.
제 나머지의 삶 이후의
주님 만날 그 시간,
오늘 이들처럼
그 끝의 시간을 마주할 때
'사울'들 처럼 미련한 끝은 아닐거라는 확신과 더불어
오히려 감사하게 됩니다.
내 주여.
말씀을 근거로 깨달아지고
제 삶이 보여지며
제 끝이 어떠할지가 믿어지려 하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나머지
제 나머지의 여명을 다 주님께 맡깁니다.
주여
홀로 영광받으실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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