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는 & 저들도[삼상29:1-11] 본문
난
아직도
가끔은
사뭇 두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나를 두려워 할 것임이
이제는 깨달아진다
그것은 아마도
내 뒤에 계신
내 하나님 아버지 때문이리라
이제는 알고 있다
두렵지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두렵지만
오히려 감사해도 될 것
내가 누군지
이제 확실히 인식하고
내가 그런 자임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옴이
그 이유다
1.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2.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어찌할 수 없이
여기까지 끌려와 있는 상황.
다윗도 두려워하지만
상황에 이끌리다보니 빼도 박도 못하게 얽혀버린 상황.
끌려오듯 상황에 몰려
블레셋 진영에 속해서
마주한 이스라엘 진영을 바라보고 있는 자...
이스라엘 백성인 자기 정체성이 너무도 확실한 자,
그래서 거짓을 하면서도 자신의 민족은 건드리지 않던 자 다윗.......
그러한 자, 다윗이
이제 끝까지 몰려 '블레셋' 진영에서
바야흐로 자기 민족을 향하여 대치하고 서 있는 상황까지 와 있다.
얼마나 그 마음이 복잡할까?
이것..
며칠 전 묵상에서 '아기스'.. 쪽으로 망명하려 결정하면서 까지
기도하지 않던 모습을 묵상하며
그래도 항상 기도하는 자이기에..,
그럼에도 불구 나름 자신의 정체성이 뚜렷하여 .........하였었다 .
그러던 그가..
죽음의 위협으로 만성적인 두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어찌할 수 없이 결정하여 내린 인간적 안타까움에
그냥 하나님도 지켜보시는 것 같은
감정이입 (나... 하나님을 인식하지만 더 뚜렷한 결단의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매일을 유야무야 흘려보내던 자....로 죄송함과 감사함이 공존하며 내 모든 거 아시는 하나님 께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용인해주시고 계신 그런 자...ㅜ.ㅜ;)이 되어 있던 차
드디어 그 삶이 허락되어진 위기까지 몰려 와있는 장면이다.
어찌할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어차피 '자신의 민족'을 향하여 '칼'을 들 수 밖에 없는데
이게 '하나님'께서 정말 용서하시고 용인하실 것인가?
자신은 민족의 배반자가 될 텐데......
그렇다고 안된다고 뒤로 뺄수도 없이 밀려온...............
아마, 얼굴은 굳히고 있지만
다윗의 심박수는 어마어마하게 뛰고 있을 것이다..ㅠ.ㅠ
다시금
'두려움'을 보고 있다.
죽고 살고 하는 문제와
가치관, 정체성의 문제를 두고 고민해야하는
삶의 끝까지 밀려와 있는 '다윗'이다.
바야흐로
더 이상은 숨길 수 없이
모냐 도냐 결정해야 하는 급박한 순간이다.
5.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그때,
그들을 알아본 '블레셋'의 다른 일족들이 항의한다.
그들은 '두려운 다윗'을 보고 많이 놀라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윗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결정'의 문제로 두려웠을 상황에서
더 이상 갈등할 이유는 없어져 다행이지만
드디어 '죽음'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다윗들도 두렵지만
그들도 두려워 한다.
6.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이때 '아기스'가
철저하게 보호한다.
아.. .
사랑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이시다.
비록 그들이 매사 기도함을 잊어
상황이 여기까지 몰리는
그 두려움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만
'사랑하시는 자를 그냥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맞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하는 '다윗'들을
더 두려워 하는 블레셋들 사이에서
'아기스'의 변함없는 애정,
블레셋 민족의 입장으로 보아 어이없는 미련^^; 을 들어
다윗을 보호하게 하신다.
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이 말.
아무 것도 모르는 입장에서 들었다면
다윗이 자신의 민족들을 향하여 '내 주, 아기스 왕의 원수'라 지칭하고
왜 그들을 향해 싸우지 못하게 하느냐 항변하는 게
민족의 배반자, 기회주의 자, 앞뒤가 다른 자로 보였을게 맞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손길을 내밀어
이 절해고도와 같이 절망의 순간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어
상황을 이리 풀어가심을 느꼈을 것이고
당연한 순리,
자신의 민족에 칼을 들이밀지 않고
블레셋 민족에게서 죽임을 당하지 않아도 될 찬스를
몇마디 '영혼없는 멘트', 감언이설로 빠져나갈 수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큰 의미없는 수준이 아닌가? ^^*
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놀라운게 이것이다.
다윗이나 아브라함이나 요셉등을 보면
그들을 대적하거나 보호하는 '이방인'들의 입에서
'하나님' 소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는 것.
그러하다.
비록 '다윗'이 실책 (하나님께 매사 기도하는 자임에도 만성적 두려움에 잠시 중요결정사항에 하나님께 여쭙는 것을 잊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 놓은 자로 살아왔다는 것,
그에게 하나님이 안계셨다면
눈앞에 보고 있는 현재의 다윗이 있을 수 없음을
세상이 알게 하는 것.
그게 오늘 내가 살아서 이 자리에 서 있게 하신,
그리고 앞으로 내 살아 있어도 될,
아니 살아야할 이유와 목적이기도 하다.
나머지..
그러한 것을 깨닫고
매일 말씀에 맞추어
세상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내 하나님으로 하여 여기까지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음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막연히라도 두려워하여
나를 높일 수 밖에없도록
그러한 나임을 명심하고 살아야 하겠다.
아...
주님.
오늘 다윗을 묵상하며
결국 , 한계에까지 밀린 다윗들의 시선을 느꼈습니다.
밀리다 밀리다 못해
아기스들에게 까지 의탁하다가
드디어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임계지점에까지 도달하여
이제 마침내 '인격을 포기하고' '영혼을 사단에 팔아 먹고'
목숨을 유지하는 가
하나님의 뜻을 어길 수 없으니
하나님의 귀히여기시는 '이스라엘 동족'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블레셋을 역공하든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마침내의 끝까지 온듯한 상황에 몰려 있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남얘기 같지 않습니다.
주여.
어찌 이 긴 인생을 살게 하시면서
저 극도의 두려울 상황까지 밀리지 않해 보았을까요?
그 잔존의 두려움들이
지금도 우리 네 인생들에게
곧이라도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사망의 불안함'으로
죽음의 냄새로
'죄'의 결과로 두렵게 하고 있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무엘상을 묵상하며
내내 두려움에 대하여 들여다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오늘은
두려움은 나만의 문제가아니고
그들도 '나'.. '우리'를
내가 무서워하는 것 보다 더 두려워 함을
천천, 만만이라는 묘사를 통해 드러나게 합니다.
그러합니다.
두려움이 두려워..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하여
저들도 그들이 알지 못하는
모든 허탄한 것들에 매달리고
스스로 속이며 가식으로 살다가
그리그리 또 영원의 어둠속으로 매몰되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나도 두려워 하지만
내 두려움의 실체는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나를 두려워 하고
실은 그 보다 더 내 뒤의 하나님.,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하게 될 것임을
말씀을 통하여 보고 있습니다.
나...
오히려 경외의 하나님을 인해
주님의 품안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회복되고 안정화되고
오히려 감사하게 될 것임도요..
주님.
바라옵기는
주님이 저로 인하여 '크~게 '드러나
세상이 주님이 함께 하시는 저로 인하여
크게 두려워 하는 자 되게 하소서.
아.. 정확히는 '경외'하는 하나님을
저로 인하여 더욱 뚜렷한 증거자가 되게 하소서.
저..........
나머지 삶동안
어떻게 해야 그리될지
마땅히 알지 못하지만
그냥... 믿고 흐르다 보면
결국 다윗이 왕이 되고
역사내내 가장 주님이 좋아하시는 인간이 되었던 거처럼
그냥... 주님 의지하고 흐르다가 보면
그래서 매일이 의미로 가득찬 삶을
나머지 시간동안 살다보면
나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내 주변 에 수두룩하게 하소서.
저..
그러한 자 되게 하소서.
믿습니다.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새롭게 하신 하나님..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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