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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회오리 속에서도[삼상19:1-2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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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회오리 속에서도[삼상19:1-24]

주하인 2022. 6. 8. 09:00

 

(펌)

무슨 말이 필요하랴

 

항상 마주하는 

모든 관계의 회오리

폭풍같은 갈등과 갈증 속에서도

 

주님의 평강으로 

항상

안정할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옳은 길 

옳은 방향이 아닐까?

 

그를 위하여

모든 관계의 

그 어려움과 허덕임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임을... 

 

1.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특별한 이유없이도

심히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기쁘기도 부담스럽기도 

그의 상황에 비추어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사뭇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의 아버지가 

괜히 

자신을 미워함도 

그 미묘한 상황에서 자신의 편을 드는 친구의 굳은 맹세의 다짐도

 

 

10.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눈 앞에 보이는 

친구 아버지의 절대절명의 행동도

 


11.사울이 전령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또한 친구의 동생이자 자신의 아내이며

친구의 아버지의 딸이기도 한 

'미갈'의 전력을 다한 도움도 

사뭇 혼란스럽다 .

 더더구나 '미갈'의 배반을 아는 우리들로서는

이러한 모든 '관계'의 얽히고 섫힘이

당혹스럽고 

회오리치는 것 같아

'힘에 부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아... '나'..^^;

다윗은 아니다 .

시편에 하나님 앞에서 외치는 고통의 소리들은 많이 있지만

사람 안에서 보여지는 갈등 들로 문제있는 행동을 보인데는 ^^;;

어디에도 없다. 

 

 각설하고

비단, 누구보다 하나님의 관심 아래있는 다윗의 입장이라서만 

이러한 '첨예'하고 '특별한' (솔직히 괴기스러운 ㅠ.ㅠ;) 관계의 혼돈 속에 있는것일까?

 우리도 살면서 

수없이 많은 관계에 얽혀있다. 

직장 속,

가족,

친구..

동료, 동창.........

.............

 산다는 것... 

모두 다 관계에서 파생되어지는 일들에만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더 많은 관계의 파생이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얽히고 섥히는 문제들로 인하여

점차로 더 많은 어려움들을 호소한다. 

 

 다시한번 돌아보자.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그리도 목매어 살고

나를 지금 울고 웃게 만드는 것 다 무엇인가?

거의 모두 '인간관계'에 따른 부산물 들에 대한 것이 전부가 아니던가?

 

 가진 것 못가진 것에 대하여 

왜 그리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가?

왜 남의 한마디에 그리도 오랫동안 가슴 한구석이 무거우며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던가?

.................

관계에 대한 문제 아니던가?

 

결국,

인생이란 거

산다는 것... 

점차로 관계와 그로 파생된게 전부다...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오늘, 관계를 보면

어지럽다. 

회오리 치는 것 같다. 

 

 깊은 우정,

그 우정의 얽히고 섥힘이 

마냥 기뻐하고 웃기만 하기는 

친구 아버지와 매제 관계 이기도 

정적이 될 수도 

친구가 되기도

그러한 그 친구의 절절한 우정이 

과연 어디까지 '다윗'의 마음을 편하게 할 것인가?

 친구 아버지 사울, 

장인 사울

정치적 군신관계 사울

치료자 다윗과 안타까운 악령 병 환자 사울.

 이쁜 아내 , 곧 배반할 아내  미갈

목숨을 구원해준 귀한 은인 미갈

어쩌면 자신의 정적이 될 장인 사울의 딸 미갈.

..................

그 안에서 하루 하루가 

한마디로 '회오리' 바람 속의 '우리'........같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반가워야 할지 경계해야 할지

의탁하고 충성해야할지 멀리 도망해서 거리를 둬야 할지

따스한 밥한끼 기대할 지 그냥 존중해주고 뜨악하게 대하여야 할지

................................

하나도 정리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내내 보아도 

그 관계의 회오리 속에서 

기도 중 외치는 절망과 감사의 소리는 있어도 

어디하나 일희 일비 하며 안절 부절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일관된 행동을 보인다. 

그 절정은 '엔게비 동굴'에서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러 들어온 사울을 바라보는 

다윗의 담대한 행동에서 알수 있지 않은가?

 오늘 말씀 가운데도 마찬가지다. 

절대의 고난 속에서 만이 아니고 

위의 서술 같이 복잡하고 갈등 투성이일 '관계의 회오리 ' 속의 

담대한 다윗

담담한 다윗의 모습을 투영하여 보여주심이 

오늘 레마다. 

 

 그 안에서 오직 담담할 수 있음은

위의 관계에 생략된 

'하나님과의 관계' 설정........

그를 통한 매일을 바라보는 자로서의 담담함...이다. 

 

 아무리 세상이 혼돈 스럽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뜻만 바라고

허락하시는 은혜 가운데서 

세상을 바라보며

그 모든 것 '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으며

결국 '승리'할 것임을 

가장 '선한 결과'로 내게 주어질 것임을 

영혼 깊숙히 믿게 되면

하루의 흔들림과 좋고 나쁨으로 

일희일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

다윗.

그 분은 매사 그리 훈련되어진 자다. 

오직 하나님.

오직 주님의 뜻..

주어진 현재의 모든 상황이 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누구보다 잘아는 자.. 말이다. 

 감사하다. 

 

 

주님.

놀라우신 하나님.

전... 잠시라도 주변에 상황이 변하면

겁이 덜컥~하고 나려 하며

너무 친절히 다가오시는 주변이 있으면 

주춤~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주여.

압니다 .

너무 오래된 잘못된 습관으로 인하여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한번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러한 관계의 버거움에서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옳게 가져감으로 

하나님안에서 

주변을 바라보며

하루에도 어지러히 롤러코스터처럼 다가오는 관계의 버거움들 조차

기쁨과 차분한 기대로 바라보게 하시어

일희 일비 하지 않고 

오직 긍휼한 눈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되게 하소서.

내주여.

전 안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홀로 영광받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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