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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만으로 살다[삼상20:1-23] 본문

구약 QT

하나님 만으로 살다[삼상20:1-23]

주하인 2022. 6. 9. 09:20

(펌)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오직 고난 뿐이고

나와 죽음 사이 한걸음 뿐일 듯한게

이 육신에 갇힌 

우리네 삶이지만

 

여호와 하나님

그 분으로만 충만하면

바로 이 자리가 구원의 자리이며

바로 내 삶이

더 높은 차원

영원을 위한 

주님의 깊은 은혜의 터전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 

매일이 

주님으로 만 살고

주님으로만 기뻐하며

오직 내 여호와하나님 만으로 인하여

날로 날로 

더 새로와지길 원한다.

 

매일이

주님으로 인하여

진정 감사할 조건 뿐이다.

할렐루야

 

 

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내 관심이 '사람'인가?

'사람의 왕' 

나의 눈뜨고 움직이고 바라보고 울고 웃는 대상인

이 '육신'의 껍질을 쓰고

이 유한한 시간의 틀에 갇혀

우리의 선조들과 우리 후손들이 또 그렇듯 

다람쥐 쳇바퀴 돌며

또 한탄하고 같은 고민하고 같은 고뇌하다가

또 적당한 정도의 깨달음으로 칭송과 질타를 받다가

허무히 사라지고 스러져 버리고 말

이 '3차원의 육신의 존재',

그 존재의 왕 앞에서

그냥

오늘도 그러한 관심으로 끝나는게 

내 모든 것의 결정체던가?

 

아.. 

허무하고 미련하기 그지 없지만

그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나.. 

왜 여전히 

'네 아버지 앞'이라는 

이 사람의 관심이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가?

 

3.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12.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13.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14.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21.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22.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23.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젊었던 시절의 다윗이 

친구 요나단과

절체절명의 시기 (아.. 하나님께서 이 3차원 세상에서 눈을 들어 더 높은 차원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시간.. 고난이 유익임의 확실한 증거 !)에

절절히도 '여호와'를 외친다 .

그들의 우정이

남자와 남자들의 뜨거운 감정의 엵임이 아니고

그 방향이 오직 '여호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통된 세계관에 의거

현실을 고뇌한다. 

 

'나와 죽음 사이'

'내 사는 동안' 

'너와 나 사이'라는 구절들이 

가슴을 흔들흔들하게 한다. 

 

이 어이없는 '사람' 앞의 관점에서

그들의 고뇌가 날 공감하게 하나보다. 

동병상련까지는 아니어도

이 모질고 의미없을 것 같은 삶에 

늘 '죽음'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던 것에 대한

반항 내지 숨겨놓은 두려움들이

그들의 입을 통하여 

같이 공감하게 하는... 

 

그러나... 더 뜨거운 것은

그들이 말할 때마다

하나님 여호와를 드러냄이다. 

그냥 한두번도 아니고

무려 아홉번 (혹여 내가 빼놓았는지 모르지만..ㅎ)이나 절절히 나온다. 

 

그렇다. 

모든 관심의 촛점이 하나님이다. 

모든 해결의 길이 하나님이시고 

우정을 엵고있는 끈도 하나님이시며

이해가 가지않을 인생의 무게도 가볍게 해주실 분은 다 하나님이시며

스트레스를 해결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모든 지혜와 약조의 중심도 하나님이시고...........

...................

또 또 또 그렇다 .

 

 

아.. 

아침.

또 여전히 불안하고 재미없으려는 시작이 

말씀으로 인하여

여지없이 바뀌어 버렸다. 

 가슴이 뛰고

고민이 사라졌으며

괜한 가슴시림이 내 마음을 흔들거리게 하여

어느새 흔들림이 고요해졌다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으로만

내 나머지 삶을 이어가도 되겠다..

확신으로 다시한번 온다 .

다행이도 내겐 

요나단 같이 '하나님 얘기 만'으로도 

밤을 꼬박세울 기도의 동역자가 내 곁에 있다. 

감사하다. 

 

주님.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삶과 죽음 사이가 하나이고 

사는 날동안에 오직 내 삶의 동기를 부여할 분도 하나님이시어

관심과 소망이 하나님을 근거로 되니

이 무기력하고 소망없고 나른하고 

살 이유 찾기 힘든 

이 3차원 다람쥐 쳇바퀴, 

그거도 늙어가기만 하는 ...........

아무 의미없을 세상에

주님은 그러십니다. 

 

주님이 계셔서

전 가슴이 뛰고

아직도 흔들거릴 유혹이 됩니다. 

살아갈 에너지가 

은혜로 내려오고

의미가 말씀으로 인하여 더 뚜렷해집니다. 

어두운 예감들.. 

또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여호와.. ...... 하나님으로 

다 털어 버려도 될 듯합니다. 

내 주여.

그리 느껴집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내 주여.

거룩하고 오직 소망이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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