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누구나 다 다윗이랴[삼상17:24-40] 본문
누구나 다
인생의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하고
지속되는 불안 앞에 매몰되지만
그래도 난
바람처럼 나타날
세미하신 하나님의 증거
소년 다윗을 바라보며
그들처럼 한목소리로
비아냥대거나 좌절하는
군중에 속하지 않길 원합니다
깨어서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아 알고
그리 하게 하신
주님을 기뻐할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으로
늘 깨어 충만한 저 되게 하소서.
깨어있는 소수되게 하소서
아..그래도 깨어 있는 소수요
내 주여.
24.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나.
어쩌면 이 그룹에 속해있을 가능성이 많다.
아.. 지금은 성경을 통해 관조하지만
실제 저런 상황이 내게 닥치고 있다면........ㅜ.ㅜ;
그런데 실제 지금 나는 어떤가?
있지도 않은 '골리앗'에
인생내내 도망하고 회피해가고 있지는 않던가?
28.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그런데 불현듯
아주 묘한 캐릭터의 '영웅'같은 느낌의
그러나.. 한편으로 어리고 유아틱하기도 한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의 감각이나 판단 근거에
어딘지 모를 당황스러운 인물이
우리의 앞에 ,
내 앞에 나타났을때
난... 그를 어찌 받아 들일 것인가?
군중에 서서 '다윗',
어쩌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존재이실 만한
그러나, 감성상 받아 들이기 약간은 버거운 존재의 나타남... 때.
그냥 생각없이 이 두려움에서 건져줄 누구라도 괜찮다.. 하고 있는
군중의 무리 중 한명인가?
아니면
큰 형처럼 알거 다 안다고 생각하여
무시하거나 일견 그러한 막내가 시선 집중 받는 것이
묘한 마음의 갈등으로
질투와 어이없음....이 복합된 마음으로 바라볼 것인가?
난..
'소년 다윗'( 그 의미를 알지 않겠는가? ^^;) 을 어찌 바라볼 것인가?
29.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30.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이 군중 속의 묘한 기류를
'다윗'은 당연히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 '큰형'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시한다.
"내가.........어찌............" 하며
그리고는 '돌아서서'.. 라 나온다 .
너무나 나를 잘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자의
아주 오래되고 무거운 질타와 손가락질이
이 군중들,
이 위기 앞에서도 여지없이 되풀이 된다.
분명코 상황은 '골리앗'을 마주한 전쟁터임에도
이전의 나,
그들의 잘못된 판단의 오류,
그 소아적 질투의 눈으로
어이없이 저런다.
그럴 때
나라면
분명코 .......큰 분노를 발했을 지 모른다.
"아~니~ ! 형이란 사람이...........! ........시국을 ........어찌........." 하며 ^^;;
하지만
그는 '돌아서서' 라는 표현대로
무시했다.
아.. 인간, 형을 무시한게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 바야흐로 자신을 통해서 일어날 것을
영혼이 아는데
이 사람의 문제, 가정의 문제, 갈등의 문제, ..로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것은 과감히 '무시'한다.
멋지다.
하나님의 일에 가족.......질투........의 작은 일로 끌어 내리는 것에
단호히 거부하고진정 중요한 일에 몰두한다.
작지만 , 어리지만'거인'처럼 보인다.
36.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그의 소름끼치는
반전적 멋짐 ^^*은
너무도 유명한 이 구절을 통해 '극'에 이른다. ^^**
40.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그리고는
모두의 예상을 또 한번 넘어서
'평상의 차림'으로 유유히 (나아가니라...라는 표현 ^^*) 골리앗 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
나.
이 멋진 장면을 보면서
닮고 싶은 모습이면서
실상 ,전혀, 시간이 지나도, 아무래도............다윗을 닮기 어려운
내 자신을 마주하며 ^^;
"그래.. 나 다윗 닮고 싶어요.. 주님.. "하던
그런 기도에서
점차로 이 부분에 오면
'역시 멋있어.. 참 대단하다..' 하며 스쳐 지나가게 되는
그러면서 내 삶속의 변화는
이 분을 통해 '하~나도' (죄송^^;;) 이루어지지 않는 ,
그러면서 오히려 무감각해져가는
설화속의 재미난 이야기처럼 치부되어 가는 것은
웬일일까?
묵상 구절에
설교의 재료로 그냥...
아이들에 위인전 이야기하듯한 소재로 그냥..
그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하나님의 '레마'가 분명코 너무도 많을 이 부분에
왜 우리는 이리 되어야 할까.. .가
아침에 기도 중 갑자기 드는 의문이었다.
나.
다윗처럼..
진짜 대단한 믿음의 용사로
성경에 남을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거기까지 올라갈 '믿음의 경지'는
지금 당장 (그렇다... 목표지.. 지금은 아무리 돌아보아도 불가능하다..아.. 하나님이 하시면..모르지만.. )은
아니다.
그러기에 '큰형 ' 같은 어이없는 질투와 괜한 미움 ( 어쩌면 내 속, 우리네 원죄적 존재들의 인격속에 남아 있는 실제 아닐까? )은 의미가 없다 .
다윗을 닮아가지 못하는 내 가녀린 믿음이 별의미가 없다 .
그냥 그렇다 .
난... 여기까지다.
그렇다면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오늘의 말씀의 뜻은 무엇이랴?
어제 부터
난.. 군중 속에서
그냥 군중의 밀림에 따라 동물처럼 무서워하고 피하고 울고 웃고........가 아니고
그 안에서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하나님의 역사'로 느껴지는
아주 특별한 , 특이한 존재인 '소년 다윗'을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었다.
아침에 잠시 기도하고 묵상하며
그게 확실히 깨달아 졌다.
그렇다
그러니.. .'골리앗'의 위용에 두려워 하고
그의 몸짓과 그의 휘영청 감은 갑옷과 철제 무기에
40여일을 가슴조리며 수없이 많은 자책 (자책이 있음은 힘들고 괴롭고 지나침은 피해야 하지만 하나님께 무릎꿇는 선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주안에서는 옳지 않은게 하나도 없다. 모든게 선한 이유와 도구가 된다....^^.)을 하다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소년 다윗'을 바라보게 되는
몇 안되는 깨어 있는 군중 속의 한 사람의 시선으로
날 느끼게 하셨다.
'사진 '속 저 분 처럼..ㅎ
그렇다면
다윗을 바라보면서
우선 '감사'가 나왔다.
"하나님의 응답이 드디어... "다.
내 삶속에
이 골리앗의 거짓 위풍 .. 을 앎에도 불구하고 (왜 모르겠는가? 그리 오래 말씀을 붙들었는데.. )
왜 나는 그리 변하지 못하였던가?
그것을 자책하기 보다는
닮지 못한 다윗의 모습에 절망하기 보다는
오늘은 더 감사 하는 시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랬다 .
하나님의 때는
불현 듯
바람처럼
곧
언젠가..ㅎ ..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저리 나타나실 게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의 당당한 모습 속에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루한 매일,
이 늙어가며 점점 더 할 일이없어지고
목표마져 없어서
그냥 하루 종일 소일하다 스러져 가는 그런 것이 아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신경쓰고 사는 자들,
좁은 길을 선택받아 가는 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의미있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
다윗, 소년영웅,
세밀하신 하나님의 응답
알 수 있는 깨어 있음이 있는 자들만 아는 하나님의 시간......의 상징인
그를 통해 많은 도전과 감사와 깨달음이 있어짐을 깨달았다.
아..
군중 속에서 난.. 하나님의 소리를 보았다.
누구나 다 다윗이 될 수도 될 필요도 없지만
그를 닮아가야 하는 당연한 목표와 그 기쁨에 대하여 알았다.
이 아침에...
감사하나이다.
주님.
똑같은 말씀을 두고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시는
상황에 따라 역사하시는
나이 따라 다르게 역사하시고
성장에 따라 달리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여.
오늘도 배우고 깨달을 것 많았고
굳이 필요없는 자책에 흔들릴 일도
자책에 대하여 필요없는 에너지로 피할 노력을 하고
그러한 스스로에 대하여 우울할 이유도 없음을
오늘 묵상을 통하여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윗이 될 수는 없지만
인생에서 흘려 버리고 스쳐버릴듯한
아주 작은 소년 다윗 같은 하나님의 미세한 응답을
진정 응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적 민감함을 주소서.
그리고 그게 어떠한 상황이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시간, ..으로 바라보아
받아 들일 것 받아 들이고
회개할 것 회개하며
감사하는 자 되게 하소서.
주여.
모든 자가 다 다윗이 될 수는 없지만
이 군중 속의 일상의 삶 속에서
다윗을 바라보는 자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디ㅏ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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