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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진리 사이에서[요7:37-5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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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진리 사이에서[요7:37-52]

주하인 2013. 1. 23. 11:17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서서 외쳤다' 고하신다.

세상의 명절 끝날에 그분은 '하나님 나라' 를 외치신다.

지금 , 현시의 끝날에 다가올 '천국'의 영생을 외치신다.

꼿꼿히, 당당하게....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그 분의 그러하심은

당연하지만 '성령의 폭포수 같은 흐르심'이

배에서 흐르시기에 가능하다.

 

 

46.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세상 '아랫'사람들 조차

이렇게 말한 사람은 이제껏 없다고 느낄 수 있음은

성령의 운행하심.,

하나님의 살아계심이다.

그것을 개념없이 살아갈 확률이 많은 '아랫 사람'들 조차 느끼는 것이다.

 

 

50.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고함을 받는 윗 사람 중의 한 사람.

'니고데모'다.

니고데모에 대하여 이리 표현을 하고 있다.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

 

그말은 이걸 의미한다 .

'긴장'

' 의와 현실 사이의 갈등'

' 진리를 사모하는 자의 안타까움'

 

누구도 알지만 그는 '바리새파'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진리에 갈급한사람이다.

율법의 한계를 느끼고 무엇인지 모르는 갈등에 헤메이다가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고는

모든 것을 걸고 '밤'에 예수님을 찾으러 왔던 자다.

 그가 일상의 삶 속에서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속한 조직이 그 분을 대적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함을 듣고 있다.

그런 것을 들으면서 그는 어떤 것을 느꼈을까?

당연히도, 마음의 진한 갈등을 느꼈을 것이다.

진리와 현실 사이의 괴리.

잘못 말이라도 하면 거부당하거나 해를 받을 위험에 대한 두려움.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기는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심한 자괴감..

 

 

51.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그는 지혜로운 말을 한다.

' 듣기 전에는 판단하지 말자.'

현명하다.

예수님을 변호해주는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자들 중에 자신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기회가 이들 중에도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그 니고데모의 입장이 눈에 들어온다.

 

'현실과 진리 '사이에서 갈등함

'삶과 신앙 사이'에서의 나의 결심.

 

 어쩌면 큰일이 아닐수 도 있고

또 어쩌면 죄 일 수 도 있는 일이 있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나는 이정도면 덜 타락했고

 그렇게 그렇게 사회적으로 이루어진 무언의 약속속에서

 센터장으로서 이정도의 역할을 하려면.. '이라는 현실적 생각과

' 하나님을 그래도 더 가까이 알려하는 나로서

지금껏 청렴하게 살아왔는데.. ' 라는 사이에서

이것이 진정 '죄'인지 '죄가 아닌지' 조차 헷갈리는 일이

나에게 '선택 '사항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할 때 나는 머리가 온통 자동적으로 이 생각에 머물어

'뒤죽 박죽' 이 되고 있다.

왜 그렇게 강력한지 이럴 때는 잠시 잠시 멍.. 하니 있을 때가 있다.

 

'니고데모' 님의 입장에 서 있을 때

나는 어땠을까?

그런 뒤죽박죽이 휘몰아 치고 나서

'두려워 아무 생각'도 못했을 것같다.

그래서 '니고데모'님의 언어가 참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을 많이 생각했다.

어제, 기도도 않되는 것을 뿌리치고

아내가 기도하는 옆에 앉아 무릎을 꿇었다.

말씀을 묵상함으로 기도하면 많은 생각들을 물리칠 수 있다.

말씀에 맞추어 현상을 대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은혜의 하나님께서 자동으로 떠오르게 하시고

마음을 잡아 주신다.

아마도 .. 조금만 더 세상의 연단 과정을 거쳐나가면

예수님 생각만 해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

'서서 외치시는 ' 우리 예수님.

배에서 생수의 강처럼 성령이 도도히 흐르게 되면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고 알아

삶속에서의 영성에 그리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

 

 그래서 내 혼돈 중에 기도하니

마음이 평안해 지려한다.

역시 하나님은 평강이시다.

솔직히 '죄' 인듯, 죄 아닌듯 혼란스럽다.

그 혼란은 갈등이다.

이 갈등을 잊으려 한 쪽으로 피해왔던 것이 내 삶의 행태다.

지극히 '청빈'하려..

하지만, 그 청빈의 외적 현상을 가지고 난 또 내 안의 교만을 즐기고 있다.

지금..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하나님 앞에 '죄처럼 '보이는 판단을 가지고 와서 그렇다.

니고데모처럼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내가 확신하건데.. 사망이나..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끊을 자 없다. '라는 말을 믿고 있다.

그래서 정리시켜 주시길 바란다 .

좀더 성령이 강하게 운행하셔서

내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흐르는 그런 자 되고 싶다.

머리 속에서는 '죄'있는 자가 어찌 예수님 .. 하는 듯하다 .

하지만, 그대로 있다.

삶속에서 어찌되었든 하나님 생각을 하며 살아가려는

조율을 시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니고데모... 이후에 어찌 되었는지 난 모른다 .

예수님을 강하게 믿고 삶속에서 모든 것을 인도받고 싶다.

 

 

주님.

사뭇 헷갈리는 생각이 절 흔듭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생각이 번득 들면 아득해지려 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내가 누구인지' , '내 가 얼만큼 컸고 ' 어디까지를 주님이 원하시는 지 알기만하면 될 것을

어쩌면 가장 극대의 선을 기준으로 맞추고

거기에 맞추지 못하는 현실의 나를 다구치는

신앙양심을 가장한 '사단'은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마침 '디고데모'님을 묵상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역시 '하나님'의 진리를 체험한 자이고

그러면서도 가장 강력한 시대의 힘 속에 '현실'로 머물어 있는 자입니다.

그런 그가 지혜로 운 말을 합니다.

주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성령 탓인 줄 압니다.

부디 간절히 소원할 것은

'무조건 죄'로 스스로 징책하려는 진짜인지 모르는 거짓 신앙양심과

그 나름 나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올바른 선택을 할 지혜를 주소서.

세상을 살면서 온전히 불타협의 자세로 사는 것도

저에게는 해당치 않은 일일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고지식한 자세도 또 한 저에게 없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런 태도는 지금까지 저를 '나름 고고히 유지 시키는 ' 역할을 했지만

어쩌면 더 성장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헷갈림이 있습니다.

주여.

이제 .. 그 모든 거 가지고 주님 앞에 옵니다.

오늘도 말씀을 가까이 하기 힘든

'죄의식'이 날 사로잡으려 했지만

현실의 그 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는 죄가 훨씬 큼을 알고

힘을 내서 오니

또 니고데모님의 입장을 투영시켜

절 바라보게 하십니다 .

성령의 인도하심인줄 믿습니다.

제 안에서 생수의 강처럼 흐르는 그 시각까지

주님의 인도하심 놓치 못하도록하소서.

이게 삶속에서 영성을 유지하는

올바른 지혜의 길인줄 믿습니다.

주여.

저를 놓치 마소서.

붙드소서.

기도하는 저 되도록하시고

지혜롭게 '내 자신이 누구인지 ' 이해하게 하시어

주님 말씀 가운데서 나의 위치를 늘 조영하여

니고데모님처럼 중심잡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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