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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침묵하기[요7:53-8:11] 본문

신약 QT

말씀으로 침묵하기[요7:53-8:11]

주하인 2013. 1. 24. 08:22

나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으려 할 때

주님 만 바라보겠습니다

 

인생 힘들어

숨이 가슴에 차려할 때

내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누구 하나

곁에 없는 듯

절절히 외롭고 힘들 때

십자가만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입을 닫겠습니다

주님 만이 답이고

주님 만이 길이심을 믿고

나 그리 하겠습니다

 

내 사랑하시는

내 하나님이시여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악의를 가지고 묻는 자들.

주님은 ' 너희 중... ' 이라는 선언 하신 후

다시... 말씀이 없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

여기에 대하여 여러 이론 들이 있지만

아마도 심지어는 공격하는 자들에게 조차

무안을 주지 않으시며 시간을 보내시려는

예수님의 의도 이신 듯 하다.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리고 는 가만히~~ 기다리셨다.

그러자 ,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 , 비록 불신자들이지만 '양심의 가책'을 유발하시게 되어

하나 둘씩 차례로 나가기 시작해 모든 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그중의 일부는 강하게 말씀으로 인하여

가슴의 파문을 경험했을 것이고

일부는 그렇지 못하지만 다들 나가는 추세이니 그랬을 것이다.

 

어쨋든 예수님은 '말씀'과 '침묵'으로 이기셨다.

그렇다 .

오늘 나에게 무엇인가 있을 지 모를

이런 곤란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시는 것일 수도 있고

내 안에 있는 내면의 정죄에 대하여

그럴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

'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시니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따르길 다시한번 확인하고 결심한다.

 또한 흔들림이 있을 때 침묵으로 있으리라.

 나. .확실히 그러하리라. '

 

 이 양심의 가책... 에 대하여 묵상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면

너무나도 당연히 '사람의 마음'에서 한바탕 작용이 일어난다.

믿음 생활 하면서 너무나 쉽게 오해하는 것이

하나님 믿으면 당연히도 모든게 그대로 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결과가 있을 시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다.

'기복적 믿음'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의지를 그냥 두시지 않는다.

매사 '인터 액티브 interactive' 하시다.

우리의 결심과 우리의 선택을 중요시 하신다.

말씀으로 씨 뿌리고

그 말씀을 우리의 심령의 옥토에 심기를 바라신다.

그 반응의 정도를 '양심의 가책'이란 단어로 묘사하신 것이고

말씀에 따라 반응하는 심령의 정도에 따라

일어나는 순서가 달랐다.

 

 그렇다.

말씀은 '에너지'다.

세상 만물을 변화시키는 우주의 농축 에너지시다.

그 말씀을 받아 심령의 변화를 제대로 유발시킴은

우리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상급이 달라지는 것이다 .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가면

주님은 절대로 정죄하시지 않으신다.

그 분은 안고 포용해주신다.

그 포용은 치료의 포용이다.

회복을 전제로 하시는 포용이다.

다시는 '죄'를 되풀이 하지 않는 진정한 회복의 포용이시다.

 

 

 '정죄감'

실제로 '비난' 받음...

이러함은 '죄'와 연관이 되어 있다.

그 죄가 실제로 지은 죄이기에 '타인'에게서 그리받을 수도 있고

'죄'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이

과거의 상처로 인하여 '정죄감'이 커서

약간의 자극에도 '징죄'로 느껴지는 간접적인 죄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상처로 인한 정죄감 조차도 그러한 상황의 정서적 임계점이 낮은 바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 .

내면적으로든 외면적으로든

타인에게 분을 내는

자신에게 향하는 내면적 분노든... .

그러기에 정죄라는 상황은

그 죄의 중심에 있는 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타인을 비방하는 정죄는

실은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정죄가 알게 모르게 더 크다.

사람들의 심성에는 자신의 죄와 비슷한 타인의 죄를 발견할 시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더 크게 투사한다.

그러기에 그냥 그들은 일시적으로 시원하게 돌아가는 듯 하지만

결국 그러함은 마음의 안정을 무너뜨려

자신이 느끼든 못 느끼든 자학을 유발하게 되어

점차로 마음이 곤고하고 결핍이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말'을 주의 해야 한다.

그게 타인을 향할 때도 그리해야 하지만

자신을 향하는 '자책'의 소리는 과감히도 단속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쉬운일이던가?

사단은 세상에 역사한다.

그러기에 너무도 저항이 쉽지는 않다.

 그리도 쉬우면

어찌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고

성경을 통해 수 많은 깨달음의 단초를 쉽게 제공하실 생각을 하셨을까?

 

말씀을 통해

오늘 주님은 그 어려운 일에 대하여

이리 대처하라신다.

 

'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이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한다.

그래야 비판에 저항할 기둥이 생긴다.

사단은 다양한 언어로 사람의 생각을 주장한다.

그리고 감정을 변화시켜 주저 앉힌다.

그러기에 생각의 중심을 '말씀'으로 잡는 것이다.

말씀을 붙들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말씀이 하나님이 될때

내 감정은 '은혜'로 그득찬다.

도저히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현상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감성이 촉촉히 변한다.

 때로는 그 분은 '아버지'처럼 다가와 안아주심도 느낀다.

한참 긴장하고 세상의 종말이 올 것 같은 회색지대에서

갑자기 '하얀 구름'속에 있는 듯 한 평화로움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때 갑자기 머리 털면서 자신의 감정적 왜곡여부에 대하여 확인하여 보려해도

그 은혜의 감성은 정말 사실임을 드러내 보이게 된다.

아. .

그 상황과 상관없는 '평화로움'.

그것을 '평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우리는 '정죄감'을 이길 수 있다.

아.. 그 감정을 이김 뿐 아니라

새로운 힘을 얻어 영혼의 성숙과 삶의 발전을 이루갈 기회가 되는 것이다.

 

 또.. 공격의 소리들이 있을 때,

'침묵'해야 한다.

말씀이 있으시지 않으신가?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시범을 보이신다.

아무 소리 안하신다.

참.. 어렵다.

나에게 특별히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있으면

절대로 구부리지 않고 이겨내는 습관이 있다.

이 강력함..^^;;

그래서 세상에서 남들에게 두려운 존재는 되었을 지언정

인정받는 온유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는 늘 회개하고 조아려야 한다.

 또한 세상적으로도 편히 쉬고픈 친구 같은 자는

내 스스로 보아도 아닌 듯 싶다.

그것...

그 유혹...

누군가에게 이겨서 내 정죄감을 탈피하고픈 '유혹'을 어찌 이겨낸단 말인가?

'침묵은 금이고

 침묵은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심성 중의 하나이고

 침묵을 연습함이 영적 성장을 위한 지름길'임을

스스로도 깨닫고 책으로도 많은 분들이 제시했다.

하지만.. 여지없이 '정죄'에 저항하고 싶은 욕구가 들면

이 침묵은 무너지고 만다.

 오늘...

특별히 정죄에 대하여 , 비판에 대하여

침묵으로 이겨내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있다.

'침묵으로 이겨내라는 말씀'이 있으시니

침묵과 말씀으로

아니 말씀에 있으신 침묵으로 이겨내야 겠다.

 

 

 

 

적용

 

1. 오늘 하루 침묵하겠다.

  그리되지 않도록 막아서는 내 속의 조급함과 아프게 만드는 것을 묵상하리라.

 말씀이 있으시니 침묵하겠다.

 오해가 있어도 해명하지 않겠다.

 하나님이 해결하시도록 그냥 두리라 .

 

2. 조심하자.

 오해와 비난거리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자.

 

 

3 . 비난이 와도 말씀으로 이겨내리라.

 거절도 선물처럼 받지 않으면

 선물하던 사람이 가지고 돌아가는 것처럼

 비난도 그 사람이 가지고 돌아간다 한다.

  잠언 26:2에서도

"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하셨다.

 말씀대로 비난이 와도 가만히 있자.

 말씀대로의 침묵이

 오늘 내가 붙들고 다녀야 할 묵상거리다.

 

4. 성경 세장 읽겠다.

 

5. 하나님은 절대로 날 비난하지 않으신다.

 알면서도 짓는 의도적 죄가 아니면

 주님은 날 붙드신다.

 날 위안하시고 잡으시리라.

 

 

기도

 

주님.

제 안을 스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오래된 양심을 가장한 소리들 말입니다.

주여 .

그때 말씀을 붙들어 이겨낼 수 있길 원합니다.

이제 점점 연습한 것이 자동적인 제 습관이 되길 바랍니다.

주여.

아무 것도 제가 받아 들이지 않으면

저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을 오늘 묵상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내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시사

사단의 소리를 , 괜한 비난의 소리를

양심의 소리로 착각해 붙들 던 어이없는 습관을 깨닫는 지혜를 허락하시고

그럴 때마다 말씀으로 생각나게 하소서.

그것.. 주님 성령께서 도우시면 언제나 가능함을 믿습니다.

저 .. 성공할 줄 믿습니다.

특별히 간구할 것은

이해받고 싶고 오해를 풀고 싶은

해명의 욕구를 내려 놓게 하소서.

주님 하신대로 '침묵'으로 이겨내게 하시고

그 침묵후에 주님의 위로로 감정적 문제 조차 해결 받게 하소서.

주님..

말씀 묵상과 침묵을 끝까지 붙들고 다닐 금과옥조로 명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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